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최근 단편영화들의 어떠한 경향, 그리고 우려되는 몇 가지  <신기록> (허지은, 이경호 2018), <증언> (우경희 2018)

by.이지연(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국장) 2018-07-06조회 4,631
신기록

최근 영화제 단편심사를 보며 느낀 경향 중 눈에 띄는 것은 '여성'과 '젠더'에 대한 영화의 증가다. 그 중 한국에서는 ‘#OO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으로 시작되어 최근에  ‘#ME_TOO’ 운동으로 주목받고 있는 성차별, 성폭력을 주제로 한 영화가 단연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위의 주제를 담은 편수가 증가한 만큼 그를 보여주는 방식에 있어 아쉬움과 우려가 드는 작품 또한 많았다. 

무엇보다 관련 주제를 소재로만 차용하는 한계를 지닌 작품이 많았고 또는 영화적으로는 완성도가 높은 것에 반해 영화적 태도에 의문을 갖게 하는 영화들도 있었다. ‘폭력의 문제’에 대해 말하는 영화임에도 불필요하게 디테일한 묘사랄지 카메라의 관음적 샷, 피해자를 전형적(무기력하거나 히스테릭하거나)인 캐릭터로 구현한 영화들이 많았다. 반대로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여성혐오 범죄의 가해자를 주인공으로 다룬 영화들도 있었는데 이 영화 중 동일한 우려가 드는 작품들이 있었다. 주인공의 가해행위에 대해 인과 관계의 서사를 부여하고 연민의 관점을 택한 영화들도 볼 수 있었다.

이와 더불어 위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들의 또 하나의 경향은 폭력을 재순환시키는 방식이다. 영화 속 가해자를 단죄하는 방식으로 실제 물리적인 폭력을 사용하는 영화들이 많았다. 서사의 극대화를 위한 ‘반전’ 코드로 폭력을 재생산하거나 폭력의 정당성을 취하려는 방식이 많았는데 반전의 통쾌함보다 씁쓸함을 남겨 주었다. 

이러한 영화들을 보며 영화가 지녀야 하는 윤리적인 태도는 어떠해야 하는가, 고민이 들었다. 그 중 이러한 고민이 느껴지는 두 편의 영화가 눈에 띄었다. <신기록>과 <증언>이다. 
 
신기록 스틸

경찰 공무원이 되기 위해 체력시험을 준비 중인 소진을 신경 쓰이게 하는 것은 일방적인 고백을 해오는 영민이다. 알려준 적 없는 집에 찾아오기도 하고 원하지 않는 선물을 놓고 가기도 한다. 그녀의 주변인들은 남녀 간의 밀당 정도로 여기고 소진의 정보를 무신경하게 알려주거나 훈수를 두기도 한다. 어느 날 운동장에서 달리기 시험을 준비 중인 소진은 철봉에 매달리기 연습을 하는 현숙을 보게 된다. 요령이 없는 현숙은 자꾸 철봉에서 떨어진다. 

영화 <신기록>은 약자에게 가해지는 사회전반의 혐오, 남녀의 사정으로 치부되는 데이트 폭력, 그를 벗어나기 위한 안전한 이별 등 최근에서야 주목을 받고 있는 여성이 겪는 불안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것들이 ‘예민한 이’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에게 얼마나 일상적인 것인지 영화전반에 세심한 태도로 배치한다. 무엇보다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것은 소진과 현숙이라는 캐릭터다. 기존 영화들에서 피해여성을 무기력하거나 불가해하게 그린 것과 다르게 소진과 현숙은 폭력을 탈피하고자 하는 주체적인 캐릭터로 각자의 불안을 극복하고자 서로가 연대한다. 엔딩에 이르러 그들의 잡은 손을 볼 때 뭉클한 이유다. 
 
신기록 스틸

또 다른 영화 <증언>은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와 피해자를 바라보는 주변인들을 담고 있다. 혜인은 대기업 면접을 앞두고 계약만료로 그만둔 전 회사에 경력증명서를 받으러 간다. 하지만 그보다 오늘은 꼭, 간식 값을 핑계로 혜인의 돈 67,600원을 갚지 않은 이 과장에게 돈을 받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 과장은 5만원만 내밀고 심지어 그 돈으로 간식을 사오라고 한다. 간식을 함께 사러가던 오대리가 혜인에게 어렵게 말을 건다. 부장의 성희롱을 증언해 달라는 부탁이다.    

<증언>은 성폭력 피해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을 담고 있는 영화다. 피해자에게 원인유발의 책임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 그런 피해자를 대상화하거나 배척시키는 시선, 혹은 피해자의 말을 믿지 않고 증거와 팩트를 요구하는 심판관적 태도 등. 더불어 사건이 발생한 공간, 회사라는 권력구조의 공간 안에서 위계별로 위치한 개인들의 이해관계를 디테일하게 보여준다. 위계관계는 동성 간에도 발생하며 사건을 바라보는 각자의 입장 또한 각각이 위치한 위계관계에 기반 한다. 
 
증언 스틸

혜인은 영화 <증언> 속 여러 인물들의 태도와 관계 가운데 자신은 어떠한 시선을 지녀야 하는지 고민한다. 그런 혜인을 통해 영화는 묻는다. 우리는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가? 저들 가운데 나는 어디에 위치할 것인가? 용기를 내기까지 거듭 고민하고, 고민가운데 옳다고 믿는 것을 찾아가는 혜인의 성장을 통해 영화를 보는 이들도 용기를 낼 수 있기를, 감독은 말하고 있다. 

영화로써 소재를 단순히 소비하지 않고 사건과 피해자를 대상화하지 않고 그 가운데 나와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 동일한 주제를 담은 작품들 가운데 이것들을 깊게 고민한 흔적이 역력한 <신기록>과 <증언>이 눈에 띄는 이유다.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