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이 치러졌던 지난 11월 8일,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간 힐러리 클린턴이 쭉 앞서던 필라델피아 주의 색깔이 붉은색에서 푸른색으로 바뀌었다. 승리의 여신이 도널드 트럼프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음이 거의 확정 된 순간이었다. 그날 밤과 이후의 며칠 동안 42번가의 타임스퀘어의 한 건물의 광고판엔 트럼프가 미칠 영향을 경고하는 문구가 걸렸고, 뉴욕의 시민들은 퇴근 후 매일 저녁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 앞으로 몰려가 그들의 대통령 당선인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였다.
이튿날 아침엔 소위 말하는 ‘뉴욕 버블’을 꺼트리기라도 할 기세로 비가 내렸다. 현재 필자가 재학 중인 컬럼비아 대학교의 예술 대학은 ‘뉴욕 버블’의 전형적인 예시라고 할 만한 집단이다. 버니 샌더스의 지지자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자신의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고, 몇몇 공화당 지지자들은 대선 레이스 내내 침묵을 지키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집단. 몇몇 미국인 학생들은 실의에 빠져 수업에 나오지 않았고, 그나마 농담을 던질 힘이 남아 있던 영화학도들은 흐린 하늘을 가리키며 ‘이것이 새로운 시대의 모습이구나…’라며 쓴웃음을 겨우 지어냈다. 유학생과 미국인 학생의 비율이 6:4일 정도로, 타 국적의 학생들이 많은 집단이지만, 미국의 군사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나라 출신들이 꽤 많은 탓에, 우리는 국적을 불문하고 함께 다가올 미래에 대한 불안을 공유하고 서로를 달랬다. 영화학도들뿐만 아니라 영화과의 교수들도 어느 정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 많은 극작 혹은 연출 분과의 교수들이 본격적인 수업 시작 전 30~40분의 시간을 대선에 대해 말하는 것에 할애했고, 학장은 모든 예술학도에게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학과 건물의 로비 한쪽 벽면엔 ‘다가올 시대의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써 붙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졸도Swoon>(1992)과 <
세비지 그레이스Savage Grace>(2007)를 연출한 영화감독이자 컬럼비아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가르치는 중인 톰 케일런이 사석에서 내게 해준 말이었다.
자신의 연출 수업 시간에 <
살인의 추억>(2003)을 예시로 보여줄 정도로
봉준호 감독의 열렬한 팬인 케일런은 종종 내게 한국 사회에 대해 묻기도 하기에, 우리는 각자가 속한 사회뿐만 아니라, 타자로서 각자의 사회에 관해서도 얘기를 나누었는데, 무수한 긴 한숨들이 지나간 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를 챙길 때, 그가 마지막으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클리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서로 더 사랑하고 지켜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럴 수 없다면 우리에게 더 이상 희망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로 그 순간에 그의 말이 내게 와 닿진 않았다. 말이야 바른 말이었지만, 그의 말마따나 클리셰처럼 느껴졌달까. 하지만 정확히 그날 밤이었는지 아니었는지는 잘 기억나진 않지만, 케일런의 말을 곱씹으며 시간을 보내던 중, 한국에서 날아온 기사 하나를 며칠이 지나 뒤늦게 읽은 순간, 그의 말은 더 이상 클리셰로 느껴지지 않게 되었다. 11월 5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2차 범국민 행동에서, 10대 청소년들이 폴리스 라인 앞에 늘어서 경찰을 지켰다는 내용이었다. 방금 읽은 것을 머리로 이해하기도 전에 눈물이 먼저 왈칵 쏟아졌다.
클리셰가 무엇인가? 어떠한 이야기를 풀어냄에 있어 독창적인 고민 없이, 이미 사용될 만큼 사용된 장치를 쉬운 선택지로 골라 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너무 많이 반복 사용된 듯 보이는 보편적인 장치라도, 적절한 곳에 위치해 확실하게 효과를 발휘한다면, 아무도 그것이 클리세라고 어깃장을 놓지 않는다. 경찰에게 보호받아야 할 10대 청소년들이 평화 시위를 지키기 위해 오히려 경찰을 보호하려고 나섰다는 이야기가 우리가 서로 더 사랑하고 지켜나가야지만 희망이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는 누군가의 메시지와 만났을 때, 나는 마치 ‘문제에 처한 주인공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을 실행할 용기를 낸다.’는 아주 보편적인 스토리의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를 보는 관객이 된 기분이 들었다.
흔히 정치 비관론에 빠진 이들은, 다시금 뭔가를 바꿔보려고 움직이는 사람들을 향해 냉소를 던진다. ‘그래 봤자 변하는 것은 없더라.’, ‘겪어 보니 그 놈이 그 놈이고, 다 똑같더라.’라는 흔한 푸념부터, 심하게는 ‘촛불은 바람에 쉽게 꺼진다.’까지 등의 논리가 일종의 갑옷이자 눈가리개가 되어 그들을 둘러싼다. 어쩌면 그들이 보기에 역사 속에서 무수히 반복되던 착취와 지배 그리고 그에 대한 저항의 시도들은 역사의 클리셰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의 저항과 움직임은 때때로 즉각적인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세대와 세대를, 그리고 세기와 세기를 거쳐 더딘 응답을 언제나 받아내곤 했다. 누군가가 지금 신분제의 부활과 노예 사유화, 그리고 여성의 정치 참여 제한을 주장한다면 그 누군가는 미친 사람 취급을 받겠지만, 사실 노예 해방이 이뤄지고 여성 참정권이 인정받은 것은 이 길고 긴 인류의 역사의 끝자락, 불과 지난 한 세기 동안 이뤄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침묵하는 기득권의 냉소와 탄압을 겪어 내고 당연해야 하는 것들을 이뤄내려는 사람들의 지난한 노력과 그 과정은 길고 긴 인류의 역사라는 이야기 속에서 분명 효과를 발휘한, 클리셰가 아닌 그 무엇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