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백미영, 2015

by.나호원(애니메이션 평론가) 2020-05-26조회 763
바람 스틸
팬데믹 시대의 호접몽: <바람> (백미영, 2015)

#01.
지금, 봄은 창 밖에 있다. 우리는 창 너머로 봄꽃을 바라보고, 봄볕을 느낀다. 자연은 보이지만 닿지 않는다. 익숙했던 자연은 이제 이미지로서 스스로를 격리시킨다.
존재하지 않았거나 이미 있었음에도 드러나지 않았던 자연의 미세한 존재가 갑자기 등장했다. 맨 눈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현미경으로는 포착되는 코로나 19. 신종 바이러스는 실제 크기보다 확대되어 모든 매체를 뒤덮고 있다. 지극히 작아서 눈에 띄지 않는 바이러스는 확대되고 복제되고 매일 재생산되는 이미지로서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02.
몇 해 전, 독립애니메이션 협회가 매달 독립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 상영을 전시와 함께 꾸린 <애니살롱> 프로그램에서 백미영 감독의 GV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감독의 작품 세계를 “독립 애니메이션의 청록파”라고 수식하면서, “미세먼지로 뒤덮힌 요즈음, 감독님의 작품을 모니터에 띄워놓고 청정함을 느낀다”는 멘트를 날렸다. 그때는 다분히 쇼맨십에서 비롯된 말이었지만, 현재 백미영의 작품을 다시 보니, 나름 적확한 평가라고 여겨진다.
 

#03.
한국의 독립 애니메이션에서 서정성은 다루기 쉽지 않은 테마이다. 서정성은 독립 애니메이션의 덫이자 독이기 십상이었다. 외따로 고독하게 작업하는 창작자는 곧잘 자신의 내면 세계에 빠져들어 그 속에서 허우적거리곤 했다. 개인적 서정은 쉽사리 자기 연민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지나친 관념이라는 블랙홀에 삼켜져 버린다. 서정성을 오롯이 생기있게 만드는 것은 구체적인 감각과 이로 인해 포착되는 섬세한 디테일임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한국 독립 애니메이션이 담아낸 서정은 모호함 속에서 헛돌았다. 애석하지만 이를 부정할만한 작품을 찾기가 쉽지는 않다. 이 점에서 백미영의 <바람>과 의 김도연의 <6월의 산>은 주목할 예외작이다.

#04.
<바람>은 바람과 마주한 나비의 날개짓을 한껏 담은 작품이다. 이상으로 작품 설명 끝…?! 
백미영의 작품들은 멀리 떨어져 닿지 않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다루고 있다. 그리움은 합일에 대한 열망을 낳고, 작품들은 그렇게 ‘대상과의 하나됨’을 향해 나아간다. 전반적으로 그러한 작품들은 마지막에 이루어낸 ‘물아일체’를 보여주며 끝맺는다. 그런데 <바람>은 그러한 흐름에서 벗어난다. 나비의 날개짓은 자기가 소망하는 것에 다다르지 못하고 멈추어 버린듯 싶다. 거기까지가 이 작품의 첫 마디이다. 그리고는 또다른 날개짓으로 다시 날아오른다. 또다른 마디의 시작이다. 작품 제목 <바람>이 wind이면서도 desire인 까닭이다. 날개짓을 이끄는 것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바람’에 대한 소망이다.
 

#05.
바람wind을 그려내기란 쉽지가 않다. 형체없는 공기의 움직임은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자신이 건드리는 것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존재를 형상화할 뿐이다. 머리카락이나 옷이 나부끼는 식으로 말이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이웃집 토토로>에서 바람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해 고양이 버스를 고안해 냈다). 
백미영이 바람을 다루는 방식은 자연에 충실하다. 아무 것도 그려내지 않는 정공법! 바람이 머무는 자연조차도 꼭 필요한 것들만 남겨두고 모두 거둬냈다. 수묵화의 미덕인 여백을 고스란히 애니메이션으로 옮겨왔다. 충실하게 집중할 것은 오직 나비의 날개짓 뿐이다. 그 날개짓은 바람wind을 마주하고, 새로운 바람desire을 향해 퍼덕이는 존재의 춤사위이다.
 

#06.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욕망을 꿈꾼다. 존재하기 위해서는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존의 욕망이 필요하니까. 백미영의 <바람>이 바로 지금, 비로소 존재의 의의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우리 모두가 잊어왔던 본래 그대로의 자연을 이제서야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바람> 속에서 나비는 안에 갇혀있는지, 밖에 나와있는지 분명치 않았다. 나비는 자연 안에 있었던가, 자연 밖에 있었던가? 나비는 스스로 자연의 일부였던가, 아니면 자연을 동경하는 외부인이었던가? <바람>은 한두번의 감상만으로 쉽게 그 답을 드러내지 않는다. 쉽사리 깨어날 수 없는 장자의 호접몽이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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