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봉준호, 2019

by.안시환(영화평론가) 2019-08-27조회 6,203
기생충 스틸

봉준호의 끔찍한 비전, 무한 회귀의 잔인한 운명

봉준호는 영화 미학과 사회학이 만나는 접점에 자신의 영화를 위치시킬 때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최고의 영화를 선보이곤 했다. <살인의 추억>(2003), <괴물>(2006), 그리고 <기생충>으로 이어지는 작품들의 계열과 <설국열차>(2013), <옥자>(2017)로 이어지는 작품들을 비교한다면, 그의 영화는 최소한 관객(또는 비평가)을 만족시키는 데 실패하지 않는다 해도, 그럼에도 그의 시선이 한국사회의 모순을 미시적으로 파고들어갈 때 우리에게 만족 이상의 놀라움을 안겨주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봉준호는 장르라는 미끼를 관객에게 던지지만, 우리가 그 미끼를 통해 건져 올리는 것은 한국 사회를 무겁게 짓누르는 모순 덩어리들이다. 굳이 흠을 잡자면, 너무 매끈한 만듦새 탓에 그 모순이 지닌 악취마저 쉽게 휘발되는 아쉬움 정도일 것이다. 

<기생충>에 대한 비평이 ‘양적’으로 넘쳐나는 상황(이는 <기생충>에 대한 의미있는 비평이 충분히 이뤄졌다는 의미는 아니며, 나는 오히려 그 반대라는 입장이다)에서, 굳이 이 작품의 전체적인 특징과 장점을 거론하는 동어반복의 비평은 필요 없을 것이다. 나는 <기생충>에서 한국사회의 모순이 가장 희극적이면서도 또한 비극적으로 드러났던 억수같이 비가 퍼 붓던 그 날 밤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려 한다. 나는 이 장면 이후부터 <기생충>이 봉준호의 범작에서 걸작으로 비약한다고 느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봉준호는 한국사회를 짓누르는 암담함을 밝힐 희미한 빛줄기 하나조차 남겨두기를 거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생충>은 가장 성공적인 화법을 갖춘 실패의 고백담이다.
 

문광(이정은)이 기택(송강호)의 가족이 잠시 점령한 저택의 초인종을 누르던 순간은 영화의 가장 극적인 전환점이다. 이 장면 이전까지만 해도 <기생충>은 뛰어난 미쟝센과 흥미로운 인물이 등장하는 영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초인종이 울리고 지하실의 문이 열리는 순간 영화는 새로운 경지로 도약한다. 봉준호가 여러 인터뷰에서 밝혔듯이 영화의 첫 제목은 <데칼코마니>였다. 하지만 <데칼코마니>라는 제목은 기택 가족과 박사장 가족을 대비할 뿐, 그 속에서 이들의 관계를 더 확장시키는 문광 부부를 품지 못한다. 문광 부부의 출현은 정밀하지만 꽉 막혀있던 <기생충>의 대칭 구조를 흐트러뜨리면서 관객의 예상을 무너뜨리고, 영화의 주제적 영역을 더 바깥으로 밀어붙일 수 있도록 하는 궁극적인 힘이다. 달리 말하자면, 그 이후부터 <기생충>은 김기영의 <하녀>(김기영, 1960)에 대한 오마주이기를 멈추고, 오롯이 봉준호의 영화적 길로 진격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지하실의 문이 열릴 때, 그 열린 틈에서 관객 앞으로 튀어나오는 것은 현재의 시간에 놓인 계급적 관계의 복합성이다. 그 이전까지 <기생충>은 반지하를 벗어나려는 기택 가족이 숙주인 박사장 가족에 기생하는, 아니 숙주를 조정하는 기생충에 관한 영화였다. 그러니까 <하녀>의 변주. 하지만 반지하보다 한 계단 더 내려간 지하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영화는 동일 계급 안에서 ‘최악’과 ‘차악’의 상황에 각각 처해있는 두 가족이 처절하게 충돌하는 이야기로 변주된다. 한 계급 안에서 대립하는 최악과 차악의 비극적 대립은 블랙코미디로 흡수된다. 이 블랙코미디 속에서 봉준호가 바라보는 ‘지금 여기’의 계급적 모순이 발가벗는다. 하나의 숙주를 사이에 둔 두 기생충의 처절한 싸움. 그 연대의 불가능성.
 

우리는 절박하게 충돌하는 두 가족의 모습을 보며 키득거린다. 슬랩스틱과 블랙코미디를 오가는 이 시퀀스를 시각적, 장르적으로 유희할 수 있다면, 이는 우리가 그들과 스크린으로 분리된 제 3자의 위치에 존재한다는 안도감이 전제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날 밤 기택 가족이 박사장의 저택에서 탈출해 한 없이 계단 아래로 추락하는 기나긴 장면과 폭우에 잠겨버린 아비규환의 반지하를 목격한 이후부터 우리는 더 이상 쉽게 웃을 수 없다. 물론 그 이후에도 여전히 블랙 유머를 뽐내는 장면들이 이어지지만, 이 장면 이전처럼 그들을 보며 키득거릴 수 없다. 이때부터 <기생충>은 잔혹 호러 영화가 블랙코미디를 흡수한다. 달리 말해, 부조리한 블랙코미디를 경유했던 한국 사회의 계급적 모순은 잔혹 호러로 탈바꿈한다. 

이 끝없는 계단은 기택 기족이 박사장 가족과 계급적으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었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들은 그 계단을 내달리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니 당신은 그들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했는가? 어쩌면 그들은 끝도 없는 계단 아래로 추락하며 자신들의 자리가 어디인지, 그러니까 박사장과 자신들은 동일 장소에 존재하는 그 순간에도 결코 동일한 존재가 될 수 없음을 자각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어쩌면 이 계단 장면은 봉준호의 영화에서 가장 잔인한 장면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추락. 자신의 것이 아닌 것을 탐낸 자들에게 내린 형벌이 ‘회귀’라는 것은 너무도 잔인한 일이다.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기. 너무도 영화적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기정(박소담)이 변기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물던 순간이 잊히지 않는 까닭은 그 담배 한 모금에 극단적인 좌절감의 정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계획을 세우건, 무엇을 욕망하건, 무엇을 시도하던 간에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원래의 자리를 향한 ‘회귀’라는 운명이다. 시지프스의 운명은 이렇게 한국 사회의 계급적 운명으로 대물림된다. 반지하와 지하로 무한 회귀해야만 하는 추락한 자들의 슬픈 운명. 한마디로, <기생충>은 한마디로 끔찍한 비전의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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