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카메라도 멈추면 안 된다

by.강병진(영화저널리스트) 2020-05-22조회 6,251
영화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지난 2017년 개봉해 일본에서 크게 흥행한 작품이다. 어느 촬영 현장에 나타난 좀비가 스태프들을 뜯어먹는 잔혹한 장면들로 시작하지만 결국 이 영화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시키기 위한 사람들의 고단함을 보여주며 끝난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라는 제목에 영화의 슬픔과 의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배우가 연기를 못하더라도, 스태프들이 불평불만을 쏟아내거나 술에 취해 있더라도, 심지어 좀비가 나타나도 카메라는 멈추면 안 된다. 이 영화의 감독과 배우, 스태프는 지금 코로나 19 상황에서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13일, 일본의 산케이 신문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의 ‘코로나 19 버전’이 제작된다고 보도했다. 이미 지난 2019년 속편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스핀오프: 할리우드 대작전>이 개봉되기도 했지만, 코로나 19 버전은 그것과도 다른 이야기다. 이번에 제작되는 작품의 제목은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 원격 대작전!>(이하 <원격 대작전!>)이다. 코로나 19로 외출 금지와 자가격리를 강요받은 일본의 현재가 영화의 배경이다. 자가격리 중인 영화 프로듀서에게 영상 통화가 걸려온다. "이달 중으로 재연 드라마 한 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다. 하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스태프와 배우들도 모두 자가격리 중인 상태. 결국 프로듀서는 그들에게 전화를 걸어 원격으로 작품을 만들자고 제안한다. 1편의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는 스태프와 배우들이 단 한 번도 만나지 않고, 영상 통화 화면이나 배우가 직접 스마트폰으로 찍은 화면을 편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배우들은 집에 있는 옷으로 의상을 해결할 것이고, 자신의 대사를 하는 장면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에 반응하는 장면까지 스마트폰으로 찍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 촬영감독은 역시 자신의 집을 이용해 여러 인서트 샷을 찍어줄 것 같다. 영화적인 완성도를 기대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시도만으로도 흥미롭다. 
 
코로나 19 상황에서 전 세계의 영화산업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여러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했고, 칸 영화제마저 개최 여부가 불확실하다. 전 세계 영화인들은 먼저 영화팬을 위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은 것 같다. <겨울왕국>의 제작진과 목소리 배우는 각자 집에서 그림을 그리고 목소리를 더해 만든 단편 애니메이션 <앳 홈 위드 올라프>를 유튜브로 공개했다. <원더우먼>의 갤 가돗과 나탈리 포트먼을 비롯한 22명의 배우들은 존 레넌의 ‘이매진’을 부르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코로나 19가 보여준 사실은 영화가 자가격리 중인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지만,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 세계에서 영화 산업은 버티고 설 곳이 없다는 것이었다. 산업 자체가 무너질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을 느낀 사람들은 자구책을 찾아 나섰다. 미국의 라이언스게이트는 <라라랜드>와 <헝거게임> 등을 유튜브에서 무료로 공개하고, 관련 행사에서 성금을 모금해 영화 산업 근로자를 돕는다고 발표했다. 한국의 영화인들도 당장 수입이 없는 스태프들을 위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원격 대작전!>의 사례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이 작품은 자가격리 중인 시민들이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목적으로만 제작된 게 아니다. 

앞선 영화인들의 노력은 크게 두 가지의 바람에 의한 것이었다. 영화에 대한 영화팬들의 관심이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이 업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업계를 떠나면 안 된다. 그런데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은 영화 현장 또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완전 원격 제작으로 만들어지는 이번 작품이 누군가에게 새로운 일거리를 창출하는 하나의 팁이 됐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일거리가 없는 영화인들에게 생활을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새로운 일을 만드는 맥락에서 <원격 대작전!>을 기획한 것이다. <카메라를 멈추면 안 돼!>는 약 3천만원의 제작비로 만든 영화학교 워크숍 작품이었다. 열악한 조건에서도 영화적인 매력을 구현했던 제작진의 입장에서는 ‘코로나 19’가 위기가 아니라 아이디어가 됐을 것이다.  
 

 
우에다 신이치로 감독의 말처럼 <원격 대작전!>이 이후의 영화산업에 팁을 줄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작품을 기대할 수 있을까? <원격 대작전!>은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뒤덮은 상황에서 찾아낸 자구책이지만, 바이러스가 종식된 이후의 세계에서도 ‘원격’과 영화는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이를테면 지난 오스카 시상식에서 서로에 대한 존경을 나누었던 봉준호 감독과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각자의 공간에서 촬영한 영상과 대화를 공유하는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HBO가 제작하는 드라마판 <기생충>의 주인공으로 거론된 마크 러팔로와 송강호가 ZOOM을 이용해 나는 대화만으로도 훌륭한 콘텐츠가 될 것이다. 이전에는 쉽게 협업하지 못했던 전 세계 영화인들이 ‘원격’으로 만나고, 그렇게 나온 작품을 넷플릭스나 디즈니 플러스, HBO MAX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원격’으로 감상하는 세상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미 ‘코로나 19’는 세상의 많은 것을 바꾸고 있다. 불가피하게 시작된 ‘온라인 개학’은 언젠가는 찾아오게 될 ‘원격 교육’의 시험대가 되었고, ‘재택근무’ 또한 노동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가 되어가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최근 넷플릭스의 시가총액이 디즈니를 앞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안 그래도 변화의 시기에 있던 영화의 세상도 ‘코로나 19’로 인해 더 빨리 변하는 중이다. <원격 대작전!>은 그런 변화의 소용돌이에서도 카메라는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안심을 주는 사례다. 이 작품은 5월 초까지 완성된 후, 유튜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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