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어느 시네필의 편지

by.한동균(영화애호가) 2015-05-27조회 6,889
어느 시네필의 편지

영화에 관해 글을 쓸 땐, 사적인 이야기로 지면을 채우는 것을 많이 주저하는 편이다. 영화 글을 읽는 사람들의 동기는 대체로 글쓴이에 대한 호기심보다는 그 글이 다루는 영화에 대한 관심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번만큼은 시작하기에 앞서 이 글이 쓰이게 된 배경을 잠깐 설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작년 연말까지만 해도 난 한국에서 이런저런 글을 쓰고, 작은 규모의 영화 잡지를 만들며 백수와 직업인의 경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대학원 진학을 몇 달 앞두고 마침 뉴욕에 계신 먼 친척분의 집이 비게 되었고, 뉴욕행 비행기의 항공권보다 서울의 여섯 달 치 월세가 더 비싸단 이유만으로 예정보다 조금 빨리 거처를 옮기게 되었다. 딱히 이곳에 친구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한국에 수입되지 않은 영화들의 DVD나 블루레이를 구해 보거나, 링컨센터 필름 소사이어티(Film Society of Lincoln Center), 필름 포럼(Film Forum), IFC 센터(IFC Center) 등을 다니며 소일하던 중 한국영상자료원으로부터 ‘뉴욕에서 할 수 있는 시네필 적인 경험’에 대해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이곳에서 새롭게 경험한 것들을 다른 이들과 나눌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무심코 청탁을 수락하게 되었다.

처음엔 집필 과정이 순탄할 것만 같았다. 장 뤽 고다르가 <언어와의 작별>(2014)에서 3D 기술을 활용해 단순한 오버랩이 아닌 새로운 방식으로 이미지의 중첩을 선보임으로써 영화 몽타주의 영역을 확장하였지만, 한국에서는 부산국제영화제나 국립현대미술관을 찾은 몇몇 운 좋은 관객들만이 그 순간을 목격할 수밖에 없던 것과는 달리, 뉴욕의 시네필들은 맨해튼의 IFC 센터에서 비교적 오렛동안 매일같이 영화사의 새로운 도약을 지켜볼 수 있었다는 아쉬운 이야기부터, GV가 예정되어 있지 않더라도 회고전 내내 자신의 영화가 상영될 때마다 극장을 찾아 모든 관객의 질문에 성심껏 답하며 크리스 마르케, 알랭 레네, 프랑수아 트뤼포 등과의 일화를 들려준 아녜스 바르다의 이야기라든지, 크라이테리언의 노력 끝에 4K 복원된 사티야지트 레이의 <길의 노래>(1955)를 다른 도시의 시네필들보다 먼저 만나볼 수 있었던 것 등등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글을 시작하고 나니 ‘과연 내가 뉴욕에서 경험한 것들이 한국에 있었을 때에 비해 특별하다고 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이곳에서 그저 영화를 보았을 뿐이고, 좋은 영화를 만나고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험은 부산에서 십대를 보내고, 서울에서 이십대를 보내는 동안에도 내가 늘 해오던 것이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뉴욕의 시네마테크들에서 내가 만났던 영화들과 영화인들에 대해 부러움을 표할 때, 나는 한국영상자료원이나 서울아트시네마, 영화의 전당에 앉아 있는 그들을 부러워했다. 밝은 햇빛 혹은 현란한 네온사인이 내미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깜깜한 어둠 속에 틀어박혀 영화를 보는 것을 선호하는, 어느 프랑스인의 묘사에 의하면 ‘시네마테크의 들쥐들’ 같은 시네필들이 하는 경험이란 결국 어떤 도시에 체류 중인가의 문제가 아닌 어떤 극장을 찾았는가의 문제에 의해 좌우되며, 그것들 사이에 우열 관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맨해튼>(1979)을 극장에서 본다면, 그곳이 맨해튼의 필름 포럼이 아니라 상암동의 한국영상자료원이라고 할지라도 당신은 한 시간 반 남짓 우디 앨런의 시선으로 바라본 1970년대의 맨해튼에 있는 것이다. 극장 문이 닫히고 나서 영사기가 돌아가기 시작하기 전까지의 짧은 어둠 속에서 관객들은 이전까지 자신이 속해 있던 세상과 격리되어 곧 상영될 영화의 감독이 설계한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서기 때문이다. 영화에 의해 재구성되고 재창조된 공간은 그곳이 세트였든 아니면 실제 장소였든 간에, 분명 존재하기에 필름에 착상되어 이미지로 재연되었지만, 막상 그것이 촬영된 실제 장소와는 다른 성질을 띠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다. 그렇기에 찰나의 암전 후 영화가 상영되는 세상의 모든 영화관은 엄밀히 말해 일종의 무국적 지대이며, 그 속의 시네필들은 이를테면 국적은 물론 시간과 공간의 경계마저 초월한 그 영역을 유랑하는 초국적의 시민들인 셈이다. 그들이 이미 극장에 들어선 순간 그들에게 자신이 위치한 물리적인 좌표는 무의미할 뿐이다, 유일하게 중요한 사실은 그들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것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시네필이 도시 간을 이동하며 여행하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같은 영화를 보더라도 서로 다른 장면에서 울고 웃는 타 문화권의 관객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체험은 때때로 그들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하며, 다른 도시를 방문해 그간 영화 속에서 보았던 모습과 실제 장소를 비교해보는 것은 그 영화가 그 도시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것을 영화적 공간으로 구성한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주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더불어 여행자로서 시네필은 유명한 관광 명소뿐만이 아니라, 일반 관광객들이라면 무심결에 지나칠 법한 곳들에서도 그 장소에 덧입혀진 서사에 기대 감흥을 느낄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킹콩의 사랑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더라도 엠파이어 스테이츠 빌딩의 풍경에서 감흥을 느끼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이터널 선샤인>(2004)을 보지 않은 채로 몬타우크에서 감흥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물리 법칙을 극복할 수 없기 때문에, 앞서 나열한 것들과 같은 시네필적 경험을 모든 장소에서, 모든 영화와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필연적으로 각자 다른 영화를 만나며, 내가 만나지 못한 영화를 만날 누군가를 끊임없이 부러워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영화의 곁을 지킨다면, 그래도 영화라는 것이 도대체 어떤 형태인지 점차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앞선 시네필들이 단지 영화를 만들고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것에 대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 서로 다른 경험을 한 시네필들이 서로에게 ‘저는 이 영화를 이렇게 보았습니다.’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부치듯이 쓴 조각들이 모여 감히 혼자서는 완성하지 못할 영화의 지도가 그려지기 시작하고, 그 지도를 보며 후대의 시네필들이 다음엔 어떤 영화를 찾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며 새로 써나간 편지들이 모여 이뤄진 것이 어쩌면 시네필의 역사이자, 영화 비평의 역사이며, 영화사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직은 조금 서투르고 정리가 안 되긴 했지만, 그리고 엉뚱하긴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이 그 무엇보다 내가 뉴욕에서 겪은 시네필적인 경험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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