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기도하는 남자 강동현, 2018

by.남태우(대구경북시네마테크 대표) 2020-07-10조회 2,850
기도하는 남자 스틸
이 영화의 제목만을 보고 든 생각은 누구나 살면서 한번쯤은 기도를 하지 않나 싶은 것이었다. 종교가 원래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니기에 신이든 또는 다른 무엇이든 그 어떤 절대적 존재를 상정하고 기도를 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것이 종교의 형태를 취하든 아니든 그건 부차적인 것이고 본질은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어떤 절대적 위기상황을 접하면 저절로 손이 모아지는 것이 인간이란 존재임을 부정할 수 없으니…….

이 영화는 제목처럼 기도하는 남자에 대한 영화다. 기도를 업으로 사는 남자 태욱(박혁권 분)은 개척교회 목사로 일하고 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개척을 해야 되는 교회니 당연히 형편이 넉넉하진 않을 것이고 이런 연유로 밤에는 대리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아내 정인(류현경 분)으로부터 장모의 수술비가 급히 필요하다는 얘기를 듣는다. 과연 기도가 수술비를 마련해 줄 수 있을까? 이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선택에 대한 영화이자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묻는 영화다. 과연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고 악에서 구할 수 있는 그 무엇은 무엇일까?
 

<기도하는 남자>(강동헌, 2018)는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가 장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아내와 함께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인가를 따라가는 영화지만 이 설정은 그다지 특수하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를 겪을 수 있기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이점에서 제목과 달리 전혀 종교영화도 아니고 고용 없는 성장이라는 고단한 시대를 살아가는 서민인 우리 모두의 얘기라는 점에서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는 영화다. 지금부터는 이들의 선택이 내용이나 영상적으로 얼마나 설득력 있게 그려졌는가가 이 영화가 처한 운명이 아닐까 싶다. 

이들의 선택은 아쉽게도 큰 설득력을 가지기 어려워 보인다. 정도와 인식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자신이 김당하지 못할 어려움을 한번쯤은 겪으며 살아간다는 점에서는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지만 해법이나 거기에 이르는 과정의 개연성 등에서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기 때문이다. 3억 5천만 원이라는 적은 제작비의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겠지만 영화속에서 두 주인공과 장모가 선택한 길은 너무 극단적이기도 하고 행동에 대한 그 인물 자체의 내적동력이 약해 보인다. 마치 점프 컷을 보듯 인물들의 행동이 비현실적이라는 점에서 용감한 시도에 비해 아쉬운 전개와 결말이라는 생각을 지우기 어렵다. 괜찮은 재료로 너무 자극적인 그러나 평범한 요리를 만든 셈이다. 인물들도 급하고 기획도 급해 영화가 정해진 결말로 달려가는 느낌 이상을 받진 못했으니 말이다. 
 

아시다시피 두 주연배우 박혁권과 류현경은 매우 다양한 작품에서 다채로운 연기를 선보인 실력파 배우들이고 이 영화에서도 그런 점에서 모자라지 않은 연기를 선보인다. 이 점은 이 영화가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이룩한 성취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그러나 캐릭터가 과해서 그런지 인물이 상황에 어쩔 수 없이 끌려가는 인상을 받은 것도 나로서는 숨길 수 없는 감정이다. 이 점 또한 성취이자 숙제로 남았다. 

데뷔작을 연출한 강동헌 감독은 많은 고뇌의 시간을 보낸 흔적을 영화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고뇌가 영화적으로 잘 표현되었는가라는 점에서는 조금 더 힘을 냈었으면 하는 안타까움이 있다. 잘 녹아냈다기보다는 이야기를 빨리 던지고 수습하는데 급급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과한 전개에 비해 영화의 만듦새나 연기, 연출 등이 모자라진 않았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가 가지는 가치나 매력은 적지 않다. 또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제시라는 면에서는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좋은 기획과 설정이 과한 전개를 만나 풍파를 겪다 아이러니하게도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기도하는 남자>는 저예산영화이자 독립영화다. 제작지원과 개봉지원을 모두 받은 나름 축복받은 독립영화인데 현재의 한국영화시장에서는 예견된 참사처럼 너무나 적은 개봉관을 배정받았고 당연한 귀결로 매우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하였다. 개봉시기를 보면 팬데믹의 유탄을 제일 먼저 맞은 셈이니 이 또한 운이 나빴다. 제작진의 간절한 기도도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날카로운 칼날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고 거기에 코로나라는 망치까지 날아들었으니 이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겠지만 엎친 데 덮친 격이었을 것이다. 객관적으로 볼 때 더 기다린다고 더 좋은 개봉여건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기 어려운 현실 또한 엄연한 존재했을 것이다. 이것은 한국영화의 앞날을 생각하자면 <기도하는 남자>의 불행이 아니라 관객의 불행이자 대한민국 국민 모두의 불행이다. 어렵게 만들어도 제대로 평가받을 기회를 얻지 못한다면 누가 이런 시도를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 불안이 엄습해온다. 영화는 만들어질 때 영화가 아니라 보여질 때 영화라는 말이 절실히 와 닫는 지금. 예견된 고난을 피하지 않고 독립영화의 정신으로 전진했던 <기도하는 남자>의 시도에 응원과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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