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월 1일 0시, 거꾸로 가는 기차 박하사탕, 1999

by.장병원(영화평론가) 2021-04-16조회 5,537

20세기 말 뤼미에르 형제의 <기차의 도착>(1895)은 활동사진이라는 신(新) 예술의 도착을 알렸다. 시오타 역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기차의 현실감에 압도당한 관객들이 겁에 질려 소란이 일었다는 거짓말 같은 일화도 전해진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하나의 ‘기차 영화’가 이목을 끌었다. 2000년 1월 1일 0시에 개봉한 <박하사탕>(1999)에 기차가 도착한 순간 한국영화는 새로운 스토리텔링의 시대로 진입한다.

이창동의 기차는 거꾸로 간다. <박하사탕>에서 기차 장면들은 서사의 가장 중요한 마디들에 배치되었다. 회색 양복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한 김영호(설경구)는 원근법적 구도로 찍힌 선로에 위태롭게 서 있다. 곧이어 영호의 몸은 이미지의 소실점으로 이끌리듯 뒤로 기울어진다. 뒤에서 기차가 굉음을 내면서 다가오자 영호는 휙 돌아서 기차의 정면으로 향하고 금속 기계로 빨려 들어간 관객의 눈은 카메라의 시점에 동기화된다. 팔을 위로 뻗은 채 영호는 비명을 지른다. “나, 다시 돌아갈래!” 영호의 회전과 동시에 시간도 회전하고, 절규하는 영호의 얼굴 위에서 이미지는 얼어붙는다. <박하사탕>의 내러티브 궤적 내에서 이 얼어붙은 이미지는 형식적인 중요성을 갖는다.
 
박하사탕 이미지, 설경구

<박하사탕>은 혁신적인 스토리텔링에 의해 전달되는 파괴적인 드라마였다. 이창동의 거꾸로 가는 기차는 스토리텔링의 본질에 관한 은유이다. 캄캄한 터널을 지나 점점 확대되는 햇살 속으로 기차가 빠져나가면서 영호의 여행도 시작된다. <박하사탕>의 시간여행은 통상적인 플래시백과 차이가 있다. 영화에서 플래시백이 누군가의 시점(point of view)을 경유한 회상으로 정의되는 데 반해 <박하사탕>에서는 시점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서사 안에는 시간의 고정점이 부재하며 따라서 후진하는 기차를 따라 기술되는 과거 스토리는 영호의 회상이 아니다. 기차는 시간을 거슬러 여행한다기보다 시간을 이동하기 위한 장치이다. 이창동은 앞으로 진행하는 시간과 매몰된 시간들을 소환하는 시각적인 은유로 기차를 활용해 역사의 닫힌 경로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없는 인간의 비극을 다룬다. 한편으로 기차는 당시까지 이창동의 영화 세계를 표상하는 시간-장치였다. 그의 데뷔작 <초록물고기>(1997)는 덜컹거리는 기차의 외경 쇼트로 열린다. 군에서 막 전역한 막동(한석규)은 집으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미애(심혜진)와 우연히 교차한다. 기차 문에 걸터 선 막동에게 미애의 자줏빛 실크 스카프의 날아드는 장면은 고전적인 러브스토리에서 로맨스가 피어나는 순간을 재연하는 것 같다.

<박하사탕>의 기차 장면들은 1979년부터 1999년까지 영호의 삶을 망가뜨린 7개의 삽화들 사이에 배치되어 시간 이동을 위한 프레이밍 장치로 사용된다. 각각의 삽화는 기차의 마지막 칸에 배치된 카메라 앵글로, 철도 선로 위의 움직임을 찍은 짧은 막간 쇼트들과 연결된다. 이 막간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디제시스를 뒤로 당기지만, 그에 대한 해석은 ‘영화의 스토리는 앞으로 전진한다’는 관객들의 경험을 따라간다. 스토리 시간은 뒤로 가지만 스토리는 앞으로 가는 플롯의 효과가 창조되는 것이다. 기차는 영호의 삶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이후에 등장하여 그의 삶을 치욕과 악행, 파멸로 몰아간 궁극적인 원인을 찾도록 한다. 행동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인과관계는 사실상의 테마가 된다. 중요한 삽화들을 이러한 방식으로 경험하는 관객은 행동과 동기를 지속적으로 추적하면서 캐릭터에 대한 정보를 축적하고 현재와 과거를 연결하기 위해 애쓴다. 각각은 이미 발생한 최종 결과, 즉 영호의 자살을 설명할 이유를 찾도록 주문한다. 통념상 전진하는 스토리 안에서 목표 달성은 가장 중요하며 이를 달성하는 수단은 부차적이지만, <박하사탕>과 같은 형식은 클라이맥스에서 시작하여 인과론적 미스터리를 탐색하는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내러티브에 연료를 공급하는 것은 이미 공개된 현재 상황을 설명할 과거의 기원을 탐색하는 것이다. 잃어버린 순수와 완전성에 대한 상실감과 애통이 스토리의 해결책을 제공하므로 영호의 개인사는 한국 현대사와 연결되어야 한다. 가장 가혹한 장면은 기차 뒤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아름다운 전원의 풍광을 배경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일부 장면에서 시간은 우울한 현악 4중주 음악과 함께 잔혹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권위주의 정부와 학살, 고문, 물신주의가 어떻게 순수를 독살했는지를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후진하는 내러티브는 순수하고 도덕적인 청년이 어떻게 회복할 수 없이 망가졌는가를 강조한다.
 
박하사탕 이미지, 자신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설경구

<박하사탕>의 스토리는 혁신적 구조와 다층적인 플롯, 여러 가지 의제를 제공하는 효율성에 힘입어 추진력을 얻는다. 관객은 장면이 어떻게 끝날 것인지를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상황이 영호를 어떻게 타락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창동은 한국 현대사의 요점들을 훑어가면서 공동체의 관습이 도덕성과 대립하는 방식, 개인의 행복과 성취를 추구하는 방식을 서사화한다.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은 것에 초점을 맞춘 이창동의 영화 세계에서 영호는 한국 사회가 잊고 싶은 모든 것, 존재하지만 보기를 두려워하는 것을 대표한다. 무구했던 삶에 가해진 악의적 영향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왔으나, 실패에 실망이 더해지고 절망에 낙담이 더해지면서 비극과 재앙은 잔해더미처럼 쌓였다. 시작점에서 끝나는 이 순환 구조는 대비를 분명하게 한다. 생애 초기 순진한 영호의 이미지와 대조되는 임박한 죽음은 스토리의 시작부터 이 남자를 지켜보던 관객들을 놀라게 하면서 평범한 세계의 경험을 초월적인 높이로 끌어올린다.

물론 이와 같은 이야기 서술법이 완전히 새로운 형식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박하사탕>의 서사구조는 영화의 테마를 존재론적인 단계로 밀어 올리고, 그것들을 움직이는 이미지의 시간성과 연결함으로써 창의적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에필로그는 프롤로그와 연결되어야만 했다. 마지막 장면은 청년 시절 영호의 사랑이 피어나는 고요하고 아름다움의 순간이다. 영호는 20년 후 목숨을 앗아갈 철로 아래에 눕는다. 얼굴을 하늘로 향하고 쏟아지는 햇살을 받아내는 영호의 머리 위로 기차 소리가 웅웅댄다. 에필로그에서도 기차는 변함없이 서사의 전진 움직임을 비유한다. 프롤로그의 얼어붙은 이미지와 반향하면서 재등장한 영호의 뺨 위에서는 관객들이 이미 목격한 그의 불행한 미래를 암시하듯이 두 줄기 눈물이 흐른다. 흡사 그는 자신의 미래를 예감하여 우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과거 -현재 - 미래의 시간성은 영화적인 시간 조작술의 마법에 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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