존 포드가 66세가 되던 해에 만든 <
러틀리지 상사>는 평자들이 존 포드의 세계를 말할 때 거의 거론되지 않는 영화다. 나 역시 이 영화를 실패작으로 생각하며 아직 재평가받을만한 점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실패에는 뭔가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점이 있다. 그 점에 대해 짧게 말하려 한다.
<
러틀리지 상사>는 분명히 실패작이다. 물론 포드에게도 실패작 혹은 범작의 목록이 있다. 하지만, 도덕적 감정이 화면의 활력을 억누르거나(<
밀고자>), 인물들이 이야기에 끌려다니거나(<
모호크족의 북소리>), 반대로 인물의 과도한 성격 표출이 영화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영광의 길>), 너무 설명적이어서 밋밋한 산문이 되어버린(<
마지막 함성>) 영화들과는 다른 의미의 실패가 여기엔 있다. 뭔가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혹은 불성실로 인해 엉성해지고 느슨해진 것이 아니라, 작가가 고의로 작품을 파괴하려는 듯한 기괴한 몸짓이 있다. 그 몸짓을 아름답다고도 고결하다고도 말할 수 없지만, 그 작가가 파괴와는 정반대의 것을 너무나 능숙하게 해오던 사람이라면, 거기엔 무어라고 단정하기 힘든 어두운 결기가 있다.
줄거리는 이렇다. 제9 기병대 소속으로 흑인이지만 ‘탑 솔저’로 불리며 존경받던 러틀리지 상사(우디 스트로드)가 군사 법정에 선다. 부대장을 살해하고 그의 딸을 강간 살해한 혐의다. 러틀리지와 함께 전장을 누빈 젊은 중위 켄트렐(제프리 헌터)이 변호를 맡고, 백인 인종주의자가 검사를 맡은 법정에서 증인들이 하나씩 등장하고 그들의 진술이 플래시백으로 펼쳐진다. 범인은 따로 있었음이 밝혀진다.
존 포드의 영화를 봐온 사람들에게라면 이 이야기는 너무 건전해서 놀랄 지경일 것이다. 백인의 인종주의와 몽매한 군중심리를 비판하며, 노예해방 이후에도 지속된 흑백차별을 고발하고 있다는 점, 무엇보다 흑인을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삼는 모험을 감행했다는 점 등에 주목하면 <
분노의 포도>(1940) 이후 20년 만에 포드가 진지한 사회성 영화를 만든 것처럼 보인다. 조너선 로젠봄처럼 명민한 평론가도 이 영화를 인디언을 전면에 내세운 <
샤이엔의 가을>, 여성이 주인공인 <일곱 여인>과 더불어 만년의 존 포드가 정치적 소수자에 시선을 돌린 영화라고 평했다. (이런 평가와 연관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IMDb 사이트에 오른 이 영화의 평점은 놀랍게도 7.6이다. 우리가 걸작으로 칭송한 <
도망자>(6.6), <
라이징 오브 더 문>(6.8)보다 월등히 높다.)
이런 부류의 도덕적 판단에 더 이상 귀 기울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은 작품의 자질과는 완전히 무관하며, <
아파치 요새>를 다시 들먹일 필요도 없이 포드의 세계에서 고결함과 야만성은 인종이나 젠더와는 완전히 무관하다는 것을 이미 여러 영화에서 확인해왔기 때문이다. 차라리 (직업적 감독으로서의 포드에게 주어진) 이야기의 과도한 건전함이나 정치적 올바름이 이 영화의 자기 파괴적 몸짓과 연관돼 있는 건 아닐까라고 추측해보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법정 스릴러에 서부극, 전쟁물, 로맨스를 뒤섞은 이 영화의 표면적 실패는 법정 스릴러로서의 실패다. 영화의 초반에 이미 우리는 러틀리지가 강간 살해범이 될 수 없는 고결한 인품의 소유자임을 본다. 정답의 반은 이미 처음부터 제시되어 있는 셈이다. 하워드 혹스나 빌리 와일더가 손댔다면 곳곳에 수수께끼와 트릭이 숨겨진 미스터리가 되었을 테지만, 포드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중범죄를 다루는 판사들이 법정에서 술 마시고 휴정시간에 도박을 하는 장면들, 그리고 사안의 중대함에 무관심한듯한 가벼운 농담과 유머의 장면들, 그러니까 이제는 포드적 클리셰라고 부를만한 이완과 중지의 장면들이 들어서 있다. 엉성하다기보다는 정교하고픈 의지가 없는 미스터리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를 가장 놀라게 하는 것은 범인이 밝혀지는 마지막 순간이다. 러틀리지 변호의 실패가 예상되는 순간, 한 남자가 증인을 자처한다. 그는 인디언에게 피살된 자신의 아들이 범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몇 번의 신문 끝에 변호인 켄트렐 중위는 바로 그 남자가 범인임을 밝혀낸다. 이 과정이 너무 짧고 너무 갑작스럽다. 남자가 자기 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기 위해 나서는 장면도 갑작스럽지만, 더 갑작스러운 것은 켄트렐의 공격이다. 그는 신문을 하다가 갑자기 남자를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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