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호러19

by.김봉석(부천판타스틱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영화평론가) 2019-10-04조회 2,640
<변신>
 
올 여름에는 <변신>(김홍선, 2019)과 <암전>(김진원, 2018), 한국 공포영화 2편이 개봉했다. 8월 21일 개봉한 <변신>은 29일까지 100만명이 넘는 관객이 들며 좋은 성적을 냈고, 8월 15일 개봉한 <암전>은 10만명의 관객이 아쉽기는 하지만 정통 공포영화로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매년 여름마다 공포영화 2, 3편이 개봉하고 적어도 한 편 정도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호시절이 돌아오는 것일까? 아직 판단은 힘들지만 공포영화가 이전보다 대중의 관심을 받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암전>
 
최근 몇 년간 한국은 물론 해외의 공포영화들이 좋은 흥행 성적을 거두고 있었다. 시작은 2013년 제임스 완의 <컨저링>이었다. 이후 애너벨 시리즈와 <더 넌> 등으로 확장된 컨저링 유니버스의 출발인 <컨저링>은 한국에서 226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보통 5백만은 넘어야 히트작이라고 보겠지만 공포영화의 경우는 다르다. 한국에서 공포영화는 한국이나 해외 작품 가리지 않고 마이너 장르다. 

한때 <여고괴담>(박기형, 1998), <장화, 홍련>(김지운, 2003) 등의 히트작이 나오기는 했지만 지속된 흐름으로 정착되지는 못했다. 4, 5편의 공포영화가 경쟁하던 여름도 있었지만 시류에 맞춰 조잡하게 만들어낸 작품은 관객의 실망으로 이어졌다. 공포영화에 관심이 없고, 좋아하지도 않는 프로듀서와 감독이 저예산으로 관객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급조된 작품이 많았다. 공포영화의 ‘스릴’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정교한 테크닉이 필요할 뿐 아니라 ‘공포’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 무서운 분장과 깜짝 효과만으로는 공포영화를 만들 수 없다.
 

<컨저링>이 성공한 후 2014년 <애나벨>(존 R. 레오네티)은 92만명, 2016년 <컨저링 2>(제임스 완, 2016)는 192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호러영화의 전통적인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컨저링 유니버스’는 젊은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장재현 감독의 <검은 사제들>이 544만명의 대성공을 거두었다. 사제복을 입은 미남이라는 컨셉을 앞세운 트렌디한 영화였고, 공포의 문법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였다. 장르적 완성도가 높았다. 

2017년에는 미국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조던 필 감독의 <겟 아웃>이 213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해외에서 화제를 끌기는 했지만, 무명 감독 연출에 흑인들이 주연을 맡은 <겟 아웃>의 성공은 놀라운 일이었다. <애나벨:인형의 주인>(데이비드 F. 샌드버그>도 193만명의 관객이 들었다. 전작의 2배가 넘는 흥행이었다. 미국에서 대성공을 거둔, 스티븐 킹 원작의 <그것>(앤드레스 무시에티)이 88만명이라는 아쉬운 성적이기는 했지만, 한국에서도 화제성을 가진 공포영화라면 대중성이 있음을 증명했다.

2018년에는 다양한 공포영화가 선보였다. 실화 괴담을 소재로 한 <곤지암>(정범식)을 267만명의 관객이 봤고, 컨저링 유니버스에 속하는 <더 넌>이 101만명이었다. 공포만이 아니라 예술영화의 범주로도 가능한 <유전>(아리 에스터)은 17만명이 들었다. 페이크 다큐 형식으로, 실재했던 곤지암의 폐건물을 찾아가는 내용인 <곤지암>은 한국 공포영화의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특별한 스타나 화제 없이도 관객들은 흥미로운 공포영화를 선택한다. 또한 공포 장르는 중독성이 높아 한 번 좋아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장르를 소비한다.
 
<사바하>
 
올해는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의 신작 <사바하>가 239만명, <겟 아웃>의 조던 필 감독의 신작 <어스>가 147만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애나벨 시리즈 3번째 영화인 <애나벨 집으로>(게리 도버먼)도 48만명이 들었다. 모두 관객은 전작보다 줄었지만, 전작보다 약한 화제와 임팩트에도 이 정도의 거둔 것은 평가할 수 있다. 다음 작품의 완성도가 이 감독들의 미래를 결정지을 것이다. 

공포영화는 메이저에서 성공을 거두기가 쉽지 않은 장르다. 드라큘라와 프랑켄슈타인, 늑대인간 등이 등장한 유니버설 호러의 성공 후에도 호러는 서브컬처의 영역에 속했고, B급영화로 주로 만들어졌다. 호러가 메이저로 복귀한 것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엑소시스트>(1973)가 대성공을 거둔 덕이었다. 그리고 1980년대 <할로윈>, <13일의 금요일>, <나이트메어> 등 10대 관객이 좋아하는 슬래셔 호러가 인기를 끌었다. 90년대 들어 주춤하던 할리우드 호러는 슬래셔 호러를 변주한 웨스 크레이븐의 <스크림>(1996), <>(나카다 히데오, 1998)과 <주온>(시미즈 다카시, 2002)이 주도한 J호러가 할리우드에서 리메이크되면서 잠깐 주목을 받았다.

최근 공포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공포영화가 선전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흐름의 영향이기도 하다. 할리우드는 물론 동남아에서도 요즘 공포영화는 약진하고 있다. 제임스 완 감독의 컨저링 유니버스가 대성공을 거두었고, <겟 아웃>과 <유전> 등 예술적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는 호러영화가 선전했다. 케이블 채널과 넷플릭스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는 9시즌까지 나온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를 비롯하여 넷플릭스의 <힐하우스의 유령>, 스티븐 킹 원작의 <제럴드의 게임> 등 저예산의 공포영화와 드라마가 탄탄한 인기를 과시한다.

또한 동남아인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 대만 등에서 공포영화가 그 해 흥행 1위나 높은 순위에 오르는 등 인기를 끌고 있다. 전통적 호러 강국인 태국에 이어 <사탄의 숭배자>와 <드레드 아웃>의 인도네시아, <마신자> 시리즈와 <카르마>의 대만 그리고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에서도 활발하게 호러영화가 만들어지고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다. 저예산이 가능하면서 확실한 마니아를 거느리는 호러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함께 21세기 들어 제작편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장르이며 인기 장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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