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박상현, 2018

by.김소미(씨네21 기자) 2020-08-27조회 1114
탐정으로서의 장녀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아니, 엄마에 대해 비밀도 오차도 없이 모두 다 알고자 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사랑하건 혐오하건 엄마는 엄마다. 그래서 자녀들은 종종 엄마를 철저히 현재형으로 단순화한다. ‘우리 가족’으로 포섭되기 이전의 엄마의 삶이란, 종종 막연한 두려움을 낳는다. 나와 내 아버지만 없었다면 혹시 그녀의 삶이 더 행복하지는 않았을까? 가족의 풍경이 지옥이 될 때, 이 질문은 화살표의 방향을 돌연 바꾸어 놓기도 한다. 부모가 없다면, 가족만 없다면, 내 삶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래서 곧 성년을 앞둔 <결백>(박상현, 2018)의 주인공 정인(신혜선)은 그 나이대에 누구나 그러하듯이, 엄마를 탐구하는 대신 자기 삶의 돌파구를 택한다. 야반도주다. 폭력적인 아버지, 자신보다 언제나 먼저인 남동생, 딸의 대학 진학을 반대하는 아버지에게 너무도 무력한 엄마. 이 모든 것들로부터 도망친다. 십여 년 후 그는 서울에서 잘 나가는 대형 로펌의 에이스 변호사로 자리잡는다. 아무도 정인의 과거를 모르고, 알려 들지도 않는데, 그러자 이번엔 고약한 운명이 다시 고개를 든다. “사건 좀 가려 받아요”라고 로펌 대표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는 냉철한 변호사로 하여금, 회의 도중 아무렇게나 틀어놓은 뉴스 화면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게 만드는 것이다. 늙고 병 든 엄마는 여전히 그대로인 그 고향에서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뤘고, 심지어는 장례식에서 벌어진 농약 막걸리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당했다. 

번쩍이는 고급 세단의 문이 열리고 칼주름이 잡힌 바지 정장에 힐을 신은 여자의 발이 내려온다. 낡은 시골집 대문으로 이어지는 길은 축축한 진흙 위에 군데군데 돌이 솟아나 있어 혹여 구두굽이 잘못 걸리지는 않을까 위태롭다. 정인의 귀환을 알리는 첫 이미지는 세월이 흘러 그가 얼마나 고향과 이질적인 인물이 되었는지 간명하게 보여준다. 부연하면 정인은 불편한 존재다.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농약 막걸리 살인 사건은 그 자체로 파열음인데다, 사람들을 탐문하고 다니는 서울 변호사는 성마른 불안과 위협으로 다가온다. 정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사실은 영화 장르를 범죄 스릴러이자 법정 드라마로 이끄는 상업영화의 검증된 장치이기도 하겠으나, 앎의 권력에 관한 젠더 이슈와 연계했을 때 생성되는 의미들과 함께 비로소 더욱 흥미진진해진다.
 

10대의 정인에게 알콜 중독으로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가 가장 큰 적대자였다면, 귀환한 변호사 정인에게는 지역의 권력자 추시장(허준호)이 나타난다.  그 사이에서 정인의 엄마 화자(배종옥)는, 이런 표현을 쓰기 싫지만, 남편과 추시장이 지배하는 세계의 피해자로 붙잡혀 있다가 어느새 미쳐버렸다. 탈출하지 못한 자가 망각(치매)을 택했다는 사실만큼 가슴 아픈 단서가 있을까. <결백>은 정인의 직업과 화자의 병을 장르(스릴러)와 주제(젠더 권력)적 측면에서 모두로 적절히 활용하는 영리함을 보여준다. 엄마의 진술에 의지할 수 없다는 불가항력적 상태가 정인에게 변호사 본연의 책무 이상으로 탐정에 가까운 역할을 요구하고, 정인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알아간다. 보태자면 용의 선상에 있는 추시장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이 막걸리 농약 사건의 피해 당사자라는 점 또한 정인에게 오히려 더 적극적인 앎의 기회를 준다. 그들 중 일부가 목숨을 잃거나 병원에 입원한 상태이고 추시장 캐릭터 역시 그의 노쇠함이 얼마간 부각된다. 어떤 시대가 끝나려하고 있고, 정인은 그 어둠이 맥없이 덮히기 전에 밝혀내려는 것이다. 

<결백> 개봉을 앞두고 박상현 감독을 인터뷰 차 만났을 때, 감독은 영화 속에 등장한 소품을 굿즈로 제작해 내게도 선물로 건넸다. 하나는 영화 속에서 범인을 쫓는 중요한 단서로 쓰이는 노래방 라이터이고, 또 하나는 추시장과 그의 패거리들이 젊은 시절 바닷가에서 물놀이 중에 함께 찍은 단체 사진이다. 라이터 디자인에서 베어나오는 지독히도 한국적인 무언가가 재밌었고, 영화 속에서 부패의 무리로 그려지는 남자들이 보내는 즐겁고 빛나는 한 때의 모습이 아이러니했다. 이 두 개의 기호만으로도 정인의 세계가, 정인의 고향 마을이 뜻하는 '구시대'가 어떤 것인지 감지되는 듯 했다. 영화가 추시장 무리의 젊은 한 때를 비추는 이 사진은 비출 때,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안으로 그 어떤 추악한 모의를 꾸미더라도 밖으로는 명명백백 해맑은 소년성을 내보일 수 있는 그들의 자신감은 어디에 기인하는가. 폐쇄적인 시골 마을에서 펼쳐지는 <결백>은 그들이 풍미했던 나날을 한마디로 ‘은폐’의 시대라고 말하는 것 같다. 농촌개발 정책과 함께 부와 권력의 획득을 꿈꾼 이들은 암암리에 고급 정보를 공유하며 살인 모의도 서슴지 않는다. 화자는 그 과정에서 영문도 모른 채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고, 정인에게는 출생의 비밀을 남겼다.
 

문학평론가 오은교는 남편 가족의 제사 풍경을 서늘하게 써내려간 강화길의 소설 <음복>을 해설하며 “가부장이라는 권력이 절대적인 사회에서 앎은 온전히 젠더화되어 있다”(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여성주의 가족 스릴러', 44p, 문학동네)고 썼다. <음복>에서는 남자가 가족 내부의 첨예한 긴장 관계에 무지할 권리를 갖고, 여성은 모든 것을 너무 많이 알게 되어 괴로운 감정 노동의 부역자로 자리한다. <결백>은 반대로 부와 권력의 관점에서 오로지 남성들 사이에서만 공유되고 은폐되는 정보들과 그로 인한 범죄를 짚는다. 그 과정에서 배제된 여성, 망각과 사적 복수를 택한 여성, 도망쳤다가 힘을 길러 다시 되돌아온 여성이 차례로 등장한다. 

배제와 은폐로 집약되는 구시대의 작동 원리를 끊어내려는 정인은 특이하게도, 자기 출생의 비밀 자체에는 그다지 타격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정인과 화자의 눈물겨운 접견 장면에서 신파조의 연출이 개입하기는 하지만, 그 절절함은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엄마의 삶에 대한 위로와 연민의 감정이지 잃어버린 아버지에 대한 통한이 아니다. 오히려 정인은 그동안 자신의 진실을 드러내놓고 향유할 수 없었던 엄마에게 뒤늦게 서사를 쥐어줌으로써 차라리 후련한 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이 연출자의 선택과 집중이라면 그 경제성의 동의하고, 만약 다른 의미가 있다면 정인을 과거의 공동체로부터 분리하려는 의도이길 바란다.
 

대중영화에서 여성 캐릭터가 천천히 진화해가고 있다는 증거로서 <결백>은 꽤 흥미로운 지표로 간주될 영화다. 구시대의 쇠사슬을 끊기는 했지만 사법적 정의에 의하면 어느 쪽도 결백한 사람이 없다는 마지막 시퀀스의 서늘함도 유효하다. 정인의 시대 또한 분명히 하나의 과도기일 것이라는 물러서기, 그리고 다음 번에는 더 대담하고 자유로운 K-장녀가 등장할 것이란 기대가 <결백>의 크레딧에 미덥게 따라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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