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국사회에 얽혀 있는 복잡다단한 문제들을 고민하다 보면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뿌리를 찾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때 우리는 한국현대사를 돌아보게 되는데, 미국과의 관계를 떼어내선 생각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8.15 해방에서부터 미군정, 한국전쟁, 베트남전과 경제원조, 박정희 쿠데타, 광주민주화운동, 지금의 FTA까지 현대사의 굵직한 사안들에 미국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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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바람과 불>은 미군 선전영화, 독재정권의 공보처 기록물, 계몽영화 등의 뉴스릴 필름과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들을 재편집해, 재료로 사용했던 원래 영상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낸다. 언뜻 상관없어 보이는 클립들은 서로 충돌하며 관객들에게 미묘하고도 아이러니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검열의 시대에 신문을 제대로 보려면 ‘행간`을 읽어야 했듯이, 건조한 기록필름들의 쇼트와 쇼트들을 보다보면 이 시공간 사이에 무언가가 존재함을 눈치챌 수 있다. 역대 한국 대통령들의 반복적인 미국행, 미국의 무기개발을 찬양하는 대한뉴스와 북한의 핵무기개발을 비난하는 기도회, 아이들의 영어마을과 대학의 영어공용화 수업, 한국전쟁 60주년 기도회를 찾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등, 화면들을 보다보면 어디선가 한번쯤 봤을 법한 낯익은 장면 속에서 잊고 있었던 혹은 알지 못했던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감독의 말을 빌자면, ‘어떤 쇼트도 개별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들의 관계가 마치 세계 자체가 그러하듯 중층적이고 모든 것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는 미로와 같은’ 영화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나레이션 한마디 없는 이 영화의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객관적 사실`을 재료로 삼아 완벽히 감독만의 ‘주관적 이야기’인 다큐멘터리를 완성해 낸다는 것이다. 김경만 감독은 영화제작소 청년 회원으로 활동하며 <
하지 말아야 될 것들>, <
골리앗의 구조>, <
바보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 등 여러 작품들을 제작하는 동안, 시종일관 오래된 기록영화, 뉴스릴, 선전영화 등을 이용해 재편집하는 작업을 해오고 있다. <
미국의 바람과 불>은 그의 첫 장편으로 2011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JIFF 관객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극장 개봉을 준비중이다.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양식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뒤집고 있는 이 작품을 관객들은 어떻게 공명할지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