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할 만한 한국 독립 극영화 제작 그룹: 봄내필름 & 시트콤협동조합 특색 있는 독립영화 제작사 둘러보기

by.정유미(영화저널리스트) 2019-01-09조회 952
초행
봄내필름의 두번째 작품인 김대환 감독의 <초행>

고향에서 친구끼리 속닥속닥 영화 만드는 "봄내필름"

강원도 춘천 애막골 비디오 가게에서 처음 만난 두 중학생 소년은 영화와 미술이라는 공통분모로 친해졌다. 미술학원을 같이 다니며 대학(홍익대 디자인 영상학부), 대학원(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에 함께 진학했고 영화감독이 되었다. 서울 배경 일색인 한국영화에서 강원도를 배경으로 자신들의 경험을 녹여낸 각자의 첫 장편영화는 국내외 영화제 수상으로 이어지며 주목받았다. <철원기행>의 김대환, <새출발>의 장우진 감독이 그들이다. 

두 감독은 “저예산·소규모 제작 시스템이라는 새로운 디지털 영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매년 꾸준히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2016년 고향 춘천에 영화사 봄내필름을 설립했다. 첫 작품 <춘천, 춘천>은 장우진 감독이 각본·연출·촬영·편집·음향 등을 맡고 김대환 감독이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춘천을 벗어나고픈 청년과 일상을 벗어나 춘천으로 떠나온 중년 남녀의 사연을 데칼코마니처럼 풀어낸 영화는 21회 부산국제영화제 비전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41회 홍콩국제영화제 등 세계 유수 영화제에 초청받았고 2018년 9월 인디스페이스에서 단독 개봉해 장기 상영을 이어갔다. 

두 번째 작품 <초행>은 김대환 감독이 각본·연출·편집을 맡고, 장우진 감독이 각색·프로듀서를 담당했다. 취업, 결혼, 임신 등 청춘의 고민에 휩싸인 30대 연인이 인천과 삼척에 사는 서로의 가족을 찾아가는 여정을 일상적인 화법으로 그렸다. 2017년 18회 전주국제영화제 시네마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70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 베스트 이머징 디렉터상, 32회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각본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작품은 2018년 5월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전주시네마프로젝트로 선보인 <겨울밤에>다. 장우진 감독이 각본·연출·편집을, 김대환 감독이 프로듀서를 맡았다. 30년 만에 춘천 청평사에 머물게 된 중년 부부의 이야기가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펼쳐지는 성찰극이다. 2018년 11월 열린 40회 프랑스 낭트 3대륙 영화제에서 청년심사위원상을 수상했고 2019년 개봉 예정이다. 

네 번째 작품은 첫 해외 프로젝트다. 2018년 열린 23회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안 프로젝트마켓(APM)에서 ‘부산상’을 수상한 <마지막 사진>은 베를린에 간 한국 유학생이 북한 커플을 만나는 이야기로 장우진 감독이 연출을 맡고, 베를린 올로케이션 촬영을 계획하고 있다. 기존 영화 시스템에서 벗어나 춘천의 순우리말 ‘봄내’를 이름으로 내걸고 고향에서 자신들의 목표를 이뤄나가는 김대환·장우진 감독이 한국 영화계 지형을 조금씩 새롭게 바꾸고 있다.

그새끼를죽였어야했는데
시트콤협동조합의 첫 작품, 이가홍 감독의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

두근두근 잼있는 영화 만드는 "시트콤협동조합" 

2018년 1월 5부작 웹드라마가 소셜 미디어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병원을 배경으로 한 막장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진이 작가실에서 드라마 전개를 두고 갑론을박을 쏟아내는 시트콤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이가홍, 2018, 이하 <그새죽>)가 시트콤협동조합의 첫 작품이다. 

이 프로젝트는 민주노총이 윤성호 감독에게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를 주제로 한 콘텐츠 제작을 의뢰하면서 출발했다. 윤성호 감독이 기획을 맡고 <아이돌 권한대행>(윤성호·박현진, 2017) 공동 각본과 <내일부터 우리는>(윤성호, 2017) 원안·각색에 참여한 송현주 작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재학 중이며 단편영화 <J에게>(2018)를 연출한 이가홍 감독이 연출로 합류했다. 대기업의 강력한 마케팅 수단으로 떠오른 웹드라마 형식임에도 PPL(간접광고) 없이 최소 비용으로 제작한 <그새죽>은 노조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재와 긴박감 넘치는 전개, 기발한 캐릭터로 승부를 건 콘텐츠였다. 웹에서 머물지 않고 2018년 열린 20회 정동진독립영화제와 17회 미쟝센단편영화제, 독립 단편 상영회를 통해 관객과 꾸준히 만났다. 

시트콤협동조합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난 후 이름이 붙여졌다. 콘텐츠를 공유할 계정이 필요했고 윤성호 감독은 이가홍 감독과 상의해 “여러 창작자가 함께 시트콤을 만든다는 의미”로 협동조합이라 이름을 지었다. 운영 원칙도 정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제작 스태프에게 적정 수준의 임금이 지급되어야 하고, PPL이나 기업 투자에 의존하지 않고, 창작자들이 창의력과 욕심을 발휘할 수 있는 프로젝트여야 한다는 것이다. 

시트콤협동조합이 제작하고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두근두근 외주용역>(2018) 역시 노동 현실을 꼬집는 5분짜리 시트콤이다. 갑과 을로 대표되는 대기업 과장과 외주회사 대표가 마주 앉아 노동자와 노조를 폄훼하는 방법을 공유하는 막무가내식 대화가 배꼽을 쥐고 웃게 하면서 동시에 씁쓸한 분노를 일으킨다. 2018년 9월 열린 10회 서울국제초단편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 상영됐다. 

여성 감독과 작가, 주요 스태프가 참여해 성과를 거둔 <그새죽>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성주의 콘텐츠에도 힘을 쏟을 예정이다. 시즌 2 가능성을 열어두고, 이랑 감독의 웹드라마 <주예수와 함께>(2014)를 입점해 공개한 것도 그 일환이다. ‘21세기에 걸맞은 사랑과 연대의 시트콤’을 만들고자 하는 창작자라면 누구나 문을 두드릴 수 있다. 시트콤을 통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윈윈하는 시트콤협동조합의 활약이 두근두근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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