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는 여정

by.전종혁(영화 칼럼니스트) 2019-06-27조회 7,150
지난 5월, <기생충>(2019)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한 봉준호 감독은 수상 소감에서 “한국영화 100주년에 주는 선물”이라고 말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발언이었다. 그 의도가 한국영화(사)를 알리기 위함이든 아니든, 봉 감독 덕분에 대중은 한국영화가 100주년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잘 알려진 것처럼 그는 “<하녀>(김기영, 1960)를 보면서 계단의 이미지와 기운을 얻었다”고 밝힘으로써 한국 고전영화에 많은 애정과 깊은 의미를 부여했다. 사실 이 칼럼을 쓰게 된 것 역시 모두 봉 감독의 발언 덕분이다. 순전히 그의 주장에 힘을 얻었다. 많은 이들이 <기생충>이 차려 놓은 밥상에 숟가락을 놓고 있으니, 필자 역시 숟가락을 딱 한 번만 올리겠다. (감독님, 리스펙트!)
 
<하녀>
 
<기생충>의 수상과 함께 한국영화 성장이나 국내 관객 ‘2억명 시대’ 등이 언론에서 많이 다뤄졌지만, 정작 우리가 ‘한국영화 100주년’을 어떻게 맞이할 지는 이야기하고 있지 못하다. 영화진흥위원회와 한국영화100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이미 4월 한국영화 100년 기념사업을 구체적으로 발표한 바 있다. 100주년 옴니버스 영화, 다큐멘터리 제작, 단행본 출판(한국영화 100년 100경(가제)) 및 한국영화의 디지털 복원화 등이 주요 골자다. 단성사에서 1919년 10월 27일 상영된 <의리적 구토>(김도산)를 한국영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으니, 10월이 다가오면 본격적으로 100주년 관련한 축제의 장이 열릴 것이다. 하지만 과연 100주년 행사가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을까? 혹은 이 축제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고 새롭게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기우(!)에 사로잡힌다.
 

<아리랑>
 
최초의 한국영화나 전설의 영화 <아리랑>(나운규, 1926)을 볼 수 없고, 그 영화들을 상영한 단성사 역시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개인적으로 장훈 감독의 <택시운전사>(2017)를 봤을 때 초반부부터 마음이 아팠다. 지난 세기를 같이 한 을지로의 국도극장이 현실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라진 극장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더욱이 한때 영화의 메카로 불리던 충무로는 이미 노쇠해진 지 오래다. 휴대전화로 간편하게 예매를 할 수 없던 시절,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를 보기 위해 아침부터 단성사에 줄을 서는 놀라운 광경은 이제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어떤 영화를 특정 상영관에서 봤다는 식의 기억이나 그 극장에서만의 느낌이나 정서(심지어 <기생충>이 일깨운 냄새까지) 등이 사라졌다. 모든 것이 획일화된 멀티플렉스의 시대에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다소 사적인 체험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100년이라는 굳건한 영화의 역사를 현실의 대기 속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불안감을 숨길 수 없다.
 
<서편제>
 
봉 감독이 이른바 ‘계단 시네마’라고 얘기한 대로, 가족이 중심이 된 한국영화 안에는 계단이 등장하는 영화가 많았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이만희 감독의 <마의 계단>(1964)부터 손재곤 감독의 <이층의 악당>(2010)과 <기생충>까지. 개인적으로 <이층의 악당>을 좋아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이 영화가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의 유머러스한 패러디이자 중요 공간인 계단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층의 악당>이나 <기생충>을 본다는 것은 한국영화의 역사를 자연스럽게 떠올릴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가 하나 있다. 오래 전에 1960년대 한국영화를 본 적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을 굳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고 살아간 것이다. 물론 아주 쉽게 말하면, 그 영화들에 대한 기억, 추억, 향수가 우리에게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지극히 당연한 주장이지만, 한국영화 100주년을 맞이하는 첫 단추는 한국영화사를 이해하고, 한국 고전영화를 보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만약 내 안에 한국영화의 옛 숨결이 살아 있다면 다시 일깨워야 한다).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굳이 한국영화를 방화(邦畵)라고 부르며 상대적으로 폄하하던 시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스스로 시네필이라고 자처하는 젊은 영화광조차 한국영화의 역사(1950, 60년대 전성기)에 대해 잘 알고 있지 못하다. 한국영화의 클래식이나 정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그런 영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대중이 옛 한국영화에 대해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6월에는 서울극장에서 ‘한국영화100주년 특별전, 합동영화사와 함께’,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세계 속의 한국영화, 한국 안의 세계영화’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었다. 성과를 떠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고전영화 프로그램들이 일반 대중과의 접점을 찾는 것은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오늘날 한국 고전영화를 보기 위해선 누구나 한 번쯤 한국영상자료원(여기서 다양한 세대가 고전영화를 함께 경험하는 것은 지극히 소중하다)과 사랑에 빠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우리는 한국영화에 대한 기억, 경험 등을 너무 빨리 잊은(혹은 잃어버린) 지도 모른다. 100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영화산업과 영화인들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한국영화가 항상 대중과 함께 있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영화를 본다는 것은, 대중이 함께 그 시대의 기억을 공유하는 과정일 수밖에 없다. 하루아침에 문화 이식이나 학습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리에게 단성사도, 국도극장도 없지만, 영화(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 고전영화의 디지털 복원이 무척 시급한 상황이고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 역시 관객이 고전영화를 즐기고 더 많은 영화를 요구하는 지지가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100년을 맞이한 한국영화의 미래를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고전영화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지금의 세대에게 선물하는 것이다. 그것이 100세를 맞이한 한국영화를 위한 화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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