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여름밤 윤단비, 2019

by.김나현(중앙일보 기자) 2020-10-13조회 2,341
90년대생 감독이 쓸쓸한 유년의 기억을 담아내는 방식 

처음 이 영화의  포스터를 보며 신기해  했다. 포스터엔 2층 양옥집에 가족들이 밥을 먹고 있는데, 집은 아주 크게, 사람들은 작게 배치돼있다. 영화를 보니 역시 주인공이 집이었다. 아름답고 넓은 마음으로 가족들을 받아 준 할아버지를 닮은 낡은 2층 양옥집.

고1 옥주는 아빠 병기(양흥주)와 남동생  동주(박승준)와 함께 철거되는 동네를 뒤로 하고 할아버지(김상동) 댁으로 거처를 옮긴다. 손주들의 인사에도 별 대답 없던 할아버지는 “애들 방학 동안만 지낼게요” 라는 아빠의 말에 처음으로 입을 연다. “좋을 대로 해.” 곧이어 이혼을 앞두고 있는 고모 미정(박현영)도 이 집에 들어 온다. 할아버지와 낡은 집, 두 쌍의 남매가 함께 하는 시간. 이 영화는 집의 시점에서 4명의 남매가 겪는 여름을 지긋이 바라보듯 담는다.  
 

나이든 남매(병기와 미정)는 이혼이나  사업 실패 같은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미정은 “날 괴롭히려고  태어난 요괴” 같은  남편을 떠나려 하고,  병기는 두 아이의  생계를 위해 가짜  브랜드 운동화를 팔며  새로운 직업을 가지려  노력 중이다. 어린  남매(옥주와 동주)은 헤어진  엄마를 향한 그리움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  부딪친다. 옥주는 첫사랑의  생채기도 안고 있다. <남매의 여름밤>은 각자의  폭풍 같은 시기를  잔잔하게 풀어낸다. 힘든  일이 있어도 식구끼리  콩국수, 잡채, 비빔국수 같은 요리를 해 먹으며 덤덤히  살아내는 시간. 각자  삶의 다음 구절로  옮겨가는 여름의 시간.  이 영화의 영제는 <Moving on>이다. 

이러한 ‘성장의 기억’이라 주제는 최근 약진하는 젊은 여성 감독 영화에서 자주 발견된다. 김보라 감독의 <벌새>, 윤가은 감독의 <우리집>, 윤단비 감독의 <남매의 여름밤>까지 각자 다른 방식으로 훌쩍 커버린  한 시절을 영화에 박제한다. 이를 시대적 감수성 혹은 노스탤지어를 경유해 묘사하는 경향을 두고 송경원 평론가는 “이 기억들을 반영하는 형태에 구체성이 결여돼 있어 결과적으로 안전한 방식, 그러니까 추억으로 환원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고 평했다.  

<남매의 여름밤>을 두고 파생된 여러 질문 중 나를 사로잡은 건 ‘기억과 추억을 가르는 것은 무엇인가’ 였다. 시공간의 구체성과 통찰의 메시지를 담은 건 기억이고, 구체성을 뭉개고 예쁜 필터를 넣어 보정한 건 추억인가? 그렇다면 추억은 아름답고 아스라한 미장센으로 만들어지는 것인가? 혹은 에드워드 양이나 고레에다 히로카즈, 오즈 야스지로 같은 동아시아의 걸출한 영화 작가의 영향이 느껴지는 연출에서 오는 것인가? 
 

물론 <남매의 여름밤>에선 위의 언급한 작가 감독들의 영향이 짙게 보인다.  인물의 클로즈업을 지양하고 인물의 움직임을 고요히 응시하는 촬영, 인물이 프레임을 나가도 당장 끊지 않은 편집 등등. 하지만 이 영화의 이런 연출은 그저 감독 개인이 좋아해온 고전영화를  흉내내거나, 그런 영화들을 그리워하는 감상으로 쓰인 것 같진 않다. 그보다는 대사나 연기 조율 같은 1차적인 연출 외의, 그 이상의 고전영화의 영화언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인상을 준다. <남매의 여름밤>은 그 문법을 차용해 영화의 시선을 쉼없이 양옥집으로 돌려놓는다. 양옥집이 보고 있는 두 쌍의 남매를 관객도 보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의 중심은 ‘양옥집’이고 관객도 이 공간을 향유하길  바란다고, <남매의 여름밤>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양옥집의 존재감은 포스터에서 보이던 것만큼 대단하다. 윤 감독이 오랜 시간을 쏟아 인천에서 찾아냈다는 이 집은 원래 한 노부부가 살던 곳이다. 말하자면 너무도 현실적인 ‘남의 집’이다. 내부 인테리어도 그대로 썼다. 오래된 옥색 시계, 하회탈이 담긴 액자, 무심히 걸린 달마도까지. 현실에서 곧장 튀어나온 것 같은 이 곳은 극영화의 배경이라기엔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이 영화가 실재와 재현 사이를 오가는,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 있는 듯 느껴지는 이유다.  병기와 미정을 연기한 양흥주와 박현영의 놀랄 만큼 뛰어난 일상 연기도 여기에 힘을  보탠다. 

그런 이유에서 이 영화가 가장 관심있는 지점이자, 궁극적으로 달려 가는 지점은 양옥집의 소멸과 집 주인인 할아버지의 죽음이다. 이 나른한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가장 덜컥하게 하는 순간은 할아버지가 바지에  똥을 쌌을 때와 아빠와 고모가 할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후 집을 팔려고 할 때다.  
 

어쩌면 이 영화를 지배하는 가장 중요한 정서는 잃어버린 것의 그리움이 아니라, 곧 잃어버릴 것에 대한 슬픔일 것이다. 그 슬픔이 <남매의 여름밤> 전체를 관통한다. 첫 장면, 옥주가 살던 반지하 집의 동네 자체가 철거되는 상황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좋아했던 것을 부단히 잃어버리고 또 다른 소중한 것을 만들면서 성장한다. 옥주는 이미 엄마와 반지하 집을 잃었다. 그리고 다시 생긴 소중한 것은 할아버지와 바로 이 집이다. 엄마와의 재회를 두고 옥주와 동주가 크게  다투던 순간,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2층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꺼이꺼이 우는 동주를 아무 말 없이 데리고 내려간다. 아이들이 겪는 상실의 상처를 조용하고 따뜻하게 보듬는 어른. 이 존재의 소중함이 가장 강하게 느껴지는 순간, 관객은 그 역시 사라질 것임을 직감한다.  

다시 양옥집 얘기로 돌아가보자. 자신의 정서적 기억을 영화에 풀어내려던 젊은 감독은 영화의 핵심 요소로 왜 ‘남의 집’을 선택했을까? 인천에 오래 살았던 한 노부부의 손때 묻은 이 집은 지금은 실재하지만, 멀지 않은 어느 시기에 곧 사라질 것 같은 느낌 때문은 아니었을까 추측해 본다. 영화의 상상력과 실재하는 공간이 만나 이뤄낸 새로운 파동. 정리하면 <남매의 여름밤>은 타인의 공간을 빌려와, 소중한 것들을 잃으며 자란 쓸쓸한 기억을, 고전 영화의 문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말한다. 솔직하고 자유롭고 대담한 선택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들 세대에게 고전영화는 너무 소중히 여기며 승계할 게 아니라, 감독 개인이 좋아하고 친숙한 여러 영화 언어 중 하나인 듯 싶다. 이렇게 21세기 영화라는 매체 안에서 개인이 기억을 구체화하는 방식은 유연하고 자유로워 지고 있다. 이 흥미로운 변화의 흐름이 달갑지 않을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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