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창 심혜정, 2019

by.권은선(영화평론가) 2020-12-15조회 3,826
‘욕창’은 문자 그대로 이 영화의 주요 제재이자 은유이다.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어떤 주저함과 마음의 덜컥거림이 생겨났다. 의학사전에서 한 번은 보았던, 눈을 회피하게 만드는 이미지, 그리고 노년의 중증환자와의 친연성이 생성해내는 근심과 견뎌냄의 의미 덩어리가 영화적 체험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저어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노년과 질병은 그 피할 수 없음으로 인해 더 피하고, 미루어 두고 싶은 문제인 것이다. 아마도 이것이 노년이나 질병이 혹은 노년의 질병 문제가 영화 속에서 진지하게 잘 다루어지지 않는 이유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창>(심혜정, 2019)은 아내이자 어머니인 한 여인의 엉덩이 위에 생겨난 질환 ‘욕창’을 둘러싼 한 가족의 이야기를 뚝심 있게 밀고 나간다.  

찰리 채플린은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던가. 어찌 보면 이 영화에서 욕창을 바라보는 태도가 그러하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이지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면 그 증상이 촉발한 ‘가족 시네마’에 소극(笑劇)적 성격이 배어든다. 감독은 “겉에서 봐서는 모르고, 얼마나 깊은지가 문제”인 욕창이라는 증상을 둘러싼 가족 세계의 표피를 사실주의적으로 구축해가면서, 동시에 피부 심층 피하조직의 궤양의 깊이를, 대상으로부터의 거리의 확보를 통해, 가족 관계에 대한 은유적 의미로 바꾸어낸다.
   

시작과 함께 영화는 누가 이 실내극의 이방인인지를 질문한다. 장년과 초로의 이음새 즈음에 있는 듯한 창식과 재중동포 어투를 가진 수옥 사이의 적당히 화기애애한 두 사람만의 공기는 휠체어를 탄 중증환자 길순의 등장으로 깨진다. 정지된 듯 움직임 없는 그녀의 외피는 화표면에 이질성을 도입하며 공간의 기운을 바꿔놓는다. 길순은 이방인이다. 이 ‘집’의 이방인은 간병인이지만, 시각적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이방인은 아내인 것이다. 

감독은 이처럼 공간 안을 순환하는 미묘한 기운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영화 속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딸 지수가 어머니의 욕창 발생 소식을 듣고 창식의 집에 들러 거실에 들어서는 순간의 묘사다. 카메라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걸레질을 하느라 엉덩이가 불쑥 솟아 난 수옥의 뒤태를 지수의 시점 쇼트로 잡는다. 그 엉덩이의 활력은 길순의 욕창 아래 엉덩이와 대비되며, 또한 창식이 욕망하는 어떤 것을 현시하면서, 그 삶의 활력이 그 것의 상실과 충돌하고 부딪히며 몰고 올, 앞으로 이 실내에서 펼쳐질 갈등의 드라마의 기미를 스크린 표면 위에 낯설게 도입한다. 그것이 창식의 시점 쇼트였다면 진부하고 느끼한 냄새를 풍겼을 것이다. 

가족 구성원 각각이 가지고 있는 딜레마는 거울상과 같은 다른 대상과의 마주침, 대비, 변주 등을 통해 의미의 폭을 넓혀간다. 예컨대, 지수가 처해있는 이중의 딜레마는 친정과 자신의 집의 거실 풍경의 대조를 통해 깊어지고, 영화 속 이질적 요소인 빨간 파카를 입은 중증 장애인 남자와 가족 구성들과의 우연한 마주침들의 변주는, 길순과는 다른 층위에서, 누구나 언젠가는 마주할지 모르는, 피할 수 없는 나이듦과 중증질환의 문제를 객관화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아버지의 물건들과 어머니의 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가부장의 상징적 권위를 안쓰럽게 주장하고 있는 아버지의 의자, 삶의 에너지를 유지하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물질화하는 스텝퍼와 만보기. 그와 같은 물건들을 통해서 창식이 묘사된다면, 이미 물건 소유의 의미를 놓쳐버린 길순의 존재를 드러내는 것은 그녀의 손이다. 우리는 한 사람 분의 노동력을 가리켜 ‘손’이라 한다. 누군가 다른 이에게 무엇을 차려주고 돌보는 데에는 손이 필요하다. 타인의 손에 의지하고 있는 길순에게 그녀의 손은 대부분 침대에 묶여 있는 거의 유일하고 미약한 의사소통의 도구다. 불만을 똥칠로, 살아 있음을 남편의 팔목을 잡는 것으로, 안쓰러움과 사랑스러움을 딸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 표현하는 길순의 손이 그것이다. 

심혜정 감독은 실험 비디오 작업과 퍼포먼스로 경력을 시작하여 단편 다큐와 극영화 작업을 병행해 왔다. 대개의 미술 학제의 배경을 가진 연출가들의 작업이 서사보다는 이미지 자체의 물질적 성격과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는 편견과 달리, <욕창>에서 이미지는 한 치도 서사에서 돌출하여 자신의 독자적 도드라짐을 퍼포먼스하지 않는다. 정공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이미지는 서사가 요구하는 만큼만의, 서사와의 조응 속에서 그 움직임과 깊이를 가지고 있다. 심혜정은 장편 데뷔작을 통해 비 내러티브 작업뿐만 아니라 내러티브 작업에도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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