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침통은 죄를 기억한다 마더, 2009

by.장병원(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 2021-09-03조회 9,047

봉준호의 <마더>(2009)는 한적한 들판에 나타난 노년의 여인(김혜자)으로 열린다. 프레임의 뒤에서 가운데로 걸어 들어온 그녀는 배경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기 시작한다. 태어나서 처음 춤을 추는 사람처럼 흐느적거리는 모양이 기괴하다. 마더의 캐릭터 안에는 이 춤과 같은 히스테릭한 제스처가 있고 그 내면에는 우유부단함이 있지만 이와 같은 미장센의 톤을 파악하기까지는 시간이 꽤 흘러야 한다. 한국의 어머니를 형상화한 상투적인 겉모습 외에는 마더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첫 장면에서 그녀가 춤을 추는 동기는 불분명하다.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카메라에 대고 직접적으로 말하려는 듯한, 마더의 불안정하고 원시적인 춤사위이다. 여하튼 최초의 등장은 영화 전체에 이름이 나오지 않는 캐릭터에 이입하여 내러티브가 진행될 것임을 예고한다. 여기에 이 영화를 대하는 관객들의 곤경, 즉 어떤 역사나 성격, 뒷배경도 헤아리기 힘든 이상한 여인에게 마음을 주어야 하는 난감함이 있다. 이야기의 경계를 초월한 것처럼 보이는 오프닝 쇼트는 캐릭터와의 동일시를 방해하는 대신 재현된 현실과 자연의 법칙 뒤에 숨겨진 무언가 다른 영역이 있음을 암시한다. 메마른 들판 한가운데서 히스테리적이거나 어쩌면 황홀한 상태로 카메라를 향하고 있는 마더의 춤이 이 드러나지 않은 영역의 존재를 말하고 있다.
 

조금 더 세부적으로 장면을 분석해보자. 스토리 영역 바깥에서 삽입된 논 디제틱(비(非) 동기) 음악을 동반한 카메라의 하강과 상승은 이 신의 미장센에 모호함을 가중한다. 흥미로운 것은 마더가 스토리 바깥에서 침투한 사운드(음악)의 존재를 알고 있는 양 춤을 춘다는 것이다. 음악의 선율과 굴곡, 호흡에 따라 마더의 몸이 움직이기 때문이다. 이름이 없는 여인은 스토리 세계 바깥의 드러나지 않은 영역과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플롯의 논리적 진행과 관련하여 이 쇼트를 대체하기에 적합한 장면이 있다. 도입부 마더의 춤은 서사의 3/4 지점에서, 아들 도준(원빈)의 살인혐의를 입증할 증인(고물상 노인)을 스패너로 내리쳐 살해하고 피를 뒤집어 쓴 마더가 오두막에 불을 지르고 벌판으로 흘러들어 넋이 나간 채 걷다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는 모습과 겹쳐진다. 여전히 마더가 이런 모양으로 방랑하는 이유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이 신에서 주목할 것은 자연의 법칙에 따른 재현(마더의 살인)과 현실에 대한 주인공의 인식(도준의 살인)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개의 현실이 분리되지 않고 통합된다는 점이다. 봉준호가 구성한 내러티브는 처음엔 익숙한 자연법칙에 기초한 것처럼 보이지만 인물과 동일시하고 깊이 있게 그를 탐구하기 시작하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대다수의 경우 서사는 중심인물의 주관에 의해 지배되고 일상적인 것과 불가능한 미스터리 영역의 혼합으로 미장센의 지위를 흐리게 하기 때문이다. 실재와 반 실재를 혼합하여 모순적인 방식으로 이들을 병치함으로써 서사적 모호성을 구성하는 독특한 서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가 작동하는 또 다른 양상은 시간을 활용하는 특성에서 나타난다. 봉준호의 대다수 영화는 선형적인 시간 순서를 따르지만 곳곳에서 스토리의 진행을 파열하는 갑작스러운 플래시백을 활용한다. 이러한 현실(현재)과의 분리는 플롯 진행에서 두드러진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배경 스토리로 삽입되기 때문에 서스펜스 효과를 이끈다. 오프닝 시퀀스 외에도 <마더>에는 누구의 것인지가 불분명한 짧고 갑작스러운 회상 신이 끼어든다. 인물이 보는 환각인지, 과거에 일어난 실재의 재현인지, 잠에서 본 꿈 장면인지 모호하다. 그러나 이 쇼트들은 스토리의 방향이 단기간에 전환될 수 있음을 표지하는 계시이다. 이 짧은 계시의 모호함은 살인자로 유죄 판결을 받은 아들 도준의 무죄선고를 위해 애쓰는 동안 과거에 맞서는 마더의 모습에도 반영되어 있다. 마더가 살인을 저지른 범인을 추적하는 동안 우리는 마더의 관점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살인의 순간에 대한 요약을 보게 된다. 도준의 살인 시퀀스에서 현장에 대한 모호한 시선을 통해 봉준호는 관객들이 마더가 결코 볼 수 없었던 사건을 목격하도록 만든다. 폐가의 안에서 창문을 통해 바깥의 소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소녀를 능욕하는 음산함을 뿜어낸다. 그러나 살인자의 시선으로 짐작되었던 이 쇼트는 목격자의 그것이었고 살인자의 정체는 놀라운 전환에 의해 드러난다.

<마더>에는 두 번의 살인 재현 장면이 있는데 후반부 재현에 해당하는 이 장면은 전반부 재현의 부연에 해당한다. 전반부 신에서 어두운 폐가 입구에 카메라가 머무는 동안 프레임 안의 도준은 누군가의 시선에 붙잡혀 있고 그의 앞에는 돌덩이가 던져진다. 철저하게 도준의 관점에서 묘사되는 전반부 재현에서 드러나지 않는 영역의 어둠 속 존재는 후반부 재현에서 밝혀진다. 다음 신에서 도준은 집으로 돌아와 팬티만 입은 채 오른손으로 마더의 왼쪽 가슴을 쥐고 잠든다. 이 쇼트는 옥상에 빨래처럼 널린 소녀의 시체를 보여주는 다음 쇼트와 잠깐 겹친다. 크로스 페이스 전환 덕분에 소녀의 시체(왼쪽)와 잠들어 있는 도준과 마더(오른쪽)라는 두 모티브가 몇 초 동안 화면에 동시에 나타난다. 이러한 시각적 연결은 두 모티프를 평행하게 연결하면서 소녀를 살해한 범인이 도준임을 알려주는 구문적 기능을 하지만 편집과 미장센은 살인 행위가 프레임에 나타나지 않도록 구성하여 관객이 살인자의 신원을 확신할 수 없도록 만든다.
 
   

봉준호의 화자들은 가능과 불가능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제한된 관점을 가져와 그들이 재현하는 현실에 의문을 불러일으킨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마더)는 현실의 본질을 감지하는 면에서 결함이 있다. 살인에 대한 재현은 마더에 대한 신뢰성을 단기적으로 중단시키고 그녀의 인식에서 벗어난 범죄 공간으로 미끄러지듯 흘러가며 그날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를 각기 다른 관점으로 기술한다. 그렇다면 마더는 어떤 사람인가? 그녀는 약초사이자 침술사이며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이다. 모자(母子) 간에는 구체적으로 말해지지 않은 과거가 있고, 그 외의 비밀들에 겹겹이 감싸져 있는 마더는 기억을 떨치고 과거를 버리려 한다. 과거 회상에 대한 기억 편향을 보여주는 짧은 회상체 대화에서 우리는 마더가 약을 먹여 도준을 죽이려 했고, 그로 인해 도준이 정신장애를 갖게 되었음을 알게 된다. 마더는 아들에게 자신의 원죄를 잊도록 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것을 망각하기 위해 다리를 침으로 찌른다.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는 관점에서 도준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틈새에 놓인다. 그는 과거를 망각하고 거의 기억하지 못할 뿐 아니라 현재에도 속하지 않고 현재에 부적합한 사람으로 동요한다. 침술 치료의 영향인지 도준은 과거와 현재의 가치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연속성이나 일관성을 결여한 상태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것이 도준이 살인을 저지르는 폐가 장면을 마더가 목격해야만 하는 이유이다. 시간의 흐름에 굴복하여 마더는 과거를 잊기로 결심하지만 도준이 건넨 침통은 트라우마를 소환한다. 이런 사정을 고려했을 때 오프닝 시퀀스에서 마더의 춤은 의미를 갖는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는 허벅지 한 지점에 침을 꽂는다. 나이든 여성들이 가득 찬 관광버스 안에서, 다른 승객들이 춤을 추며 마을을 떠나는 동안 마더는 이 광란에서 배제되어 침술에 의지한 채 암울한 과거를 잊으려 한다. 그러나 끝까지 그녀가 자신만 알고 있는 나쁜 기억과 상처를 잊었는지는 불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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