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JEJU•Day 제작기 메이 제주 데이, 2021

by.강희진(애니메이션 감독) 2022-03-31조회 768

사람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이야기들을 접할 때가 있다. 제주 4•3이 그러했다. “4•3이 뭐예요?” “아니 그걸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 약 10년 전 해녀를 주제로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제주에 머물 동안 마을 주민들과 나누었던 대화였다. 중요한 사건을 몰랐다는 충격과 죄책감 때문인지 마음속 숙제로 남았고, ‘10년 안에는 만들어야지…’ 다짐은 했지만 좀처럼 엄두가 나지 않아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던 사건. 세월이 흘러 차기작을 만들기 위해 다시 제주를 찾은 나는 우연히 4•3평화기념관 2층에서 전시되었던 생존자들이 그린 그림을 만났고, 2019년이 되어서야 미뤄온 숙제를 시작했다.

70년이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역사적으로 규명하지 못한 제주 4•3과 당시 기억에서 자라지 않은 듯한 생존자들의 그림은 어딘가 닮아있었다. 엄마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총을 맞던 순간을 그린 생존자의 그림에 압도되었고, 고민했던 이야기의 전달 방법을 찾은 듯 했다.
 

방법을 찾았다면 제작을 위한 자원 확보 또한 절실했다. 다큐 애니(Animated documentary) 형식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리서치 작업에 필요한 숙박과 교통 및 진행비, 애니메이션 본 제작에 필요한 제작비 확보가 관건이었다. 그래서 서울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지원하는 [SBA 단편 애니메이션 제작지원]을 받았고, 이후 덴마크에서 진행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지원하여 한국, 일본, 덴마크 세 국가의 아티스트들과 교류하는 [NINOKO - Universe Accelerator]에서 다큐 애니 제작 전문 플랫폼인 [ANIDOX]의 자문을 받아 다큐 애니 단편을 개발해 나갔다.
 

처음엔 다년간 다큐 애니 작업을 해오며, 표현 방법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 애니메이션 연출에만 집중하고 싶었다. 그래서 4•3평화기념관에서 본 전시회의 작가들에게 그림과 인터뷰 내용에 대한 사용 허락을 구했지만, 아쉽게도 불발되었고 인터뷰이부터 새로 찾아 나서야 했다. 그러다 그해 광주에서 열린 국가폭력 피해 당사자들 모임에서 만난 제주 4•3 유족회 처장님이 떠올랐고, 도움을 요청 드린 후 증언과 그림을 그릴 수 있을만한 13명의 생존자를 차례로 소개받을 수 있었다.

혼자서 처음부터 진행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많았고, 처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구술채록 과정에선 기존에 생존자들과 그림 작업을 했던 작가들로부터 자문을 받아, 몇 회 정도 그림을 그리고 각각의 회차에서 어떤 방식으로 증언과 그림을 그려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이후 지인을 통해 소개받은 트라우마 연구자로부터는 트라우마의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인터뷰를 진행할 때 인터뷰어가 주의해야 하는 사항에 대해 자문을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약 3회에서 6회에 걸친 인터뷰와 구술 채록 과정을 진행하였다. 처음 기획했던 것과는 달리 작업의 성격이 변했기 때문에, 앞으로 무엇에 중점을 두고 연출해 나가느냐가 관건이었다. 다큐 애니 작업은 자료조사에서부터 인터뷰 종료 혹은 애니메이션 제작단계까지 이런 가변적인 상황이 항상 수반되는, 일반적인 극 애니메이션 연출과 다른 특징이 있다.
 


가장 우려했던 부분은 생존자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작업이기 때문에, 인터뷰와 그림 그리는 과정에서 일어날 수 있는 2차 피해가 일어나지 않게끔, 나름의 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인터뷰 전엔 작업의 취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인터뷰가 끝난 후엔 악몽은 꾸지 않는지 등을 점검해나가며, 증언과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내적인 힘이 있다고 판단되는 생존자들 위주로 추가적인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러다 보니 인터뷰를 중단한 경우도 있었다. 처음엔 보호자도 동의하고 생존자도 괜찮다고 얘기하셨지만, 어째서인지 본인이 목격한 사건의 핵심을 놔두고 빙빙 에둘러 얘기하는 모습이 관찰되었다. 입은 괜찮다고 말하지만 “그만 물어봐 주세요.”라고 얘기하는 눈… "삼춘, 괜찮다고 하셨지만 더 얘기 안 하시는 게 나을 것 같다. 인사만 드리러 다시 오겠다.”라고 얘기 드린 후 인터뷰를 종료했다. 이런 과정을 겪다 보니, 처음엔 미술치료의 일환으로 접근했지만, 몇 번의 그림 그리는 과정을 통해 생존자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는 나의 섣부른 판단이고 오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상처를 더 헤집지 않게끔 주의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몫이었다.
 

인터뷰를 끝냈다. 생존자가 겪은 4•3의 전후 상황을 모두 듣고 그림으로 남겼지만, 시나리오를 제작하는 과정에서 이야기를 선별해야 했다. 14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맞게 당시의 피해 상황에만 집중하고, 특히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이라는 점을 강조하기로 했다. 군경 토벌대와 무장대에 의한 피해 또한 실제와 비슷한 비율로 증언을 구성했다. 증언과 그림에 맞춰 각각 다른 재료와 기법을 쓰기로 했고, 애니메이션 연출을 할 땐 표현 가능한 폭력의 수위에 대해 특히 더 고민했다. 학생들의 교육 자료로써 활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작업이었기에, 너무 노골적으로 당시의 상황을 폭력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지양했다. 오히려 사건으로 인해 잃어버린 유년 시절의 추억이, 영상 안에서만큼은 펼쳐질 수 있게끔 연출하고자 했다.
 

얘기로만 전해 들었던 “트라우마의 전이과정” 또한 자연스레 일어났다. 일주일 내내 군인들만 그렸을 때 꿈을 꾼 적이 있다. 꿈속에서 난 당시 소녀였던 생존자가 되어 기관총과 군인을 피해 학교 운동장에서 이리저리 사람들과 휩쓸려 다니다, 빠져나갈 구멍을 찾지 못한 채 삶을 체념하는 악몽이었다. 단적인 예이지만, 내가 왜 이런 작업을 하는지 보여주는 일화 같았다. 폭력과 트라우마는 여러 세대에 걸쳐 대물림된다. 스스로 왜 이런 주제에 천착하는지 몰라 자문하다 보니, 가깝게는 가족에서 시작해 그동안 마주쳤던 국가폭력으로 인해 삶이 달라진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트라우마의 전이는 기억의 전승 과정에서 끊어낼 수 있는가? 지금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다.
 

단편 작업에 필요한 구술 채록을 할 때, 생존자들은 대개 3-6장의 그림을 그리면 많이 그리는 편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자발적으로 50장이 넘는 그림을 그린 생존자가 있었는데, 아직 못다 한 이야기가 더 있다는 판단이 들었다. 더 나아가, 나 또한 폭력의 트라우마를 다루는 작업이라 악몽도 꾸곤 했지만, 생존자와 인터뷰를 진행할수록 오히려 위로와 힘을 얻는 과정이 있었다. 아직 내가 경험한 이것이 무엇이라고 설명할 순 없지만, 현재는 생존자와 함께 겪은 이 연대의 과정을 장편 다큐멘터리로 제작하고 있다.
 

제주 4•3 74주년 추념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며칠 후엔 현재 장편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인 생존자와 함께 온라인으로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이들이 생존자에게 묻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생존자는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 싶을까? 아직 발화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초기화면 설정

초기화면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