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한 손모아, 안정연, 2020

by.정지혜(영화평론가,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2020-10-23조회 1,818
가만한 스틸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로 일하며 첫 번째 장편 영화를 만든 감독들의 영화를 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발견’이라는 단어의 뜻에 충실한 영화로 손모아, 안정연 감독의 데뷔작 <가만한>(2020)을 말하고 싶다. ‘움직이지 않거나 아무 말도 하지 아니하는 상태에 있다’라는 ‘가만하다’는 이 영화를 설명하는 오롯한 형용사이자 영화의 주인공 준서(박수연)의 상태이며 그것을 바라보는 이 영화의 핵심적인 태도의 말이기도 하다. 준서는 음악을 사랑하는 아이였다. 예고를 졸업하고 음악대학에 진학해 피아니스트가 되길 꿈꿨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 알 수는 없지만 준서는 꽤 오랫동안 피아노를 칠 수 없는 상태다. 손가락은 굳어 쉬이 움직이지 않고, 그 가만한 손을 내려다보는 준서의 얼굴은 표정을 잃었다. 마음에 웅숭그린 발화되지 못한 말을 끄집어내기보다는 적요한 침묵 속에서 자신의 손을 바라보는 일이 잦은 준서다. 굳어버린 건 손가락이기보다는 준서의 마음일 것이다. 영화는 준서가 한동안 떠나 있던 음악대학을 다시 찾아 그곳 학생이 아니라 임시 행정 조교 일을 하겠다고 결심하면서부터 시작된다.
 

<가만한>에서 우리는 준서의 존재보다도 더 크게 바흐와 쇼팽을 비롯한 클래식 피아노 선율의 존재감을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것이다. 음악은 준서를 떠나지 않는다. 준서가 학교에서 피아노과 학생들을 보조하며 그들의 연주회를 준비할 때든, 강박적으로 피아노 연주에 몰두하는 편입생 수미(이화원)를 지켜볼 때든, 어째서 피아노를 치지 않는 거냐며 속상해하는 엄마(오민애)의 공간에 있을 때든 음악은 필수 불가결한 공기처럼 화면을 채우고, 흘러들어오고, 스며든다. 때론 먼 곳에서 누군가의 연주인지로 모를 음악이, 때론 지근거리에서 준서의 마음을 울리는 음악이 준서와 그녀의 공간, 나아가 이 영화 전체를 감싸 안는다. <가만한>에서 음악은 서사를 보완하기 위한 장치도, 분위기를 만드는 요소도 아니다. 이곳의 음악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서였고, 지금의 준서이기도 하고, 앞으로의 준서를 예견하는 준서의 세계 그 자체다. 다시 쓰면, 음악이 준서를 떠나지 않는 게 아니라 준서가 음악을 떠날 수 없고, 떠나지 않는다.

<가만한>은 준서의 굳은 마음의 상태가 해빙의 과정을 거치는 시간을 따른다. 이때의 해빙이란 결코 어떤 결론이나 해결을 전제하고 진행되는 게 아님을 기억하자. 그저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받아들이고 음악 안에서 살며 음악을 계속해가기 위한 분투, 다르게 음악을 사랑하려는 준서의 상태의 변화를 말한다. 미묘한 점진을 구현하는 이 영화의 방식은 일관되고 그 자세 역시 의연하다. 우리는 <가만한>에서 준서의 얼굴보다 훨씬 더 많이 그녀의 등과 뒷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액션에 따른 준서의 감정의 리액션 쇼트를, 스펙터클한 얼굴의 세계가 아닌 준서의 가만한 등의 액션과 리액션을 더 유심히 봐야 하고 그곳에서부터 감응은 시작된다. 뒷모습이 보이는 조용하고 은은한 떨림과 부동에서 얼마나 더 많은 이야기가 전해질 수 있는가를 영화는 설득해내고 싶어 하고 또 설득해낸다. 반대로 몇 안 되는 순간이지만 카메라가 오직 준서의 얼굴만을 미동도 없이 똑바로 응시할 때가 있다. 카메라 너머에는 준서가 더는 가닿을 수 없는 음악의 세계가 있거나 더는 함께할 수 없는 불화하는 세계가 있다. 준서의 세계 이쪽과 저쪽이 완벽히 분리되는 순간을 이토록 정확하게 목격하게끔 할 때 우리는 또 다른 의미에서 감정의 파고를 경험할 것이다. 한편 영화는 이것만은 차마 볼 수 없다고, 보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단호하게 자신의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가만한>의 카메라는 대부분 고정돼 있지만 몇 차례 움직임을 보여줄 때가 있는데 그중 하나의 장면을 말하려 한다. 준서가 연습의 압박에 시달리다 손에 마비가 온 수미를 발견했을 때다. 카메라는 인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수미가 마비된 제 손을 주무르고 그 곁으로 준서가 다가가는 순간까지를 보여준다. 고통으로 일그러진 수미의 얼굴로는 이동하지 않기로 한다. 굳이 보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고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대신 <가만한>은 인물이 떠나고 난 공간을 더 오랫동안 바라보고 싶어 한다. 구체적인 그 장소는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인물들의 움직임이 남긴 진동과 여진을 기억할 것이다. 사람은 가고 없어도 그들이 있었던 곳에는 여전히 음악이 흐르고 매미와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고 새들의 지저귐이 있고 빛과 그림자가 함께할 것이다. 그 소리와 빛은 마음 한구석을 아릿하게 할 만큼 애틋하다. 부동 속에서 감지되는 미약한 흐름과 정동이 빚어낸 감흥일 텐데 그것은 봐야만 하는 것과 볼 수 없지만 들리는 것 사이에서 음악이 계속되듯, 준서의 삶도 계속되리라는 귀한 긍정을 목격하며 오는 것이기도 하다. 과격한 사건과 극적인 반전 혹은 자극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 감동이 있음에 새삼 안도한다. 각본을 쓴 안정연의 사려 깊은 시선과 촬영을 맡은 손모아의 미더운 앵글이 가져다준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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