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이스]점 JEOM 김강민, 2017

by.추혜진(인디애니페스트 프로그래머) 2019-07-18조회 1,186
점 스틸
창의적 도구의 사용과 상상력 사이에서 아날로그 감성을 그리다.

초기 애니메이터들에게 애니메이션은 새로운 매체로써 자신의 상상력을 시각화하는 일종의 창의적 탐험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애니메이션 역사상 형식적인 측면에서 가장 다양한 실험을 시도한 작가라고 평가받는 실험 애니메이션의 대가 노먼 맥라렌 역시 작품의 아이디어 대부분을 정형화된 제작 기법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재료와 테크닉을 실험하는 과정을 통해  수많은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애니메이션의 지평을 넓히는데 공헌했다. ‘매체가 표현을 규정한다.’라는 그의 말은 다른 어떤 미사여구보다 그의 작품 세계를 가장 명확하게 묘사해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김강민 감독의 작품은 초기 실험 애니메이션 작가들의 미학적 시도와 닮은 구석이 많다. 창의적 아이디어와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는 도구 사이의 균형과 실험적 탐색을 통해 감독은 순수한 상상력의 세계를 자신만의 독특하고 창조적인 수작업의 정서로 재현하고자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강민 감독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점(Jeom)>(2017)은 2012년에 제작된 <38-39'C>의 속편 격으로 ‘모반’ 혹은 ‘몽고반점’이라 불리는 검은 점에 의해 거부할 수 없는 유전적 힘으로 연결되어있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담고 있는 작품이다. 초반 이야기는 현실과 비현실의 세계가 교차하듯 포탈이 서서히 열리면서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처럼 엉덩이에 큰 반점을 갖고 태어났다는 다소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자기 고백적 서술로 시작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주인공이 아버지와 서로 닮아있는 엉덩이 표식을 무척 싫어한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면 사라질 것이라는 희망은 곧 절망으로 바뀌게 되고, 아들은 필사적으로 그 흔적을 지우려 하나 성공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아들에게 첫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서, 표식이 혹여 자신의 아들에게까지 이어질까 전전긍긍한다.     
 

작품의 모티브는 전작 <38-39'C>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이야기는 감독 자신과 자녀와 거의 소통이 없었던 진지하고 과묵했던 아버지 사이의 관계에 바탕을 둔 작품으로, 아버지를 회상할 수 있는 기억의 장소이자 서먹했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대화 없이 유일하게 스킨쉽을 통해 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공간인 대중목욕탕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은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매주 갔던 낡은 대중목욕탕을 추억의 공간으로 소환하고, 서로 등을 밀어주던 시간들을 되감기하면서 어느새 아버지 나이가 된 자신을 통해 아버지에 대한 짠한 마음과 미운 감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1편에 해당하는 <38-39'C>가 아들인 자신과 아버지와의 관계에 초점을 맞췄다면, 속편인 <점>에서는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자신과 자신의 아들에 대한 이야기로 경로를 선회하면서, 이제 이야기는 아버지의 관점으로 이동하여 또 다른  라운드를 맞이한 부자 간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인지에 대한 새로운 고민을 시작하면서 끝을 맺는다.  
 

우연히 세대 간 이어진 반점이란 변조된 유전적 유산을 통해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풀어 낸 시도도 흥미롭지만, 무엇보다 자신을 둘러싼 매체 환경을 이해하고 이를 활용하여 다양한 도구의 탐색으로 제작 프로세스 자체를 표현의 발견이자 새로운 미학으로 시각화한 감독의 실험 정신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전 보다 섬세하게 조각된 2D 컷아웃 퍼펫 캐릭터와 입체적 배경 레이어의 앙상블이 손맛의 매력을 필터 없이 그대로 전달하고 있으며, 추상과 구상을 가로지르는 이미지 변주가 몽환적으로 실현되면서 작품 세계를 한 층 더 독특한 시선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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