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사랑받는 영화, 조롱당하는 영화

by.강병진(영화저널리스트, 허프포스트코리아 에디터) 2019-05-21조회 6,351
<어벤져스:엔드게임>

영화잡지에서 온라인 매체로 넘어와 일하는 동안 독자 반응이 신기했던 박스오피스 기사가 있었다. 2014년 개봉한 <비긴 어게인>(존 카니, 2013)이 200만명을 넘겼다는 기사였다. 역시 다른 매체들처럼 수치를 나열했을 뿐인 이 기사의 페이스북 피드에는 2,000개가 넘는 ‘좋아요’가 달렸다. 분명 영화를 보았을 그들은 영화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의 아이디를 끌어와 꼭 보라며 추천했고, 댄과 그레타의 키스씬이 없어서 좋았다는 등의 감상평을 쏟아내는가 하면, 이 영화의 더 많은 흥행을 응원했다. 

신기하기보다는 이상한 사례도 있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안소니 루소, 조 루소, 2019)이 개봉했고, 압도적인 스크린 수를 기록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개봉 첫날 2,760개의 스크린을 점유했고, 4일 째에는 2,835개의 스크린 수를 기록했으며 개봉 10일째에도 2,490개의 스크린을 차지했다. 당연히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비판이 뒤따랐다. 하지만 <어벤져스:엔드게임> 이전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일으켰던 <군함도>(류승완, 2017)와는 양상이 달랐다. <군함도>의 경우에는 스크린 독과점을 언급하지 않는 기사에도 스크린 독과점을 비판하며 영화를 비난하는 댓글이 많았다. 하지만 <어벤져스:엔드게임> 관련 기사에는 “3000만큼 사랑해”라는 댓글이 이어졌다. <군함도>는 개봉 첫날에만 2,027개의 스크린을 점유한 후 10일 째에는 1,018개로 떨어졌었는데 말이다. 
 
<비긴 어게인>

<비긴 어게인>의 사례에서 체감한 후, <어벤져스:엔드게임>과 <군함도>의 비교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었다. 이건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가 없다. 관객들은 <비긴 어게인>을 사랑했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을 사랑했다. 하지만 <군함도>는 싫어했고, 조롱했다. 그 이후 <리얼>(이사랑, 2017)이 조롱당하더니, <리얼> 때문에 <염력>(연상호, 2017)과 <인랑>(김지운, 2018)이 ‘리얼급’이란 말로 조롱당했고, 최근에는 <자전차왕 엄복동>(김유성, 2018)이 조롱당하는 중이다. 그런데 조롱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까? 조롱은 사실 혐오에 따른 행동이다. 사랑받는 영화인가? 혐오 당하는 영화인가? 흥행영화인가, 아닌가보다 더 가혹한 분류다. 

<리얼> 이전에 조롱당하는 영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클레멘타인>(김두영, 2004)이나, <맨데이트:신이 주신 임무>(박희준, 2008) 같은 영화들이 '망작'으로 꼽혀왔지만, 적어도 이 영화들은 그때의 놀림 거리였을 뿐, 두고 두고 조롱당하지 않았다. 하지만 <리얼> 이후 관객들은 사랑하지 않는 영화의 기준을 <리얼>로 삼았다. 이후 여러 영화들이 '리얼급'이란 단어로 매도당했다. <리얼>이 조롱의 기준이라면, <자전차왕 엄복동>은 조롱의 숫자가 된 경우다. 총 관객 17만명이 들었고, 이 수치가 하필 1,700만명의 관객 동원을 기록한 <명량>의 기록의 100분의 1에 해당하면서 1UBD이란 가상의 놀림 수치가 나왔다. 이에 따르면, <어벤져스:엔드게임>은 개봉 첫날에만 8UBD를 기록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다른 영화들의 흥행추세에 동원되면서 영원히 조롱당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포털사이트와 소셜미디어의 이용자들이 영화를 대하는 태도가 사랑과 조롱으로 엇갈리는 이상 현실을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 영화를 만들고 마케팅하는 입장에서는 흥행을 위해서라도 일단 작품을 ‘사랑받는 영화’로 포지셔닝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할 수 밖에. 조롱 당하는 영화가 되면 흥행성적도 곤두박칠 치기 때문이다. 최근 조롱의 대상이 된 영화들의 사례를 보면 일단 겸손해야 할 것 같다. 슈퍼스타 캐스팅과 막대한 제작비를 굳이 애써서 티내면 사랑받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비호감이기 때문이다. 개봉 전 홍보를 위해 배우들이 여러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사랑받기 좋은 전략은 아니다. <자전차왕 엄복동>도 제작자와 주연배우가 각종 예능에 출연하며 홍보를 하지 않았다면 영화의 완성도가 떨어져도 굳이 그렇게 조롱받지는 않았을 것이다. 규모를 과시했지만, 정작 관객에게 큰 매력이 없다면 더 위험하다. 과거에는 기대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고 끝났지만, 이제는 조롱당한다. 이렇게 볼 때 최근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극한직업>이다. 영화 자체의 매력과 함께 낮은 제작비로도 이렇게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미담'이 되어 더 사랑받고, 수원왕갈비통닭까지 사랑받게 만들었다. 

혹시라도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어벤져스:엔드게임>을 비롯한 마블 영화의 사례를 참조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어벤져스:엔드게임>은 스크린 수도 제일 많이 차지했고, 장충체육관을 통째로 빌려서 대규모 이벤트까지 열었는데도 비호감이 되지 않은 사례다. 마블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은 11년에 걸쳐 쌓인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저 ‘강림’해 주시면 감사한 영화다. 그래서 ‘사랑’이라고 한 거다. 사랑은 편파적이고 배타적이며 맹목적이다. 만드는 이들의 마음과 달리 관객에게는 모든 영화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사랑이란 게 원래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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