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상수 감독이 만든 세상의 박물류 전원사 기증자료

by.최영진(한국영상자료원 수집부) 2019-01-07조회 2,410
전원사 기증자료

지난 6월이었다. 퀵서비스 배달로 사무실에 패키지가 도착했는데 무엇인가 해서 박스를 열어보니 여러 가지 물건 중에 ‘강변호텔’이라는 메모가 붙어 있는 점퍼와 여러 장의 종이가 들어 있는 폴더가 눈에 띄었다. 함께 도착한 기증서에 발송처가 (주)영화제작 전원사라고 적혀 있는 것을 보는 순간, 이것이 홍상수 감독 다음 작품의 관련 자료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다음 달인 7월이 되어서야 해당 작품이 제71회 로카르노 영화제 경쟁 진출작으로 발표되었고 서서히 일반인들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홍상수 감독의 제작사 (주)영화제작 전원사(이하 전원사)로부터 2011년부터 영화 관련 박물류(의상, 소품 등)를 꾸준히 기증받아왔다. 전원사는 <극장전> (2005)부터 (주)영화사봄 제작 <밤과 낮> (2007)을 제외한 대부분의 홍상수 감독작을 제작해왔기 때문에 이 작품들, 그리고 어떤 경우 그 이전 작품의 박물류를 기증받을 수 있었다. 또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현재 제작하는 작품 관련 자료에 대한 아카이빙 정신이 강해 <강변호텔>(2018)과 같이 국내 극장 개봉 이전에도 박물류 자료를 기증하기 시작했다. 다른 영화제작사들도 이렇게 적극적으로 자료를 기증한다면 한국영화사의 영구적 보존이 그만큼 더 잘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7년간 전원사로부터 기증받은 자료를 찾아보면서 새로운 디테일에 흥미를 느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서>(2011)의 첫 부 마무리 장면에서 안느(이자벨 위페르)가 안전요원(유준상)에게 전달하는 편지가 있는데 영화에서는 안전요원이 영어 실력이 부족해 편지를 소리 내어 읽으려고 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다. 결과적으로 관람객은 편지의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지 못한다. 그런데 전원사로부터 이 편지를 영화 소품으로 기증받고 나서야 안느가 정확히 무엇을 썼는지 알 수 있었다.

Dear life guard. You are a beautiful man. I almost asked you if you want us to be more than friends. Anne.
안전요원에게. 당신은 아름다운 남자예요. 당신이 우리가 친구 이상이길 바라는지 물을 뻔했어요. 안느.

이것으로 안느의 속마음이 더욱 더 분명해지면서 영화를 재관람할 때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었다. 의상과 소품 외에 좀 더 특이한 자료도 전원사로부터 기증받았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손글씨 크레디트 원본 용지들일 것이다. 홍상수 감독 작품을 관람한 독자는 잘 아는 사실이겠지만 오프닝 크레디트는 홍상수 감독 손글씨로 쓰인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 크레디트 화면을 제작하기 위해 감독이 직접 영화 제목, 출연진, 스태프 등 크레디트를 손으로 쓴 용지들을 기증받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만한 기증 자료는 <극장전>과 <자유의 언덕>(2014) 촬영 원본 영상이 녹화된 DV 테이프들인데 이는 향후 이 작품들을 연구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이 자료를 직접 조사해 별도로 독자에게 자세히 소개하고 싶은 욕심도 든다.

다른 나라에서

최근 한국영화유산 수집 캠페인을 통해 <인랑>(김지운, 2018)에 등장하는 멋진 갑옷과 총들을 기증받았는데 이와 달리 홍상수 감독 영화에 등장하는 의상과 소품은 모두 소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오!수정>(2000)의 캠코더, <극장전>의 점퍼, <다른 나라에서>의 수첩과 편지, <누구의 딸도 아닌 해원>(2012)의 카세트 플레이어와 테이프, <우리 선희>(2013)의 교수 추천서, <지금은 맞고 그때는 틀리다> (2015)의 외투와 신발, <클레어의 카메라>(2016)의 폴라로이드 카메라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이다. 앞서 언급한 <강변호텔>의 의상도 언뜻 보기에는 특별한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영화 속에 남겨지는 순간 신비한 의미가 부여되어 일반류에서 박물류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더 이상 단순히 우리 현실에 존재하는 물건이 아니라 우리를 사로잡은 영화 속 세상의 캐릭터들이 만지고 사용한 소중한 귀중품. 이것이 바로 영화 박물류의 힘이고 우리가 계속 수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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