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82년생 김지영 김도영, 2019

by.김선아(영화평론가) 2019-11-19조회 3,557
82년생 김지연 스틸
금요일 저녁 <82년생 김지영>(김도영, 2019)을 보기 위해 극장을 갔다. 한 열 명 정도가 극장 안에 있었던 것 같다. 영화를 보러 가야 한다고 직장 동료들에게 말했을 때 그 영화를 먼저 본 여자 동료들은 ‘모두가 우는 장면이 딱 한 장면 있을 거’라고 귀띔해 줬다. 극장에는 모녀거나 여자친구들로 보이는 관객들이 대부분이었고 여자친구와 같이 온 젊은 남성이 한두 명 있었던 것 같다. 동료들이 말한 그 장면은 김지영이 할머니로 빙의되어 자신의 어머니에게 말하는 장면이었다. 딸의 빙의된 모습과 딸의 몸을 빌어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하는 자신의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지영의 어머니는 오랫동안 억눌러 왔던 통한의 눈물을 가까스로 집어삼킨다. 꺼이꺼이 통곡하는 듯 우는 사람부터 나처럼 훌쩍대며 눈물을 훔치는 사람까지 그 순간 극장에서 관객인 우리가 함께 냈던 눈물의 데시벨은 꽤 컸다. 
 

영화는 지영의 어머니인 미숙의 (가족을 위한) ‘희생’ 서사를 가장 극적인 부분에 배치한다. 남자 형제들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청계천 공장에 취직해 교사가 되고픈 젊은 날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미숙의 ‘희생’ 서사는 잘못하면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장치였다. 볼 때는 눈물 실컷 흘리고 눈물 닦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방 잊힌 드라마가 얼마나 많았던가. 그러나 <82년생 김지영>은 제목처럼 한 개인에게 제한될 수 있는 주관적인 경험을 빙의를 빌어 간주관적인 경험으로 육화한다. 딸인 지영의 몸에서 미숙의 어머니이자 지영의 외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방식으로 영화는 소설처럼 탈인칭화를 시도한다. 딸의 모습을 하고 자신을 향해 미안하다고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은 미숙은 그런 딸을 와락 껴안고 눈물을 흘린다. 내부와 외부, 몸과 마음, 혼잣말과 대화, 어머니와 딸, 나와 너, 시각과 청각 등의 이분법이 무너지는 그 장면은 영화가 직접 보여주기에 소설보다 더욱 강렬하게 와닿는다. 영화는 가부장제 이성애 가족에서 ‘어머니’의 위치와 역할은 사회에서 요구하거나 고정된 편견의 정도나 강약이 달라졌을지언정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는 걸 보여준다. 더 깊은 사회 심리적 통찰은 남성과 달리 여성에게 결혼과 모성은 노동 및 직업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 일종의 디폴트라는 점이다. 지영의 아버지가 위로의 말이든 잔소리든 나직이 무심결로 하는 말들은 프로이트의 농담처럼 가부장적 무의식이 진실로 드러나는 순간들이다. 영화는 그 위태로운 순간들을 건너 이 시대에 사는 여성의 현실을 올곧이 받아 안는다. 지영의 할머니, 어머니, 지영, 지영의 언니, 직장 동료는 어느 집, 동네 카페, 고등학생과 취준생 시절, 혹은 직장에서 마주쳤거나 봤거나 겪었던 너와 나 혹은 누군가라는 전형성을 획득하는 것이다. 
 

김도영 감독의 데뷔작인 단편영화 <자유연기>(2018)는 어린아이를 기르기 위해 배우가 되기 위한 꿈을 포기했던 여주인공이 다시 배우 오디션에 도전하는 영화였다. <자유연기>가 여주인공의 심리와 내면을 파고드는 폐쇄적인 움직임을 띠었다면, <82년생 김지영>은 동시대의 이성애 가족 내 여성의 조건과 위치를 직장과 또 다른 여성들을 매개로 보다 사회를 향하거나 사회 안에 있다. 감독의 전작과 다른 점 중 또 하나는 <자유연기>의 남편과 <82년생 김지영>의 남편 캐릭터이다. <자유연기>의 남편은 <82년생 김지영>의 남편이 아니라 지영의 아버지와 비슷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여주인공은 더욱 고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면에서 <82년생 김지영>의 남편은 진보적인 남성 캐릭터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재현’에 충실했던 영화나 소설에는 유독 여성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작품들이 많다. <잔느 딜망>(샹탈 액커먼, 1975)이 대표적인 영화라 할 수 있다. <잔느 딜망>은 잔느 딜망이라는 여성의 시간을 관객이 실시간으로 겪게 만들어 여성의 지루하고 반복되며 자극 없는 집안일의 경험을 낯설게 만든다. <82년생 김지영>은 이와 비교해 보면 전혀 다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82년생 김지영>은 플래쉬백과 탈육화를 통해 김지영이라는 여성의 시간을 멜로드라마 장르의 리얼리즘 세계에 펼쳐 놓는다. 김지영의 그런 장르적 정체성은 상업적인 면에서나 대중적인 면에서 ‘참 와닿는다.’ 성공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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