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이 좋은 가을에 책을, 또한 사랑을! 북 오브 러브, 2016

by.이승연(작가) 2021-09-29조회 6,278

“만남은 ‘사건’이다.”
『사랑 예찬』에서 알랭 바디우는 이렇게 말했다. 어떤 일이 사건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자체가 충격과 경이, 감탄을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 ‘놀라움’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바디우는 여기에 또 하나를 전제했는데 그것은 바로 ‘우연성’이다. 예정된 만남은 사건일 수 없다. 해서 수많은 이야기와 소설들이 가장 극적인 만남을 연출하기 위해 그토록 양극의 이원성과 배리를 상정한 채 사랑의 출발을 위한 총성을 울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우연을 인연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인연이 되면 그것은 또한 운명과 직결되는가? 사랑의 완성이라는 것을 정의내릴 수 없으므로 짧은 만남 뒤에 헤어짐이 있다 해서 인연이 아니었다거나 운명은 더더욱 아니었다고 쉬이 단정할 수는 없겠다. 사람과 사람이 만났다는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도, 무의미한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만남의 의미는 그 순간엔 희미할지라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일순 강렬하게 떠오르거나 시나브로 농밀해진다.

다만 예측하기 어려운 것은 ‘대면’이라는 형식의 만남이 없이 만들어진 만남이다. 바디우는 만남의 종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짐작건대 당연히 그가 말하는 만남은 물리적 마주침이 있는, 최소한 서로의 눈을 마주볼 수 있는 수준의 교차일 것이다. 첫 눈에 찌릿한 전기가 올라 솜털까지 죄 차렷 자세가 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단 한 번의 만남도 없이 지란지교의 우정과 지순한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그런 경우가 드문 것도 아니다. 그래서 만남 없이 형성된 인연이란 사건에서 시작된 관계가 아니라 사건을 만들어가는 관계일 지도 모른다. <북 오브 러브>의 주인공 지아오와 다니엘처럼.
 

마카오에서 카지노 딜러로 살고 있는 지아오(탕웨이 분)는 자신의 침대에서 우연히 『채링크로스 84번지』라는 제목의 책을 발견하고 쓰레기 던지듯 한 구석으로 치워버린다. 그런데 어느새 또 그녀의 옆에 그 책이 나타난다. 몇 번의 똑같은 반복에 짜증이 난 그녀는 아예 그 책을 ‘채링크로스 84번지’ 그러니까 그 책의 원래주소로 보내버린다. 미국에서 부동산중개인을 하는 다니엘(오수파 분)에게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그 역시 지아오처럼 자신의 책을 영국의 그 주소로 부친다. 지아오가 보낸 책은 중국어판, 다니엘이 보낸 책은 영문판이었다. 일이 그리 될 줄 모르고 한 짓이었지만 지아오는 책을 보내면서 편지 한 통을 동봉했었다. 그리고 얼마 뒤 중국어로 된 책과 편지는 엉뚱하게도 영국이 아닌 미국의 다니엘에게로 도착한다.

도박에 빠져 빚만 잔뜩 남긴 채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 때문에, 이혼과 재혼으로 14살짜리를 홀로 미국땅에 보내버린 부모 때문에 지아오와 다니엘은 각자의 신산한 삶을 이어나가는 중이었다. 세상은 자주 그들을 비굴하게, 비참하게, 강퍅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그들은 삶의 표면에서 부유하기 일쑤였다. 행복은 간헐적으로도 존재하지 않고 사람은, 또한 사랑은 그들에게 위로가 아닌 풍진 그 자체였다.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할수록 현실은 더욱 유리된 채로 그들을 마주했다. 오늘이 어제와 같기만 해도 다행인 삶. 갈수록 태산이고 나아갈수록 진창인 희망 없는 일상에서 장난처럼 끼어든 우연이라?! 그렇게 한낱 장난인 줄만 알았던 작은 점이 조금씩 큰 원을 그려가며 심연에 파문을 일으킨다. 사건이 되어간다.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상대에게 보내는 편지란 기실 허공에 대고 떠드는 허망한 짓일는지 모른다. 정신적 자위행위이거나. 그럼에도 누군가를 향해 마음을 내보인다는 것, 감정을 발산한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일이다. 모든 치부와 비밀은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털어놓기가 더 쉬운 법이지만, 글은 말보다 깊고 세서 글로 토해버린 마음은 상대의 가슴에 어떻게든 흔적을 남긴다. 그것이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이 아니라 이 세상 오로지 단 한 사람에게 읽히는 글이라면 더욱 그렇다. 
“온 몸을 가시로 두르면 난 안전하다 싶었는데 남을 찌르면 내가 더 아프더라고요.”
“난 그 가시에 늘 찔리기만 했어요. 또 실패하더라도 버텨야겠죠...”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또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취했던 방법이 실은 그들 스스로를 더 고통스럽게 만든 이유이기도 했다는 걸, 그들은 그렇게 오고가는 편지를 통해 아프게 깨닫는다. 그리고 고통을 직면하게 한 위력은 마침내 그들의 관계를 변화시킨다. 1년간의 소통이 자기성찰에서 사랑으로 발전하고야 마니.

그런데 그들의 감정이 사랑이 되었다고 해서 그들은 꼭 만나야 좋은 걸까? 그것만이 우주의 섭리일까?
각자의 정답은 다를 것이나, 분명한 것은 ‘만남’과 ‘사랑의 결실’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채링크로스 84번지』의 진실이다. 지아오와 다니엘의 만남 이후를 우리는 알 수 없다. 섣불리 예단하고 싶지 않다. 단지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기적은 『채링크로스 84번지』의 주인공인 헬레인(앤 밴크로프트 분)과 프랭크(안소니 홉킨스 분)의 실제 삶뿐이다. 무려 20년간 단 한 번의 만남 없이 편지로만 인생의 교집합을 만들었던 그들! 어쩌면 그것은 우정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거리도 거리거니와 미혼 여성과 기혼 남성이라는 현실적 제약, 특히 실화인 이 책을 영화화한 <84번가의 연인>에서조차 두 사람간의 사랑의 속삭임 같은 건 확인할 수 없었으니까. 책을 접한 이들이 ‘연인’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영화의 제목에 반감을 가졌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랑을 통념의 의미로 협소하게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 둘에게는 특히. 넓게 보면 우정도 사랑이니까, 따위의 해석이 식상해서만은 아니다. 그 긴 세월동안 루틴한 일상은 물론 문학, 예술을 아우르는 사유와 정서를 모두 공유한 헬레인과 프랭크의 관계는, 세상 유일의 돌올한 정신적 교접이었다. 나는 그것을 도저히 사랑이라는 말 이외의 것으로 표현할 자신이 없다. 금슬 좋다는 부부에게서조차 쉬이 발견할 수 없는 특별한 일체감! 당연히 그것은 사랑이었고, 나아가 너무도 특별한 사랑이었다.

<북 오브 러브>는 헬레인과 프랭크를 안타깝게 여긴 감독이 그들을 환생시켜 끝내 만나게 해주고픈 정념의 소산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관객인 우리는 이 영화, 저 영화 모두를 감상할 수 있기에 기쁘고 반가울 따름. 기왕 일을 이렇게 벌였으니 채링크로스 84번지가 만드는 또 다른 기적을 계속 보여주는 건 어떨지? 설효로 감독님, 준비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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