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방문 명소희, 2018

by.주현숙(독립다큐멘터리 감독) 2019-07-29조회 3,484
우리 모두에게 그런 순간들이 있었다. 

이야기는 대부분 특정한 인물이 나오고 특정한 사건이 나온다. 감독은 특정한 이야기 속에서 관객들이 자신의 경험들을 링크 시켜 인물과 사건을 이해하고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길을 만든다. 가끔은 친절하게 길을 닦기도 하고 간혹 무심하게 길을 내기도 하고 공들여 길을 숨겨 놓기도 한다. 소통을 위한 길을 만드는 것은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 것이 된다.  

명소희 감독의 <방문>(2018)은 감독의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다. 자신의 이야기이자 엄마와 자신의 이야기 그리고 엄마와 외할머니의 이야기다. 지극히 사적인 관계의 이야기지만 관객은 자신의 경험을 돌아보며 명소희 감독의 이야기에 ‘방문’하게 된다. ‘하고 싶었던 일들이 할 수 없는 일들이 되어 버린’ 순간, 감독은 엄마를 떠올리고 자신이 그렇게 떠나오고 싶었던, 엄마가 있는 춘천으로 향한다. 그리고 관객은 세 여자와 기억을 만나게 된다.
 

 
기억은 이미 지나 손댈 수 없는 과거의 일이지만 얄궂게도 역동적인 사고의 영역이다. 어떤 기억은 또렷한데 어떤 기억은 존재 했는지도 모르게 흐릿하고 심지어 모호하다. 어떤 기억을 건져 올려 어떤 사고를 해야 할지 몰라 우리는 기억 앞에 종종 무기력해진다. 그래서 어떤 기억은 지워버릴 수밖에 없다. 그것이 능동적인 선택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 소화 안 되는 음식을 먹었을 때처럼 불편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해결할 방법이 없는 시간을 지나 일상 속에서 잊혀진 듯 보인다. 특히 해석해낼 경험이 없고 나눌 방법도 모르는 아이의 사건은 쉽게 기억의 저편으로 밀려나게 된다. 하지만 덩어리 채 넘겨 버린 기억은 옅어지지 않고 밀려나지도 않으며 어느순간 눈앞에 나타나 현재를 멈추게 한다. 

엄마를 만나러 가면서 시작하는 <방문> 이지만 감독은 엄마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기이하게도 멀리서 훔쳐본다. 짧은 컷이지만 감독은 길을 내고 있다. 무언가를 묻고 싶은 것도 같고 눈치를 보는 것도 같다. 가장 가까우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인 엄마와의 거리가 그대로 담기며 엄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외할머니에게 외면당했다. 딸이라는 이유로 남편에게 외면당한 외할머니는 그대로 감독의 엄마인 딸을 외면했다. 엄마는 외면 받았지만 외할머니의 주변을 벗어날 수 없었다. 어렵게 떠났지만 삶의 무게가 밀려 외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돌아온다. 감독의 카메라는 엄마와 외할머니의 관계를 보여주지만 묘하게 감독과 엄마의 관계를 암시한다. 또 다른 길을 만들고 있다. 식당을 운영하는 엄마는 역에서 춘천을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관광지를 알려주며 식당을 홍보한다. 손님들에게 상냥한 엄마는 카메라를 든 딸에게는 퉁명스럽다. 인터뷰를 거부하다가 억지로 답을 해주는 엄마는 살갑지 않다. 삶의 고단함일까 생각될 즈음 오빠와 엄마가 다정하게 함께 찍은 사진을 보여준다. 그리고 감독은 사진 속 엄마의 표정은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표정이라며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다시 외할머니와 엄마의 관계를 떠올린다. 외할머니에게 심한 잔소리를 하는 엄마는 남동생을 독립시켜야 한다고 외할머니를 다그치지만 그 안에는 연민과 서운함이 자리하고 있다. 감독과 엄마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것처럼 할머니와 엄마의 거리도 좁혀지지 않는다. 그렇게 엄마를 만나기 위해 춘천을 방문하는 모습 사이사이 가족이 살았던 춘천의 공간들이 자리 잡는다. 이미지와 사운드가 정교하게 만나, 꿈속에서도 떠나는 상상을 했던 춘천은 흩어진 기억들이 모아지고 가라앉았던 기억들이 떠오르는 계기로 작동한다. 조금씩 감독은 또 다른 길을 내고 있다. 
 

감독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감독의 기억과 만나게 된다. 한번쯤은 들여다봤을 엄마와 나의 관계, 그 관계를 어떻게든 이해해보려 들여다봤을 엄마와 엄마의 엄마와의 관계를 통해 또 누군가의 엄마가 된 감독은 수면 아래 덩어리 채 가라앉아 있던 기억들을 끄집어낸다. 감독은 어릴 적 성추행 당한 기억과 먹고 살기 위해 사건을 묻어두길 선택한 엄마와 마주한다. 엄마의 첫 등장이 그러하듯 감독은 엄마에게 묻고 싶었을 수도 있다. 왜 그 사건을 묻었는지. 감독은 사건을 묻은 엄마를 이해하고 싶었는지도 혹은 자신이 그 사건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 모두 그런 순간들이 있다. 이해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순간들 말이다. 명소희 감독의 <방문>은 자신의 마음의 풍경을 외면하지 않고 솔직하게 그런 순간들을 보여주며 소통의 길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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