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불빛 아래서 조이예환, 2017

by.권진경(한국독립영화협회 비평분과) 2019-09-23조회 3,720
불빛아래서 스틸

조이예환 감독의 <불빛 아래서>(2017)는 흔히 ‘홍대’로 불리는 인디 음악 씬에서 활동하는 세 밴드의 이야기이다. 하지만 <불빛 아래서>를 ‘인디밴드 생태보고서’ 정도로만 규정하기에는 이 영화가 가진 함의가 상당해 보인다. 

무대 위에서는 한없이 멋있게만 보이는 뮤지션들의 허당기 넘치는 일상과 다소 지질해 보이는 모습까지 보여주며, 흡사 리얼 예능 프로그램 같은 재미를 선사하는 <불빛 아래서>에는 크게 세 종류의 밴드가 등장한다. YB(윤도현 밴드) 테크니션 출신으로 갈고 닦은 탄탄한 실력을 바탕으로 독보적인 음악세계를 구축하며 ‘한국대중음악상-올해의 신인상’ 등 굵직한 상을 휩쓸었던 로큰롤라디오와 홍대 밴드로는 드물게 대형 매니저먼트 산하 레이블과 전속 계약을 맺고 공중파 포함 각종 오디션 경연 프로그램에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친 웨이스티드 쟈니스, 락 스타가 되겠다는 부푼 꿈을 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홍대 인디 씬에 진입한 청년밴드 더 루스터스. 현재 인디 밴드들의 동향과 흐름을 영화에 출연하는 세 밴드로 압축해놓은 것 같은 <불빛 아래서>가 내린 결론은 인디밴드 생태계 내에서 더 주목받던 그렇지 않던 모두가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다. 
 

<불빛 아래서>가 주목한 로큰롤라디오와 웨이스티드 쟈니스는 그들 스스로도 인정한 것처럼 홍대 밴드 중 꽤나 잘 나가는 케이스에 속한다. 로큰롤라디오 같은 경우에는 매년 국내를 대표하는 락 페스티발 메인 스테이지 무대에 꾸준히 오를 정도로 실력과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해외에도 진출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조차 순수 공연·음악 활동만으로 버는 돈으로 생계를 꾸리고 차기작을 준비하기 위한 창작·연습 활동에 전념하기에는 매우 빠듯해 보인다. 

데뷔앨범으로 주목을 받아도 각종 오디션 출연과 아르바이트 활동으로 차기작 발매는 엄두도 내지 못하고 심지어 해체로 이어지는 <불빛 아래서> 출연 밴드들의 흥망성쇠는 홍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인디밴드들의 이야기로만 끝나지 않는다. 대형 메이저에서 기획, 제작한 작품만 돈을 벌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기형적인 구조는 비단 음악계에만 해당되는 현상이 아니라 현재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대다수 사람들이 처한 현주소다. 

올해 초 6년 만에 정규2집 앨범을 발매한 로큰롤라디오는 모 매체와 가진 인터뷰에서 <불빛 아래서>가 첫 촬영을 시작한 2013년 당시보다 홍대에서 설 수 있는 무대가 줄어들고 그에 따라 활동하는 밴드 수도 급감하는 현상을 토로한 바 있다. 홍대 클럽들이 계속 문을 닫는 이유는 천정부지로 치솟는 임대료와 젠트리피케이션 영향도 분명 한 몫 하지만, 음악으로 주목을 받고 활발히 공연을 이어간들 인디음악을 수용하고 소비하는 시장의 부재로 다음 활동을 쉽게 기약할 수 없는 현실은 밴드들의 미래를 더욱 어렵게 한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밴드들의 한탄과 자조로 흘러갈 것 같은 영화는 의외로 다른 지점을 향해 나아간다. 돈을 벌기 위해 음악을 하고 있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음악밖에 없고 좋아하는 음악을 할 수 있기에 돈 빼고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인디 음악인들의 얼굴에는 자신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을 진짜 사랑하고 즐기는 자의 자부심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비록 오늘은 고기가 잘 잡히지 않더라도 내일도 모레도 한결같이 배를 타고 나가 만선을 꿈꾸는 뱃사람처럼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뮤지션들의 일상을 가까이서 지켜본 <불빛 아래서>는 이렇게 말한다. 현실 대신 꿈을 좇아 살아가는 뮤지션들의 삶만 힘들까. 무엇을 하던 부모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지 않으면 힘든 세상,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며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그 순간을 즐기며 살아가면 그걸 로도 괜찮지 않을까. 

무대 위 카리스마를 완전히 걷어낸 뮤지션들의 평범하면서도 재기발랄한 일상에 웃고 울다가 특별해 보일 것 같은 그들의 삶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르지 않음을, 나만 힘들게 사는 것이 아니었음을 스스럼없이 위안 받게 되는 영화. 수많은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는 이 시대 청춘들의 자화상을 다룬 <불빛 아래서>는 인디밴드만의 이야기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과 꿈, 실낱같지만 선명한 희망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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