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생기, 불의 광기: 정진우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걸작의 재발견

by.박혜은(영화전문에디터, 전 맥스무비 편집장) 2019-01-10조회 86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진우 감독은 물의 생기와 불의 광기, 자연의 평온과 마을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며 세계의 충돌을 시각화한다. 
또 하나,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가 21세기 영화에서도 흔치 않은 강렬한 여성 서사라는 점은 이 영화를 ‘재발견’해야 할 중요한 이유다.


이른바 ‘향토’ ‘토속’ 에로티시즘이라는 포장지에 둘둘 말려 있는 1980년대 문예영화 중엔 다시 들춰 곱씹을수록 새로운 행간이 읽히는 작품이 많다. 정진우 감독의 1981년 작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도 그중 한 편이다. 호쾌한 필체의 붉은 제목, 둥근 어깨를 드러낸 정윤희의 상반신, 우뚝한 몸의 이대근이 남긴 에로틱한 잔상이 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의 뜨거움은 원시적 자연과 강압적 시대, 욕망과 권력, 지배와 피지배가 충돌할 때 발생하는 에너지에 있다. 정진우 감독은 정비석 작가의 단편소설 「성황당」(1937)이 담고 있던 일렁이는 기운을 이대근·정윤희라는 걸출한 배우의 육체로 극대화한다. 

산에서 숯을 구워 노모를 봉양하고 살던 숯쟁이 청년 돌이(이대근)는 사당패가 버리고 간 열두 살 소녀 순이를 거둬 키운다. 몇 해가 흐른 뒤 오누이처럼 지내던 돌이와 순이(정윤희)는 부부의 연을 맺고 깊은 산중 그들만의 보금자리에서 평화로운 시절을 누린다. 하지만 돌이를 따라 마을 장터에 나간 순이를 보고 흑심을 품은 산림주사의 계략으로 돌이가 ‘산림법 위반’으로 잡혀가면서 파국이 시작된다. 

파국의 불씨는 시대의 충돌에서 피어난다. 영화 속 ‘김 상’ ‘순사’라는 호칭에서 드러나듯, 돌이와 순이가 살아가던 일제강점기는 당시 민초들이 부지불식간에 맞닥뜨린 새로운 수탈의 시기였다. 반상(班常)의 봉건적 계급사회가 무너진 자리에 자본과 제국주의라는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고, ‘개화(開化)’라는 이름으로 삶의 방식이 급격하게 재편되기 시작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는 돌이와 김 주사의 갈등으로 구구절절한 설명 없이 시대의 충돌을 직관적으로 각인시킨다. 

산에서 나무를 베어 숯을 구워 파는 돌이에게 자연은 인간이 기대어 살아갈 ‘품’이다. 자연의 순리를 배우고 따르면 필요한 만큼 입고 먹을 수 있는 걸 알기에 더 가지려 애쓰지 않는다. 반면 일제에 편승한 김 주사에게 자연은 권력과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소유물’이다. 순이는 돌이의 자연적 세계와 김 주사의 수탈적 세계의 경계에 선 인물이다. 그녀는 한여름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는 자유만큼이나 향긋한 분 냄새와 반짝이는 옥가락지를 강렬히 욕망한다. 일면 세상 물정 모르는 순이가 두 세계를 상징하는 남성들의 부속물로 비칠 수도 있었지만, 배우 정윤희는 그 가능성을 원천 봉쇄한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가 21세기 영화에서도 흔치 않은 강렬한 여성 서사라는 점은 이 영화를 ‘재발견’해야 할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순이는 이 세계에서 가장 밑바닥 존재다. 어리고 여성인 데다가 심지어 사당패인 어머니에게 버림받았다. 하지만 그녀는 한 번도 자기 삶의 방향키를 남의 손에 넘긴 적이 없다. 살길을 찾아 돌이의 집을 택했고, 돌이와의 혼인도 그녀가 승낙했다. 누구에게나 묻고 싶은 것을 묻고, 원하는 것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는다. 향긋한 분 냄새로 유혹하는 김 주사를 끝내 거부하며, 새로운 보호자를 자처한 칠성을 따라나섰다가도 결연히 자신의 삶터로 돌아와 홀로 삶을 일군다. 그녀는 순응하는 대신 선택하는 인물이다. 끝내 폭력에 굴복당할 위기에 처하자 순이는 자신을 빼앗기는 대신 상대의 모든 것을 빼앗아버리는 길을 택한다. 비록 자연의 시대는 수탈의 시대에 패배하겠지만, 순이는 자연의 세계에 남기를 선택했다. 이 영화에서 순이는 시대에 굴복하지 않은 유일한 인간이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모든 이야기를 마친 영화는 처음과 마지막에 같은 산을 빙 둘러 보여주지만, 그 산은 더는 같은 산이 아니다. 순이의 옥가락지를 쥐고 비척거리며 멀어져가는 돌이 뒤에 우두커니 남겨진 것은 신성한 성황당이 아니라 쓸모없는 돌무더기에 불과하다. 이제 인간이 자연에 기대어 생기와 평온을 누리던 시대는 끝이 났다. 영화는 자연에서 쫓겨나는 인간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본다. 그 처연함이 긴 여운을 남긴다. 

이 작품으로 정윤희는 생애 첫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트로피를 열 개쯤 안겨도 부족할 만한 열연이다. 정진우 감독은 물의 생기와 불의 광기, 자연의 평온과 마을의 욕망을 효과적으로 대비시키며 세계의 충돌을 시각화한다. 흥미로운 점은 돌이와 김 주사, 칠성은 그 중 한 세계에서만 존재감을 갖지만, 순이는 두 세계 모두를 장악하고 주도한다. 만약 정윤희가 아니었다면 가능했을까. 다람쥐처럼 산비탈을 뛰어다니는 천진한 몸태와 이글거리는 숯가마 앞에서 적을 안고 깍지를 낄 때 그 형언하기 힘든 광기 어린 얼굴을 대체할 누군가가 감히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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