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 신정원, 2020

by.강병진(영화저널리스트) 2020-11-20조회 1,564
죽지않는 인간들의 밤
유튜브에 ‘<시실리 2km> 명장면’이란 검색어를 넣어보자. 임창정우현이 ‘나이’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임창정이 연기한 양이가 우현이 맡은 조직의 막내 해주에게 나이를 묻는다. 해주는 ‘개띠’라고만 말한다. 양이는 그를 1982년생, 1970년생으로 추측하다가 둘 다 아니라는 말에 “앞으로 나에게 형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며 화를 낸다. 해주는 “왜요?”라고 묻는데, 이때 양이는 “그럼 니가 94냐?”라며 신경질을 부린다. 흘리듯 들리는 이 대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우현의 얼굴 때문에 꽤 웃기다. '성숙한 얼굴’에 ‘그렇지 못한 나이’를 연결 짓는 이런 유머는 <시실리 2km>를 연출했던 신정원 감독의 신작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거의 그대로 반복된다. (이번에도 ‘94년생’이 언급된다.) 이 장면에서 피식 웃고 나서야 새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이 꽤 오랜만에 보는 신정원 감독의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제목부터가 신정원 감독의 전작들을 포괄하고 있었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어도 죽지 않는다’란 설정은 기괴한 긴장감과 웃음을 터트린다. 엄청난 신체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 그런 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인간도 그런다. 언뜻 별 특이할 게 없어 보이는 설정이다. 그런데 신정원 감독의 영화에서는 죽여도 죽지 않는 인간이 딱히 뛰어난 능력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가 왜 죽지 않았는가를 아예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특별한 설정이 된다. <시실리 2km>에서 권오중이 연기한 석태가 겪는 ‘죽음의 연대기’를 돌이켜보자. 변기에 뒤통수를 부딪혀 쓰러진 그를 모두가 죽은 줄 안다. 그런데 안 죽어서 삽으로 쳤더니 쓰러졌길래 또 죽은 줄 알았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그는 애타게 구조신호를 보내는데, 하필 머리에 못이 박혀서 또 죽은 줄 알았다. 이번에는 땅에 묻었는데, 그래도 그는 살아난다. 어디에도 그가 왜 죽지 않았는 가란 설명은 없고, 관객도 그걸 필요로 하지 않았다. 단지 석태의 끈질긴 생명력과 그보다 더 끈질긴 불운이 <시실리 2km>의 웃음을 이끄는 리듬이었을 뿐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서 죽지 않는 인간의 불운은 인공지능 스피커와 스타일러 덕분에 더 밀도 높은 긴장감과 웃음을 주고 있다.  
 

신정원 감독의 영화가 가진 또 다른 특징은 관객의 예상과 상관없이 ‘불쑥’ 등장하는 순간들이다. <시실리 2km>에서 귀신이 된 송이(임은경)가 나뭇가지를 톱으로 자르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인서트가 대표적이다. 개인적으로는 <차우>에서는 포수 천일만(장항선)이 가른 멧돼지의 배에서 커피믹스 봉지가 나오는 장면을 최고로 꼽는다. 백만배(윤제문)가 자신의 개와 대화를 나누는 장면, 또 백만배가 변수련(정유미)과 우유와 연양갱 등을 나눠 먹는 장면 등이 모두 딱히 이야기의 흐름과는 상관없지만, 키득거리게 되는 장면이다.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에도 이런 순간은 곳곳에 있다. 죽은 연인을 바라보는 장면에서 뜬금없이 흘러나오는 ‘<모래시계> 혜린의 테마’, 주인공 남편의 쉬지 않는 여성 편력을 설명하다가 등장하는 ‘3만 원어치의 경유를 마시는 장면’, 잠시 기억을 잃은 인물이 반복하는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요?’란 대사. 정교한 계산으로는 배치할 수 없는, 그저 ‘어쩌다 하필 그 자리에 놓여 있다’고만 말할 수 있는 그런 장면이 신정원 감독이 영화가 가진 개성이다.  
 

종합하자면, 신정원 감독의 영화는 너무 뻔뻔해서 뻔뻔하다고 지적할 생각조차 나지 않는 뻔뻔함의 영화다. <시실리 2km>에 나온 마을 주민들의 캐릭터와 흡사하다고 할까? 아직 죽지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치기’ 위해 일부러 라면 국물을 들이켰던 그들의 모습처럼 신정원 감독의 영화에서는 가장 뻔뻔한 순간에 가장 크게 웃을 수 있다. 그래서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의 아쉬운 부분 또한 ‘뻔뻔하지 못한’ 순간들이다. 외계인의 존재 이유와 그들의 목적을 설명하는 ‘지구 외 생명체 검역 관리소’ 같은 설정이 꼭 필요했을까? 왜 굳이 그들을 등장시켜 외계인과의 한 판 액션을 벌이게 했을까? <차우>에서 ‘백백교’ 교주의 죽음을 멧돼지와 연결시켰던 것처럼, <죽지 않는 인간들의 밤>도 더 뻔뻔하게 외계인을 이용했다면 어땠을지. 그랬다면 <시실리 2km>와 <차우>를 보았던 그때처럼 웃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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