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하 장재현, 2018

by.김나현(중앙일보 기자) 2019-10-25조회 3293
사바하 스틸
장르와 메시지 사이, 장재현 감독의 깊은 고민

옛날 어떤 마을에 대궐 같이 큰 집에 살던 어르신이 있었다. 딸린 식솔만 몇 백 명인데 집에 불이 났다. 어르신은 집을 빠져 나왔지만, 어린 아들들은 장난만 치고 놀고 있었다. 그냥 나오라 하면 귓등으로 들을 게 빤해, “대문 바깥에 특이하고 귀한 장난감 수레를 가져다 놓았으니 가져가라”고 말했다. 여러 아들이 그 말에 집 밖으로 나와 불을 피했다. 이 이야기는 법화경에 나온 ‘화택삼거유’ 설화다. 불타는 집은 번뇌로 가득한 사바세계를 뜻하고, 어르신의 말은 부처의 가르침, 장난치며 노는 아들은 중생을 의미한다. 부처는 중생을 구하려는 뜻을 품고, 장난감 수레라는 인기 요소로 중생의 변화를 끌어낸다는 이야기다.   

엉뚱하게 <사바하>(장재현, 2018)를 보며 이 설화가 생각났다. <사바하>는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분명히 있는데 이걸 관객이 끝까지 듣게 하려 ‘관객이 좋아할’ 장르, 즉 미스터리 스릴러를 경유한 듯해서다. 다만 화택 설화의 ‘장난감 수레 지침’은 간단하고 명료한데 <사바하>의 장르 관습은 복잡하게 엉켜 있다. 영화 초반부, 세 토막의 이야기가 나온다. 1) 1999년 한 시골 마을에 쌍둥이 자매가 태어난다. 이 자매는 평범한 금화(이재인)와 사람의 형상을 갖추지 못해 짐승처럼 마구간에서 자라게 된 ‘그것’이다. 2) 그로부터 16년 뒤 박웅재(이정재) 목사는 신흥 종교집단 사슴동산을 조사한다. 3) 같은 시간 강원도 영월에선 여중생 살인 사건이 나고, 정비공 정나한(박정민)은 이 사건의 용의자를 찾아가 자살을 종용한다. 박 목사는 관객의 길잡이 역할을 한다. 박목사의 집요한 추적으로 1번과 3번의 이야기는 연결된다. 그 가운데 “진짜 미륵”이라 불리는 김제석이 등장한다. 이제 핵심은 김제석과 정나한, 그리고 ‘그것’의 관계다.
 

세 인물에 관한 비밀은 차근차근 밝혀진다. 1899년에 태어나 불사의 몸이 된 김제석이 자신을 없앨 존재가 1999년 태어날 것이라는 예언을 들었다. 겁이 난 그는 자신을 수호할 사천왕을 만들고 그들에게 1999년에 태어날 여아(女兒)들을 죽여 그 예언을 막으려 한다. 마치 헤롯왕이 예수 탄생을 막으려 당시 태어난 수많은 아이를 죽인 것처럼. 사건의 원형은 고전을 빼닮았다. 이 과정에서 <사바하>는 스릴러를 경유한다. 그리고 어김없이 등장하는 반전.  김제석은 인자하게 나이든 남성이 아니라,  젊고 단단한 육체를 지닌 채 늙지 않는 존재(배우 유지태가 연기했다)라는 사실이다. 회심의 일격을 가하는 듯한 반전이 나올 때, 놀라움 보다는 아쉬움이 앞섰다.  이 시대에 귀한 고전적 서사를, 흔해 빠진 유행 장르로 포장한 것 같아서다.

이게 장르적 반전이라면, 서사적 반전은 김제석의 흉포함과 ‘그것’의 선함이다. 이 영화는 중반부까지 의도적으로 ‘그것’은 불길하게, 김제석은 “진짜 미륵”으로 그린다. ‘그것’이 갇혀 사는 곳엔 뱀이 도사리고,  김제석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것 같은 문어스님 조차 “그는 진짜”라고 말한다. 하지만 곧 선악은 뒤바뀐다.  김제석은 사실 자기가 죽고 싶지 않아 소년들에게 대신 어린 소녀를 죽이게 시킨 자였음이 밝혀지면서다. 

정나한은 ‘그것’을 죽이러 갔다가 “너희가 아비라 부르는 그 자가 뱀”이라는 ‘그것’의 말에 김제석을 의심하게 되고, 이를 눈치 챈 김제석이 나한에게 엽총을 쏜다. 순간 자신이 죽인 소녀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잠 못들던 나한을 위로해준 자장가가 떠오른다. 그것은 모성의 원초적 형상이다. <사바하>는 거짓되고 비열한 아버지와 그로인해 고통 받는 아들을 지키는 어머니의 이야기로 보이는 까닭이다. 이런 맥락에서 류진희 문화연구자는 <사바하>를 “식민지 남성성과 여아 살해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한다. 1899년 태어난 김제석을 식민지 남성성의 상징으로, 또 ‘그것’은 “군사주의적 유신(維新)과 개발주의에 근간을 둔 근대성의 유산으로 없어져야 했던 존재”로 읽는다. 
 

<사바하>는 결국 부친 살해의 서사로 나아간다. 사실을 깨달은 정나한은 자신의 온 인생을 갉아먹던 김제석을 제 손으로 죽인다. “넌 그냥 살고 싶은 포식자야. (중략) 네 목이 백 개라도 부족하다.”  이렇게 울부짖으며. 정나한에게 “내가 너희의 등불”이라고 했던 김제석은 이제 아들에게 “포식자”로 불린다. 이렇듯 <사바하>의 무늬는 미스터리 스릴러고, 그 내부는 불교적 묘사와 기독교적 은유를 채워 넣었지만 이야기엔 잔혹한 아비의 민낯이 담겨 있다. 그로 인해 희생된 젊은 세대,  특히 여성 아동들에 대한 애도도 잊지 않는다.  

다시 장르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사바하>는 왜 영화적 반전이 필요했을까. 이미 이렇게나 서사적 반전이 이미 충분한데 말이다. ‘알고 보니 포식자’인 김제석이 젊은 남성이든 나이든 남성이든 달라지는 건 없다. 결국 반전 요소는 사족이 된 채 영화는 그릇된 집착과 욕심으로 가득 찬 남성-아버지를 향한 견제의 메시지를 단호하게 던진다. 돌아보면 장재현 감독은 구마 의식 과정의 탁월한 묘사만으로 장편으로 완성시킨 <검은 사제들>(2015)에서도 여고생 영신의 희생을 잊지 않고 담아낸 이다. 작고 어린 자들을 품고 기억하려는 따뜻한 주제 의식과 종교적 색채가 가미된 미스터리 스릴러의 재미. 장 감독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잘 하려 할까, 혹은 하나만 잘하는 길을 갈까.  선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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