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정동 우리집, 2019

by.조혜영(영화평론가) 2021-09-10조회 1,451

윤가은 감독은 2016년 여자아이들의 우정을 역동적으로 그려낸 <우리들>로 큰 주목을 받으며 장편 데뷔를 했다. 이미 단편 <사루비아의 맛>(2009), <손님>(2011), <콩나물>(2013)에서 여자아이들의 감정과 모험을 다룬 윤가은 감독은 최근작 <우리집>(2019)에서도 각자 집에 해결할 문제를 안고 있는 하나와 유미·유진 자매를 통해 집과 우리의 의미를 묻는다. 이렇게 여자아이들의 다양한 관계와 삶을 다룬 연작으로 윤가은 감독은 ‘우리 유니버스’라고 칭해지는 하나의 세계를 구축한 새로운 세대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유니버스’는 10대 여자아이들의 삶이 얼마나 영화적이고 스펙터클한지, 그리고 얼마나 할 이야기가 많은지를 증명한다.

<우리들>의 오프닝 장면을 보자. 블랙 스크린이 지속되는 첫 쇼트는 여러 아이들이 각자 자기 팀이 될 멤버를 뽑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는 소리를 들려준다. 서로 자기를 먼저 뽑아달라는 대사와 뽑히지 못해 아쉬워하는 한숨소리가 뒤섞인다. 그리고 이어지는 두 번째 쇼트에서 관객은 불안과 긴장으로 가득한 선의 얼굴을 만난다. 더티 싱글의 롱테이크로 연출된 이 클로즈업 쇼트는 선의 얼굴 주변 배경으로 프레임 인 & 아웃과 포커스 인 & 아웃이 반복되며 시끄럽게 장난치는 다른 아이들의 무신경함과 말없이 눈치만 보는 선을 대비시킨다. 아이들은 선을 대놓고 따돌리진 않지만 굳이 한 팀이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선은 속상하지만 티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화면 밖에서 마지막 가위바위보가 이뤄지고 선은 끝까지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선을 데려가게 된 아이는 선을 다른 아이와 바꿔달라고 부탁하기까지 한다. 이 장면은 자존심 상하고 주눅 들지만 끝내 무너지지 않으려는 10대 여자아이의 변화무쌍한 감정을 정확하고 강렬하게 그려낸다. 단 두 개의 쇼트로 구성된 이 오프닝 장면은 10대 여자아이가 은근하게 따돌림 당하는 환경과 감정, 배경과 인물, 외면과 내면을 모두 가시화하며 한 여자아이의 미묘한 감정의 변화를 단숨에 드라마틱하고 스펙터클한 사건으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집>도 이와 유사하게 오프닝을 연다. 블랙 스크린으로 시작한 오프닝 장면은 불안하게 숨을 몰아쉬는 소리, 한숨소리, 밥 먹는 소리, 매미소리가 레이어를 만들며 점점 사운드가 쌓여가는 가운데 그 꼭지점에서 엄마아빠가 싸우는 소리와 함께 주인공 하나의 얼굴이 클로즈업으로 등장한다. 이 장면은 온전히 어찌할 바 모르는 하나의 불안한 감정과 수심에 가득 찬 얼굴에 집중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이들이 얼마나 주변의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들>이 두 여자아이의 우정에 대한 영화라면 <우리집>은 여자아이들에게 돌봄과 ‘우리’라는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영화다. 이 영화는 10대 여자아이를 통해 돌봄이 고단한 노동일뿐만 아니라 끊임없이 주변을 살피는 관찰의 제스처이며, 친밀감, 공동체 구성을 통한 안정감, 문제해결의 성취감, 선행의 인정욕구, 서로를 간섭하는 데서 오는 짜증, 자기 욕망과 강제된 성별역할 사이의 혼란 등 다양한 상태와 감정을 포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들>에서도 사용되었던 사운드로 화면 안과 밖을 끊임없이 연결하고 서로가 서로를 간섭하고 영향 받는 영화적 연출형식은 돌봄의 제스처와 정동을 체화한다.

<우리집>의 주인공 하나는 나이는 어리지만 학교에서 선행상을 받을 뿐 아니라 방학숙제로 요리책을 만들고 실제로 타인을 위해 요리해주는 것을 즐긴다는 면에서 돌봄 능력이 뛰어나다. 하나는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뿔뿔이 흩어지기 직전의 가족을 다시 ‘하나’로 만들고자 한다. 하지만 아무리 성숙한 하나라도 어른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란 쉽지 않다. 하나가 할 수 있는 건 밥을 차려 같이 먹자고 반복적으로 요청하거나 좋았던 시절의 추억을 살려 가족여행을 가자고 조르는 정도이다. 하지만 그조차 매번 실패한다. 그래서 하나는 유미와 유진 자매를 발견한다. 대형마트에서 하나는 꼼꼼한 관찰력으로 유미와 유진 자매에게 어른들의 일상적인 돌봄이 부족함을 알아챈다. 길을 잃어버린 유진을 찾아주며 친분을 맺은 하나는 화목해 보이는 유미와 유진의 집에도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큰 경제적 어려움 없이 아파트에 사는 하나와 달리 옥탑방에 사는 유미와 유진이네 집은 잦은 이사를 다녀야 하는 처지이다. 이혼직전의 부모가 문제인 하나와 안정적인 거주조건이 부족한 유미는 서로의 집을 부러워한다. 셋은 <열차의 이방인>(1951)의 인물들처럼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주기로 한다. 하나는 자신의 문제 해결이 힘들어질수록 유미와 유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 집착한다. 하나가 자매를 돌봐주는 데서 오는 기쁨과 만족감은 단순하지 않다. 부차적이긴 하지만 하나는 자매를 돌보고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서 영향력과 능력의 성취감을 느끼며 자신의 가족 내에서 느끼는 무력감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
 

우여곡절 끝에 하나의 부모는 가족여행을 가기로 약속하지만, 하나는 곧 그것이 부모의 이혼여행임을 알게 된다. 역설적이게도 부모는 이혼 합의에 이르러서야 지난한 싸움을 멈춘다. 그러나 이혼이 가족의 해체로 이해되는 하나는 이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다. 하나는 가족여행 직전에 가출해 유미와 유진 자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여행을 떠난다. 엄마 아빠를 만날 기쁨에 셋이 함께 모은 상자로 만든 된 집을 등에 진 어린 유진과 무력함과 상실감에 빠진 하나, 그리고 그 둘 모두를 걱정하며 돌보는 유미는 자매의 부모가 일하는 보리해변으로 떠난다. 길을 잃고 어딘지 알 수 없는 해변에 도착한 셋은 갈등이 폭발하고 유진이 갖고 온 상자집을 발로 짓이겨 부숴버린다. 오랜 시간 공들여 함께 만든 집을 부수고야 셋은 서로에 대한 비난을 멈추고 서로를 돌아보게 된다. 파괴가 오히려 새로운 우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자매의 집의 부동산 계약이 성사되지 않게 하기 위해 방문객들에게 아이들이 집에 대한 악평을 하고 방을 어지르는 해체적 방식을 썼던 것처럼 그들은 정형화된 집을 부수고 나서야 자기들만의 집을 찾는다. 하나는 마침내 새로운 집을 만들기 위해선 때로 해체와 파괴도 필요하다는 것, 집은 하나의 모양과 속성을 갖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돌봄에 대해서도 하나는 자신이 일방적으로 유미와 유진을 돌봐주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유미 역시 계속 하나의 기분을 살피고 하나가 언니(리더)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도록 돌봐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돌봄에는 여러 결과 각도가 있다. 하나의 엄마는 직장과 가사 일을 모두 잘하는 수퍼맘이 되어야 한다는 부담감과 가부장제적 압박에 지쳐 하나의 돌봄 행위가 가부장제가 강요하는 성별역할을 벗어난 다른 결과 감정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가 성별고정관념 때문에 돌봄을 순순히 여자아이의 역할로 받아들이거나 문제해결을 돌봄을 통해서만 하려는 건 아닌지를 고민하고 걱정하는 하나 엄마의 감정 또한 여자아이와 관련된 돌봄의 정동이다.
 

집을 지키고 서로를 돌보고자 하는 세 여자아이의 모험은 집을 고정된 것이 아니라 이동과 모험의 공간으로 변모시킨다. 고전 주류 서사는 끊임없이 여성을 집(돌봄)과 일치시키면서 공간화화하고 정주시키며 모험을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반면 남성은 모험을 떠난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을 만나며 리더십을 시험하고 개인 영웅으로서의 성장서사를 만든다. <우리집>은 집과 길, 정주와 모험, 유지와 성장 중 양자택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우리집>은 집과 돌봄의 주제, 그와 관련된 감정과 관계를 버리지 않으면서 여자아이들의 모험의 서사를 만든다. 그를 위해 집을 트랜스포머처럼 이동시키고 해체하고 모험의 공간으로 만들며 때로 추상화한다. 유진의 상자집처럼 말이다. 셋이 해변가에서 우연히 만난 캠핑장의 텐트처럼 집은 얼마든지 모험적인 소재와 주제가 될 수 있다.

‘길 위의 집’의 모험을 통해 하나는 ‘우리’를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게 되는 성장을 한다. 하나는 엄마아빠가 이혼해도 다른 모양의 가족을 구성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고, 자기 가족 외에 우정으로 이어진 ‘우리’를 소중히 여기며, 물리적 공간이나 제도적 구속력이 ‘우리’를 떠받치는 유일한 조건이 아님을 알게 된다. 하나는 마지막까지 가족들에게 밥을 차려주며 새로운 ‘우리’를 만들어갈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 모험의 여정에서 하나는 돌봄의 가치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리더십을 시험하고 ‘우리’를 다양하게 구성하며 성장서사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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