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코로나 시대의 영화제

by.김형석(평창국제평화영화제 프로그래머) 2020-09-18조회 3,745
처음엔 독감 수준의 전염병인 줄 알았지만, '코로나19'는 단순한 질병을 넘어 인류사의 새로운 국면을 만들 정도의 전지구적 위기가 되었다. 이제 삶의 모든 것은 코로나로 수렴되고 있으며, 예전엔 평범한 일상이라 여겼던 것들이 이젠 아득한 추억처럼 여겨진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주말이면 북적이는 극장에 가서 신작을 즐겼던 시간들은 다신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다. 극장가는 확진자 수에 따라 출렁이고, 개봉을 연기하는 영화들도 속출했다. 극장뿐만 아니라 영화 현장도 제대로 돌아가기 쉽지 않다. 산업 전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다.

영화제도 예외는 아니다. 2월부터 팬데믹 상황이 발생하자 많은 영화제들이 연기하거나 축소하거나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겸하며 진행되었다. 울주세계산악영화제(4월→10월), 전주국제영화제(4월→5월), 무주산골영화제(6월) 등이 그런 경우다. 인디다큐페스티벌(4월)과 서울국제사랑영화제(6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7월) 등은 좌석 수를 대폭 축소해야 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평창국제평화영화제(6월)는 다행히 원래 기간(6월18일~23일)에 오프라인으로 진행될 수 있었지만, 적잖은 부분 프로그램을 수정해야 했다.
 

여기서 “이런 상황에서도 무사히 영화제를 치렀다”는 식의 무용담을 늘어놓을 생각은 전혀 없다. 대신 올해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느꼈던 몇 가지 점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바로 '코로나 시대의 영화제'다. 대한민국은 100여 개의 영화제가 열리는 나라다. 1년 내내 전국의 수많은 지자체에서 크고 작은 영화 축제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이젠 영화제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일단 예산을 책임지는 지자체들이 영화제(를 포함한 지역 축제와 문화 행사)에 대해 재고할 것이며, 대중들의 인식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기에 영화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져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어쩌면 우린, 지난 20여 년 동안 관성처럼 반복했던 한국의 영화제 문화를 원점부터 다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그렇다면 코로나 시대의 영화제는 어떻게 변해야 할까? 첫 번째, 집중보다 확산을 선택해야 한다. 한국의 전형적인 영화제 문화는 일상의 영화적 경험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즉 한정된 기간 안에 평소보다 몇 배의 강도로 멀티플렉스에서 영화를 관람했다. 시공간의 집중이며, 이것은 감염의 최적 조건이다. 이제 한국의 영화제는 이런 방식을 벗어나야 한다. 예산 문제 등으로 기간을 늘리기 힘들다면,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만큼은 멀티플렉스를 벗어나 최대한 넓은 공간으로 확산되어 인구밀도를 낮춰야 한다. 쇼핑몰이나 백화점과 결합되어 있기 마련인 멀티플렉스는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간이다. 티켓팅 과정에서 관객의 신원을 파악한다 해도, 비관객에 의해 얼마든지 감염될 수 있다. 

그러려면 영화제에 대한 평가 기준이 바뀌어야 한다. 더 이상 관객이 운집한 풍경이나 객석이 꽉 찬 상영관으로 영화제의 성패를 가늠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 동원 관객, 상영편수, 경제 효과 같은 양적 가치로 영화제를 평가해 지자체에 어필했다면, 이젠 '질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 적당한 수의 관객들이 알찬 프로그램과 만나고, 그 콘텐츠는 온라인이나 순회 상영전 같은 방식으로 재생산되어야 한다. 영화제가 열리는 1주일 정도 되는 기간도 중요하지만, 그 기간을 통해 발굴되고 만들어진 콘텐츠가 1년 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환기되는 것도 중요하다. 즉 시공간의 확산이며, 이 과정에서 영화제의 적절한 규모와 예산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영화제가 공간적으로 확산되면 관객들이 영화제를 즐기는 방식을 변화시킬 것이다. 한국의 영화제는 도시 중심이며, 따라서 멀티플렉스 중심이다. 즉 극장가 중심의 영화제인 셈이며, 이것은 영화제가 열리는 그 도시의 공간성을 충분히 즐기지 못하게 한다. 물론 우린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남포동과 해운대의 정취를 접했고, 제천국제음악영화제를 통해 호반의 낭만을 경험했으며, 무주산골영화제에선 덕유산에서 심야에 야외상영으로 걸작들을 접하기도 했다. 앞으론 이런 특별한 경험들이 더욱 강조될 것이다. 멀티플렉스를 벗어나면, 영화제에 훨씬 더 다양한 공간적 가능성이 열리는 법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영화제가 열리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한 인상적 영화적 체험들을, 그리고 그 지역이 지닌 독특한 정서를 더욱 원하게 될 것이다. 마치 밀린 숙제를 하듯 영화제에 와서 하루에 서너 편씩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하루에 한두 편을 보더라도, 상영관과 상영관 사이를 걸으며 산책을 하고, 지역의 숨은 맛집을 찾아다니고, 상영관 인근의 핫 플레이스에 가보는 힐링의 시간이 영화 관람만큼 중요해질 것이다. 영화제는 프로그램에선 에디팅의 기능이 강화될 것이다. 코로나로 인해 전세계 영화 제작이 타격을 입고 있다. 신작 수급이 예전 같진 않을 수 있으며, 해외 게스트를 초청하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의 영화들을 잘 조합해 '구성의 묘'를 살린 섹션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며, 외국 감독과 직접 관객과의 대화를 하지 못하는 대신 그것을 보완할 만한 프로그램 이벤트가 필요하다. 이것은 좀 더 세심한 프로그래밍이 필요해진다는 걸 의미한다. 셀럽이나 신작으로 화제를 끄는 방식은 이젠 쉽지 않다. 그렇다면 온라인은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아직까진 회의적이다.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는 게 만만치 않고, 영화제가 온라인으로 플랫폼을 옮기게 되면 넷플릭스 같은 강력한 상대와 경쟁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바람이 있다면, 영화제에 나눔의 의미가 결합되길 바란다. 코로나 시대가 준 가장 큰 교훈은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휴머니즘적 유대감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감염의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엄연한 현실이다. 그런 현실 속에서, 코로나라는 재난의 시대에 상대적으로 더 취약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고려해야 한다. 그들은 예술영화관 종사자일 수 있고,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일 수 있으며, 일감이 줄어든 현장 영화인일 수 있고, 영화제 단기 스태프들일 수 있다. 더 확장하면, 영화제가 열리는 지역의 빈곤 계층일 수 있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일 수 있다. 영화제는 어떤 방식으로든, 비록 작은 도움밖엔 안 되더라도, 그들과 결합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영화제뿐만 아니라, 코로나 시대에 열리는 문화 행사들이 갖춰야 할 미덕이 아닌가 싶다. 축제는 이제 더 이상 축제가 아니다. 축제는 달라져야 한다. 영화를 매개로 일상을 회복하고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는 시간. 소박하게 꿈꿔 보는 '코로나 시대의 영화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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