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센타 하윤재, 2018

by.김보년(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20-05-04조회 849
나쁜 짓을 그만두기

처음 <카센타>(하윤재, 2018)를 보고 약간 혼란스러웠다. 이 영화에는 다양한 성격의 인물과 장르적 사건이 동시다발적으로 등장하지만 이 모든 내용이 마지막까지 하나의 큰 줄기로 수렴되지 않는다. 각 사건 사이에는 우연이 불쑥 개입하고, 몇몇 장면들에서 주인공들은 그저 수동적으로 상황에 휩쓸리기만 한다. 작은 카센타를 운영하는 가난한 부부가 의도적으로 ‘빵꾸 사고’를 유도해 큰 돈을 버는 줄거리만 미리 알고 있었던 나는 아동 유괴, 성범죄, 공무원 비리, 가족 간 갈등 같은 사건이 계속 벌어지자 어리둥절한 상태에서 전개를 바로 따라가지 못했고, 영화가 조금 산만하다는 인상도 받았었다.

하지만 <카센타>의 말로 쉽게 설명하기 힘든 마지막 장면을 보고 난 뒤 이 영화를 완전히 다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에 이 영화는 주인공 부부를 중심으로 하나의 일관적인 이야기를 만들 생각이 없다. 즉 소위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라 사건의 발생과 해결 과정을 매끄럽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한 작은 시골 마을에서 어떤 부조리한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지, 그 안에서 주인공들이 어떤 혼란과 갈등을 겪는지 보여주려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에는 깔끔한 결말과 그에 따른 카타르시스가 없으며 단지 자신의 욕망을 쫓는 여러 인물 군상의 추악한 모습만이 적나라하게 그려진다(만약 전자를 기대한다면 높은 확률로 실망할 것이다). 그러니 <카센타>를 볼 때는 개별 사건의 명확한 인과 관계나 통쾌한 결말, 또는 교훈을 억지로 찾기 보다는 이 영화가 한 공동체의 더러운 모습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묘사하는지 한발짝 물러서서 관찰하는 게 더 유의미한 관람 행위가 될 것이다. 
 

이때 먼저 강조하고 싶은 건 <카센타>의 세계가 나쁜 사람들의 이상한 결속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라는 점이다. 달리 말해 <카센타>에는 악한 인물과 선한 인물의 대결이 없다. 영화 속 재구(박용우)와 순영(조은지) 부부를 포함한 등장 인물 대부분은 다들 몰래 나쁜 짓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슈퍼 할머니와 손녀라는 예외가 있지만 이들은 결국 피해자로 그려진다). 비리를 저지르는 경찰, 경찰을 수족처럼 부리는 청년회장, 환경을 파괴하는 자본가, 범죄를 저지르는 공무원, 이기적인 가족들, 그리고 도로에 못을 박는 재구와 순영. 여기서 주목할 건 재구와 순영이 저지르는 행위에 깔린 심리적 동기가 다른 사람들의 나쁜 짓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에 있다는 점이다. 즉 주인공 부부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심리적 알리바이로 삼는다. 재구는 궁지에 몰렸을 때 억울하다는 듯 외친다. “내가 왜 깜빵가냐?” 대놓고 비리를 저지르는 청년회장도 있고 그린벨트를 파괴하는 사장도 있는데 ‘겨우’ 도로에 못을 박는 건 그리 큰 죄가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한술 더 떠 “빵꾸 다 내서 이 동네 확 쓸어버려야 되는데!”라고 소리치기까지 한다. 이 대사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듯 재구는 자신의 범죄가 다른 사람들의 범죄보다 더 낫다고 정당화하는 지경에 이른다.

이처럼 <카센타>는 하나의 범죄에 이어 또다른 범죄가 잇달아 일어나는 공동체의 작동 구조를 정확하게 간파한다. 어떤 사람이 저지르는 하나의 나쁜 짓은 개별적 사건 같지만 사실 이 모든 그림자는 서로를 양분 삼아 자라고 있는 중이다. 청년회장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누군가의 잘못을 눈감아주고, 누군가는 그동안 더 큰 잘못을 저지른다. 이제 옳고 그름의 감각은 희미해지고, 결국엔 재구와 순영처럼 뒤틀린 논리로 자신을 정당화하는 사람들까지 등장한다. 비록 <카센타>는 시골의 작은 마을을 무대로 하고 있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우리 사회의 풍경이 아니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감독은 누군가의 악행이 또 다른 누군가가 저지르는 악행의 그럴듯한 핑계가 되어주는 공동체의 씁쓸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판한다.
 

하지만 내가 <카센타>를 좋아하는 건 단지 이 이유 때문은 아니다. 자신을 포함해 모두가 악당이라는 관점으로 현실을 묘사할 때 빠지기 쉬운 함정은 아마 냉소일 것이다. 즉 더 나아지려는 의지, 심지어 현실에 분노할 마음마저 잃어버린 채 그저 남과 나 스스로를 비웃으며 현실에 안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카센타>는 냉소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현실의 민낯을 직시하고 이를 부수려는 용감한 태도를 취한다. 아직 영화를 못 본 관객을 위해 결말을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모든 게 잘못됐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물론 그 파국의 중심에 자신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온 행동을 일시에 멈추려 할 때, 이 중단의 행위는 최근 본 어떤 한국영화에서보다 비장하고 과격한 방식으로 그려진다. 더 이상의 스포일러는 피하고 싶다. <카센타>의 강렬하고 기묘한 마지막 장면을 꼭 함께 봐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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