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보관하기 위한 카탈로깅 적체 자료 해소하기

by.한나리(한국영상자료원 카탈로깅팀) 2019-01-07조회 2,003
카탈로깅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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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자료원에는 이름에 걸맞게 수집된 자료가 매우 많다. 상당수는 아직 카탈로깅되지 못한 ‘적체’ 자료로 분류된다. 적체를 해소하는 것이 바로 내가 하는 일이다. 적체 상태의 자료는 막 수집?기증된 자료와 같이 공식적으로는 활용이 불가능하며, 자료원 시스템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카탈로깅’이라는 중간 단계를 거쳐야만 이름과 번호와 카테고리를 부여받고 검색과 활용이 가능한 자료가 된다.

카탈로깅
자료를 들춰보는 기증자
카탈로깅
영화 제작을 위한 장소 조사 내역이 꼼꼼하게 기재되어 있는 기록장

업무를 막 시작했을 때 카탈로깅은 한편으로는 마치 동전 분류기처럼 명쾌할 것 같았다. 매뉴얼 측면에서 접근하면 배우 사진, 영화 스틸컷, 시나리오, DVD 등 수집된 자료를 해당하는 카테고리에 넣어주고 주요 사항을 기록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과 실전에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자료를 채 몇 개 입력하기도 전에 내가 등록해야 하는 수많은 자료의 정체성과 자리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료 자체의 카테고리 분류는 물론 제작 단계에서 영화의 제명과 스태프들이 수도 없이 교체된 탓에 자료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존 카테고리로 카탈로깅이 어려운 ‘애매’한 위치의 자료, 유실되고 훼손된 자료, 알아보기 힘든 수십 년 전 영화의 조연 배우 얼굴들, 한자와 외국어, 그리고 그보다 더 식별하기 힘든 휘갈겨 쓴 우리말들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그러던 중 한번은 처음으로 기증자와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본인의 영화 제작 행적에 관한 자료를 모아놓은 박스를 열어보는 기증자의 모습에서 약간 색다른 감회를 맛봤다. 자료원에 들어온 방식이 기증이든, 수집이든, 구입이든, 자료 대부분은 최초의 자료 제작자, 영화계 종사자, 혹은 수집가들에 의해 소중한 자료로 분류되어 이미 정리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카탈로깅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분류와 정리 속에는 좋아했고 몸담았던 영화에 대한 애정이 가득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때 본인의 자료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기증자의 도움을 받아 혼자서는 정리할 엄두가 나지 않던 적체 자료 일부를 등록했다.

영화 관련 자료 대부분이 누군가의 중요한 일부분이었다는 새삼스러울 것 없는 사실은, 카탈로깅을 하면서 다른 여러 순간에도 느낄 수 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료를 상세히 들춰보고, 자료 더미에서 무언가를 분류하고 골라내야 하며, 누구의 필적인지, 누구의 얼굴인지를 추적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가 직접 쓴 육필 시나리오와 콘티들, 빼곡한 조사 자료에서는 물론 시네필들이 모아놓은 것 같은 영화제 카탈로그나 영화 전단지만 봐도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좋은 자료, 소중한 자료이더라도 대충 등록해놓으면 추후 활용 시 배제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안에 ‘무엇이 어떻게 들어 있는지’ 할 수 있는 한 제대로 분류, 기록해놓는 것이 어렵지만 중요한 일이다. 물론 업무를 맡은 지 한 해도 되지 않아 단편적이고 편협한 인상일 수 있으나, 이렇게 가지런한 자료를 보면 ‘잘’ 보관된 자료인 만큼 더 잘 보관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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