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영화관에 다니고 있다

by.듀나(영화평론가) 2020-10-27조회 4,612
수도권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올라갔을 때는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지난 몇 개월 동안 영화관 방문이 심하게 줄지는 않았다. 단지 마스크와 QR 코드 등록 절차에 익숙해졌고 영화가 아닌 다른 것들을 자주 보게 됐다. 

최근에 본 건 <공포체험 라디오 4DX>다. 돌비공포라디오라는 유튜브 채널의 동영상 두 개를 묶어서 4DX관에서 틀어준 것인데, 재미있는 실험이긴 했지만 효과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진행자가 괴담을 들려주는 형식이라면 4DX 효과는 잉여가 된다. 3D 음향에 맞추어 보다 정교하게 각색한 호러 라디오극을 완벽한 어둠 속에서 4DX 효과와 함께 틀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게 ‘영화와는 다른 호러 효과’에 더 잘 맞지 않았을까.
 

오페라는 원래 꾸준히 영화관에서 보았다. 요새는 챙겨보는 뮤지컬 공연의 비중이 늘었고 그 중 일부는 라이브 공연이다. 영화 끝에 중계되는 이동진의 영화해설은 코로나 이전에도 인기있는 컨텐츠였다. 나는 전혀 챙겨볼 생각이 없지만 강연들도 있다. 영화지만 이전에는 영화로 여겨지지 않았을 작품들도 있다. 특히 케이팝의 인기 이후로 공연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늘어왔다. 이들 중 일부는 스크린X로 라이브 공연의 생생함을 모방하려 한다. (성공했다고는 말 못하겠다.) 얼마 전에 사라진 코엑스 아티움의 아이돌 공연 영상물의 효과는 어땠었는지 모르겠다. 궁금했지만 귀찮았다.

언젠가부터 영화관은 필름으로 된 특정 길이의 영상물을 틀어주는 곳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있다. 본격적인 변화가 시작된 건 상영관이 디지털 환경을 갖추기 시작하면서부터다. 다양한 매체에 보다 융통성있게 대처할 수 있는 기계가 된 것이다. 컴퓨터 모니터 같은데, 더 크고 좋은 화면과 사운드를 제공해주는 공간이랄까. 몇 달 전 정성일 평론가가 홈시어터의 계급 차별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생각난다. 극장 공간에서는 이게 정반대가 된다. 이전엔 고급 홈시어터와 비싼 수입 블루레이를 갖고 있어야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했던 오페라와 같은 공연 영상 감상이 이제는 극장에서 이루어진다. 여전히 좀 비싸긴 한데, 굳이 이를 위해 공간과 기계와 소스를 사야할 필요는 없다. 이것만 해도 장점이 상당하다. 

집으로 돌아가보자. 내가 지난 몇 달 간 텔레비전과 컴퓨터, 태블릿으로 한 경험을 되집어 보면 세계가 그냥 뒤집힌 거 같다. 영화제들은 온라인 상영을 시작했다. 공연 동영상이 일시적으로나마 무료로 풀렸다. 다양한 형태의 온라인 콘서트와 무대 공연 중계가 이어진다. 케이팝 아이돌들이 온라인 팬미팅과 팬사인회를 하는 걸 옆에서 구경하다보면 절실한 업계는 길을 찾아내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가 없다. 이게 사이버펑크가 아니라면 뭐겠는가.

아주 만족스러운 경험은 아니다. 온라인 영화제와 콘서트는 기술적으로 늘 덜컹거린다. 이들 중 상당수는 텔레비전 감상을 막았는데, 참여자가 적고 다 보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감상자의 집중력이다. 내 생각엔 집에서의 감상을 막는 건 홈시어터 기기의 성능이나 크기가 아니라 집중력인 거 같다. 온라인 영화제에 참여한 사람들 상당수는 태블릿이나 PC로 영화를 틀어놓고 휴대폰을 훔쳐보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여담이지만 과연 사람들이 더 크고 좋은 기계들을 절대적으로 선호하는지도 이제는 잘 모르겠다. 몇천만원짜리 텔레비전을 옆에 두고 휴대폰으로 새 유튜브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을 것이다. 나로서는 열심히 이해하고 싶지 않은 현상이지만.

모두 이전부터 있었던 시도이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한 뒤로 이런 시도가 터져 나온 건 모두 기술적인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가 이전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이 시도들이 당장 없었던 것처럼 사라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나는 여전히 옛날 영화관을 좋아한다. 영화를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영조건이 좋은 영화관에서 마음이 맞는 좋은 관객들과 함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달하면 더 좋은 환경이 나올 수도 있지만 (예를 들어 지금은 텔레비전도 영화관보다 훨씬 좋은 블랙을 제공하고 있으니까. 지금의 영사조건에서 영화관은 마스킹이 필요하지만 텔레비전은 필요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게 최선이다. 이 당연한 기본은 한동안이라도 유지되어야 한다. 그리고 비록 다른 나라의 클래식 공연자 연주를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로 보고 듣는 경험이 매혹적이긴 하지만 공연예술가와 관객들이 있어야 할 장소는 여전히 무대이다. 나머지는 모두 타협이고 차선택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완벽한 순수성을 따지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다. 타협과 차선택이 필요한 영역은 어디에나 있고 그 중 어떤 사람들에겐 그게 유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이번에 아이돌 팬사인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 일부는 이전엔 이런 행사에 참여하는 게 지리적으로 불가능한 곳에 있었을 수도 있다. 원작을 읽으며 <에놀라 홈즈>를 극장에서 보는 날을 기다려왔지만 넷플릭스에서 전세계 동시에 개봉되는 이 영화를 텔레비전으로 보는 경험도 아주 나쁘지는 않다. 내 텔레비전 화면은 꽤 크고 사운드도 그 정도면 괜찮다. 여전히 중간중간 트위터를 하고 싶은 욕망이 찾아오지만 그거야 태블릿과 휴대폰을 잠시 치우면 그만이다. 영화관에서 집중할 수 있다면 집에서도 할 수 있다. 정말이다. 그럴 것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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