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트 정가영, 2019

by.김소희(영화평론가) 2020-06-02조회 1259
하트 스틸
이야기의 심장 

복제가 아니라 배신이다. <하트>(2019)는 정가영다운 어떤 것을 반복하는 영화가 아니라, 정가영에게 기대되는 것을 배반하는 영화다. 정가영의 영화에서 대화는 늘 중요했으며, 정가영의 도발성은 대부분 말에서 비롯되었다. <하트>에서 말은 전작과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말의 내용은 정가영답지만, 그 밀도는 떨어지고 이야기가 등장하는 자리는 뜬금없다. 당혹감은 잠시 접어두고 영화를 들여다보자. 전작과는 달리 이 작품만은 말의 내용에 집착할수록 영화에 대한 이해와 멀어지고 유부남 이야기의 반복이라는 섣부른 결론에 이르고 만다. 정가영 감독은 종종 사운드 없이 화면만 보거나 반대로 사운드만 들으며 영화를 연구한다고 말해왔다. 그의 말을 힌트 삼아 우리를 지나치게 옭아매는 ‘유부남을 사랑하는 이야기’라는 사운드를 잠시 줄여 보자. 대화의 공백 사이로 보이는 것은 무엇인가. 

가영(정가영)과 성범(이석형)의 초반 미술학원 대화 장면은 크게 네 종류의 숏으로 운용된다. 가영이 앉은 2인용 소파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숏을 기본으로 1인용 의자에 앉아 가영의 말에 반응하는 성범의 얼굴 클로즈업 숏을 함께 가져가되, 이들에게서 멀찍이 떨어진 채 관찰하는 듯한 롱숏과 초상화, 조각상 등의 인서트가 첨가된다. 롱숏은 성범 어머니의 죽음이 언급되는 장면에서 처음 등장하기에, 제삼자의 시선 혹은 죽음과 관련된 숏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서 이질적인 숏 하나가 추가된다. 가영과 성범이 키스를 나누는 순간, 카메라는 소파 뒤쪽에서 이들을 비춘다. 원래 소파는 벽과 붙어 있어 어떻게 봐도 촬영이 가능한 장소가 아니다. 단지 ‘좋은 그림’을 위한 시도였다고 넘어가기에는 어딘가 꺼림칙하다. 감독은 왜 불가능한 숏을 굳이 집어넣은 것일까. 


정가영의 영화는 늘 감독 정가영과 배우 정가영의 분리와 교통을 자신의 동력으로 삼아왔다. 외부의 시선을 감독의 시선으로 해석하는 것이 비교적 수월했던 전작과는 달리, <하트>에서 시선의 주인 자리는 비어 있다. 시선의 주체가 불명확해진 것은 무엇보다 카메라 앞에 선 배우 가영 캐릭터의 변화에서 비롯된다. 가영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주체로서 장면을 장악했던 전작과 달리, 이번 작품에서 가영은 제 발로 성범을 찾아오긴 했으나 이전처럼 그의 마음을 떠보며 ‘자자’고 매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고민을 상담하러 온 사람 같다. 다른 유부남에게 연정을 품은 가영은 ‘그 사람이 생각날 것 같아’서 술도 거부하고 있으며, 키스 직전 관계의 향방을 가른 결정적인 말(“나는 너 이제 보호 안 한다”)을 성범에게 넘겨주고 있기도 하다. 전작에도 충분히 제기될만한 ‘자기 복제’라는 혹평이 유독 <하트>에 쏟아진 이유는 이전까지 유희의 도구에 가까워 보였던 금기의 사랑 이야기를 감독이 진심처럼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애인이 있는 남자를 사랑하던 이전의 이야기는 촘촘하게 짜인 대화의 맛을 따라 농담처럼 즐기면 그만이었지만, 이번에는 그 느슨함으로 인해 이야기에 거리를 두고 판단할 여지가 마련된다. 이제 관객은 가영의 관계에도, 가영의 영화에도 가혹해질 수 있다. 

재기발랄한 캐릭터가 채도를 낮춘 사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건 뒤엉킨 시간이다. 감독 정가영이 배우 제섭(최태환)과 미팅하는 장면 이전에도 가영의 시간은 이미 교란되고 있었다. 성범과 가영이 술을 사러 편의점을 오가는 밤 장면 도중 가영이 무인도에 사는 100명의 남녀에 관해 이야기하는 미술학원 시퀀스의 자리는 특히 이상하다. 편의점에 다녀온 가영과 성범의 대화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카메라는 내내 가영만을 비추고 있기에 가영이 대화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없다. 성범일 확률이 높지만, 목소리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게다가 대화할 때 가영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성범이 있던 자리가 아닌 정면을 향한다. 다음 시퀀스에서 맥주 캔이 든 봉지를 들고 계단을 오르는 가영과 성범의 모습이 뒤늦게 등장하므로, 이야기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곳에 마치 유령처럼 도착한 것 같다.   
 

숏의 자리를 뒤섞고 이를 이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면서 감독은 애초에 자신의 이야기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이상한 이야기가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닐까. 클리셰적인 장르 전환 장면에서 실제와 허상 사이에 놓인 가영의 상태가 상징적으로 드러내듯, 감독은 이야기를 반쯤은 얼빠진 소요처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한 이야기는 결국 마지막 장면의 산뜻한 반전을 예비해 둔다. 감독의 세계를 비판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제섭을 상대하느라 내내 진땀을 뺀 가영은 그와의 마지막 만남에서야 그답게 “한 번만 안아주고 가면 안 돼요?”라며 양팔을 벌린다. 제섭은 포옹 대신 가영의 왼쪽 가슴을 느닷없이 툭 하고 치고는 떠나는데 그 순간의 파장은 꽤 오래간다. 깜짝 놀라 자신의 왼쪽 가슴에 두 손을 포개놓은 채 당황스러워하는 가영의 모습은 이상하게도 그 순간 고대하던 심장을 얻게 된 누군가처럼 보인다. 그와 함께 유령의 소요처럼 보였던 이야기도 심장을 장착한 채 다시 시작될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 즉시 이야기는 끝나버리고, 두 사람이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 뒤 남은 것은 속절없이 물을 뿜는 분수대뿐이다. <밤치기>(2017)에서 가영이 들려준 바 있던 결말이 없는 영화로서의 ‘최고의 결말’은 이렇게 실현된 것도 같다. 모두가 떠나간 자리에 남은 이 황망한 마음을 어찌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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