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도시의 색다른 리듬 - <환영의 도시>와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  

by.이승민(다큐멘터리 연구자 &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프로그래머) 2019-08-08조회 1,608
환영의 도시 스틸

영화와 도시는 닮아있다. 둘 다 근대의 산물이고, 집단과 익명을 전제로 하고, 무엇보다 어둠 속에 빛이 발현할 때 둘은 ‘어떤’ 에너지를 뿜어낸다. 여기 ‘도시’를 다루는 두 작품이 있다. 두 영화는 비단 ‘도시’를 제목으로 할 뿐 만 아니라 도시의 속성과 영화의 특성을  활용하고 실험한다. 정한 감독의 <환영의 도시>(2018)는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를 담은 실시간 동영상을 모은 작품이고, 박군제 감독의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2018)는 그래픽적 감각을 동원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논하면서 도시 재개발을 다룬다. 각각의 작품은 기존의 도시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게 도시와 영화의 ‘본다’는 키워드를 통해 색다른 도시리듬으로 구축하고 있다.      
 

실시간의 감각   
<환영의 도시>는 11분 동안 진행된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를 11분 동안 담은 영화이다. 영화는 감독이 직접 촬영한 영상이 아니라 온라인상에 오픈된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를 찍은 동영상을 모아 실제 사건의 시간과 영화의 시간을 연동시킨다. 다시 말해 11분의 불꽃놀이의 시간과 11분의 영화의 시간 그리고 그 시각 찍은 수많은 휴대폰 동영상 클립들은 영화의 새로운 시간감과 리듬을 구축한다. 사진과 달리 시간을 현재화하는 속성을 가진 영화는 이제 실시간 동영상이라는 질료와 함께 색다른 시간감을 만들어낸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각기 다른 공간에서 동일한 이미지를 보고 온라인에 올린 동영상은 동시성과 연결성의 감각을 만들어낸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찍힌 대상인 불꽃놀이 자체의 이미지 보다 불꽃놀이를 찍고 있는 카메라 뒤 사람들의 존재를 강하게 느끼게 된다. 각기 다른 거리와 각도에서 찍힌 불꽃놀이는 카메라 뒤 찍는 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실시간 현장의 동시성과 다양성을 구축해낸다. 마치 생중계하듯이 불꽃놀이의 여러 현장을 동시에 드러내는 영화는 불꽃의 아름다움에 탄성을 지르는 동시에 40억 화약에 대한 자본을, 환경을, 노동을 나아가 동시대 사회이슈인 사드배치까지 소환해낸다. 실시간 다중의 감각은 불꽃축제 중 흘러나오는 아나운서톤 목소리로 인해 보다 강조된다. 전지적 시점의 권위적인 단일 목소리는 핸드폰 뒤의 다중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와 대비된다. 미시적 일상사를 나누는 목소리에 비해 이 목소리는 관습적이고 단호하고 단선적이다. “새로운 기적이 시작됩니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믿습니다.” 핸드폰 뒤 사람들은 그 목소리를 비웃기도 하지만 이어 나오는 아리랑을 따라 부르기도 한다. 

<환영의 도시>는 표면적으로는 대자본 대도시 소비의 정점인 롯데월드타워 불꽃축제의 스펙터클을 보여주지만, 그를 통해 볼거리를 향유하고 소비하는 관객의 보기 방식을 다루고 있다. 이제 볼거리는 그 자체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매개된 이미지로 부유한다. 순간을 기록하고 간직하고자 하는 욕망은 직접 보기를 대신해 이미지를 소유와 소비하고 나아가 박제한다. <환영의 도시>의 진짜 주인공은 그래서 스펙타클한 도시 건물이 아니라 도시에서 환상을 체험하는 방식이다. 일명 ‘소셜미디어적 관람 체험’이라고 할까?    
 
    
디지털 스펙타클  
보기의 방식을 실험하는 또 한편의 도시 영화가 있다.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는 표면과 이면의 역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이다. 표면적으로는 뚜렷이 연결성이 없는 파편화된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영화는 그 자체를 구성으로 본다/보이지 않는다를 도시 재개발과 엮어낸 흥미로운 작품이다. 첫 장면은 색감대비가 강렬한 그래픽과 비트감 있는 음악에 맞춰 한 남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눈에 띈다는 이유로, 징그럽다는 이유로 군화발로 짓밟아 죽이는 무당개구리 일화를 들려주는 장면은 실상 지시적 이미지가 부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이미지와 사운드는 연동가능하다. 특히 무지개빛 그래픽에 이르러서는 본다와 보이지 않는다 사이의 어떤 섬뜩한 관계를 인지하게 한다. 다음 에피소드는 전자와 달리, 선명한 지시적 이미지를 가진 장면이다. 다리 밑 도시 재개발 현장을 조용히 응시하고 있는 영화는 이어 해운대 대규모 재개발 광고를 담는다. 흥미롭게도 이처럼 구체적이고 지시적인 이미지를 보고 있어도 실제로 무엇을 보고 있는 지 모호할 뿐 아니라 별 감흥이 없다.  
 
 
<거대 생명체들의 도시>는 이처럼 “본다 (혹은 보지 않는다)” 는 표면을 통해 본다(보지 않는다)의 이면에 대해 고찰한다. 볼거리는 <환상의 도시>처럼 기억과 기록의 욕망으로만 향하는 것이 아니라 인식과 편견의 영역으로도 나아간다. 보이지 않는다면 무심하겠지만 눈에 띄는데 징그러우면 죽인다의 혐오의 감각은, 보이지만 의미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무감각해지는 지점, 영화는 한발 더 나아가 보이지 않지만 상상할 때 연민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어지는 장면들이 그렇다. 연가시와 바퀴벌리 그리고 매미로 향하는 일화는 그래픽 이미지와 강한 비트의 음성을 통해 상상 가능한 징그러움을 다층적으로 자아낸다. 한 측은 벌레를 향해 다른 한 측은 개발과 파괴를 행하는 인간 자신에게 향하는 것이다. 이 구조는 도시 재개발의 문제와 집단 지성의 문제로 확장된다. 

도시는 가시적인 자본주의의 거대 스펙타클 뿐 아니라 비가시적인 곤충과 벌레와 같은 생명체 (그 생명체 속에는 인간이라는 생명체도)도 공존한다. 두 작품은 기존에 도시를 거주 공간으로 혹은 생활 공간으로 재현하면서 가난, 청춘, 고립, 차별, 이주를 다른 반면, 도시의 이미지와 리듬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보기’의 방법을 영화 속 언어로 담아낸 새로운 도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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