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어영화와 게토화도 되지 못할 만큼의 적은 관객

by.이송희일(영화감독) 2015-01-26조회 7,026
퀴어영화와 게토화도 되지 못할 만큼의 적은 관객

퀴어영화를 들고, 10여 년 여러 나라를 찾았다. 퀴어영화를 보러 극장을 온 관객의 성정체성과 성비를 보면, 그 나라 LGBT 커뮤니티의 가시화 정도와 인권 상황을 대충 짐작할 수 있다. 일단 아시아 몇 개 국만 둘러보면,

홍콩은 극장 관객의 90%가 LGBT다. 게이 영화일 경우, 남성 관객이 단연 압도적으로 많다. 대만 역시 극장 관객의 90% 정도가 LGBT들. 내 첫 번째 장편영화 <후회하지 않아>가 대만에서 개봉해 당시 박스오피스 선두에 섰을 만큼 흥행했던 데에는 대만 LGBT가 극장으로 몰려온 힘이 컸다. 

일본의 경우, 70%가 LGBT, 그리고 30% 정도가 이성애자 여성들이다. 흥미로운 건 이들의 나이가 대부분 중년 이상이라는 점. 마치 ‘이미지포럼’ 같은 독립영화 극장을 찾는 관객이 거의 대부분 흰머리 희끗한 노장년층인 것처럼, 전공투 세대의 쓸쓸한 궤적들이 퀴어영화를 상영하는 극장 풍경에도 스며있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7년 전만 해도 90%가 이성애자 여성 관객. 요즘은 70 ~ 60% 정도가 여성 관객이고, 나머지가 LGBT들이다. 7년 전, 극장에 오는 게 두려워 심지어는 선글라스를 쓰고 내 영화를 보러왔던 게이 관객들이 이제는 어느덧 극장 안에서 커밍아웃하는 어떤 시대적 변화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10여 년 동안 느낀 것은 한국의 퀴어영화 시장이 점점 위태로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애자 여성 관객들이 점점 퀴어영화에서 떠나고 있는 반면, 그 빈 공백을 LGBT 관객층이 채우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그 공백은 점점 커질 가능성이 크다. 국내 퀴어영화뿐만 아니라, 두루 평단의 지지를 받은 해외 퀴어영화들도 근 몇 년간 지속적으로 외면받아야 했다. 

한국의 이성애자 관객들은 더 이상 퀴어영화를 보러 극장에 찾아오지 않는다. 대신 동성애 코드가 은밀히 차용된 상업영화들, 특히 브로맨스 영화들에 열광한다. 퀴어영화와 이 영화들의 차이는 주인공이 영화 속에서 ‘나는 동성애자다’라고 발화하는 순간이 있냐, 없냐의 차이다. 이성애자 관객들은 하위주체의 목소리가 명확히 들리는 영화를 이제 불편해한다. 모에 요소와 덕질 재료가 가득한 동아시아 ‘형제애’의 전당 안에 게이 목소리가 들리는 건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어쩌면 80년대부터 본격화되어 30년 정도의 역사를 쌓아올렸던 장르로서의 ‘퀴어영화’가 한계에 봉착했는지도 모르겠다. 칸 영화제가 그랑프리를 퀴어영화에 안긴 순간은 영예의 정점이 아니라 그 마지막 여정의 기록인 것처럼 느껴진다. 흡사 동성결혼 열풍에 휩싸인 유럽 제국에 타전한 결혼식 화환인 것처럼. 

세상과의 ‘긴장과 불화’ 속에서 태동했던 퀴어영화는 30년이 흐른 뒤, 이렇게 어떤 전환을 요청받고 있다. 마지막 남은 불모지인 중국과 아프리카, 그리고 이슬람 지역에서 만들어져 그만그만한 오리엔탈리즘으로 소비될 미래의 퀴어영화들을 제외한다면, 영화제들과 아트하우스 관객들 사이에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거나, 유럽에서처럼 이성애자 관객들을 호객하기 위해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상업영화로 변신하거나, 미국에서처럼 극악한 저예산으로 제작되어 게토화된 극장에서 LGBT 관객들의 팝콘을 견뎌내는 숙명 사이에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해외의 어느 퀴어영화 배급사가 나한테 했던 충고도 그랬다. ‘진지 빠는’ 퀴어영화들은 더 이상 팔리지 않으니, 키치한 해피엔딩의 달달한 로코물로 만들어 보라고. 

아마도 이 고민 때문에 당분간, 오랫동안 퀴어영화를 만들지 않겠다고 결정했는지도 모르겠다. 두고두고 고민을 발효시키기 위해서. 대신, 이따금 조우하는 게이 후배 감독들, 나보다 훨씬 더 건강한 눈빛과 미학적 투쟁심을 갖고 있는 그 감독들과 만날 때마다 연애편지처럼 그 고민들을 풀어놓는다. 게토화도 되지 못할 만큼의 그 적은 관객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물론 난 그들이 만들 미래의 영화들이 이 고민의 해답의 일부분을 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어쨌든 영화는 계속 만들어질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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