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것들

by.장영엽(씨네21 편집장) 2020-03-06조회 2226
2020년 겨울은 한국영화사에 공포의 계절로 기억될 듯하다. 지난해 12월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가 발생한 이후, 한국영화계는 전례 없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다.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은 곳은 극장이다. 2월 마지막주 주말 관객은 전국 70만명 이하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하더니, 2월24일부터는 일일 관객이 7만명대로 내려앉으며 사상 최저 관객 기록을 날마다 새로 쓰고 있다

2, 3월 개봉을 예정했던 영화들은 황급히 일정을 변경하고 있다. <사냥의 시간>, <기생충: 흑백판>, <결백>, <이장>, <밥정>, <후쿠오카> 등의 영화들이 개봉을 연기하고 계획했던 행사를 취소했으며, 3월 극장가에서 관객을 만날 예정이었던 영화들도 개봉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긴급 회의를 통해 배급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한편 한국영상자료원과 같은 공공 기관부터 아트하우스 모모, KT & G 상상마당 시네마와 같은 예술영화관까지 멀티플렉스 이외의 주요 영화 상영 시설들은 임시 휴관을 결정했다. 영화 주간지의 상황은 어떻냐고? 얼마 전에는 표지 촬영과 취재를 모두 마친 영화의 개봉이 마감을 앞두고 갑작스럽게 연기되는 바람에 ‘표지 펑크’라는 초유의 위기를 가까스로 모면했다. 설상가상으로 공식적인 외부 스케줄을 취소하는 인터뷰이들이 늘어나며 하루에도 몇 번씩 편집안을 변동하는 애환을 겪고 있다. 비공식적으로 듣게 되는 영화사들의 상황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이 심각하다. 그동안 위기는 다양한 모습으로 한국영화산업을 위협했지만, 체감상 최근 10년을 통틀어 이보다 더 엄혹하게 느껴졌던 시기가 있었나 싶다. 코로나19 이후, 충무로에서 ‘위기’라는 단어가 가지는 무게감은 결코 예전 같지 않을 거라 짐작한다. 
 
<베테랑>

혹자는 물을 것이다. 지난 2015년 한국을 강타했던 메르스 사태 당시 한국영화계가 처한 국면과 지금의 상황은 무엇이, 어떻게 다르냐고. 코로나19와 마찬가지로 급성 호흡기 질병인 메르스가 확산되던 5년 전 5월에도 극장을 찾는 관객들이 줄어들고 영화 쇼케이스, 제작보고회 등의 취소 및 개봉 연기가 이뤄졌었다. 하지만 감염병 위기 경보가 ‘주의’ 수준이었던 메르스 사태 당시의 극장가는 한달 이내로 관객수를 회복했고, 같은 해 여름 시장에서는 <암살>(최동훈, 2015)과 <베테랑>(류승완, 2014)이라는 두 편의 천만 영화가 탄생했다. 경보 단계가 최고 수위인 ‘심각’으로 격상되었으며, 확진자가 천명을 넘어 날마다 급증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5년 전처럼 신속한 산업의 회복을 낙관하기 어렵다. 문제는 한국 영화산업의 전체 매출에서 극장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76%(영화진흥위원회 2019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 자료 기준)에 달한다는 점이다. 이는 다시 말해 극장이 흔들리면 영화산업 전체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올해 1,2월 대한민국을 강타한 코로나19는 설 연휴 이후에도 박스오피스에서 흥행을 이어갔어야 할 설 개봉작들의 기세를 꺾었고, 위험을 감수하고 2월 개봉을 택한 한국영화 기대작들을 초토화시켰으며, 수많은 영화의 개봉을 다른 달로 미루게 함으로써 전열을 가다듬고 있던 이후 개봉 예정작의 배급 스케줄을 꼬이게 만들었다. 이처럼 다수의 한국영화가 극장에서 기대치를 훨씬 밑도는 흥행 성적을 받았거나 더욱 치열한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조성된다면, 향후 제작에 들어갈 한국영화가 마주하게 될 투자 환경은 더욱 암울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었을 경우 2021년 선보일 한국영화 라인업의 제작편수에 큰 변화가 예상되는 이유다. 
 
<암살>

디지털 온라인 시장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도중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도 향후 영화산업 지형도의 큰 변수가 될 수 있을 듯하다. 2019년 인터넷 VOD 시장 매출은 총 930억원으로, 이는 전년 대비 27.7%가 증가한 수치이며 OTT 서비스의 매출은 1년 새 32.7%가 증가했다. 영상 콘텐츠를 소비하고 관람하는 문화의 무게 중심이 서서히 온라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의 발걸음을 강제로 돌려세우는 전염병의 확산은 쉽게 바뀌지 않는 관객들의 관람 패턴에 영향을 미칠 일종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단으로서의 관람 경험을 유예하길 권유받고 온라인 플랫폼의 편리한 접근성을 누리는 데 익숙해진다면, 모든 상황이 정리된 뒤에도 관객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오프라인 극장을 찾을 것인가? 코로나19가 국내 관객들의 영화 관람 패턴에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사뭇 걱정이 되면서도 궁금해진다. 무엇보다 지금 상황에서 중요한 건 전국을 강타한 전염병이 한국영화산업 고유의 어떤 특성을 영원히 훼손할 만큼 길어지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이다. 행운과 연대와 결연한 의지가 두루 필요한 시기를, 지금의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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