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자선 바자에서 불이 나면서 영화를 보던 121명이 죽다

by.정성일(영화감독, 영화평론가) 2017-02-17조회 1,594
1897.05.04 

당신이 영화관에 가면 가장 짜증스럽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가 비상구 불빛일 것이다. 그러면서 중얼거릴 것이다. 나도 극장에 문제가 생기면 어디로 뛰어나가야 할지는 알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영화사의 순간은 이 문제가 생명이 걸린 참극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미 보여주었다.
뤼미에르 형제의 영화는 파리에서 화제가 되었고 사람들은 이 구경거리를 보기를 원했다. 아직 정기적인 프로그램을 갖고 상영하는 영화관은 없었고, 파리의 시민들은 영화를 본 사람과 보지 못한 사람으로 나뉠 정도로 이 신기한 과학적 발명품을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러자 자선 바자를 위해 1885년 파리 제8구 장-구종 17번가에 세워진 어마어마한 규모의 ‘바자 드 라 샤리테(Bazar de la Charite)’에서 뤼미에르의 시네마토그래프를 상영하기로 했다.

성냥 한 개비가 부른 지옥

대규모의 자선 바자 행사는 나흘로 예정되었다. 이틀째인 화요일 5월 4일. 이날 행사에는 4,000명의 시민이 몰렸다. 이 거대한 건물에서 상영관은 턱없이 작았고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차례로 입장해야만 했다. 첫 회 상영은 오후 3시에 시작하였다.
영사실에서 그 당시의 프린트를 상영하던 기사들은 니트로글리 세린으로 만들어진 필름과 과열된 램프가 어떤 일을 만들어낼지 아직 상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4개의 상영관에서 9개의 영사기로 쉬지 않고 상영을 이어나갔다.
4시 10분, 4회가 상영되고 있을 때였다. 지나치게 과열된 램프가 그만 끊어지고 말았다. 극장은 어둠에 잠겼다. 이때까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영사기사들은 램프를 바꾸어야만 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새로운 램프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조수는 아무 생각 없이 성냥불을 켰다. 영사기사는 그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아차리고 말렸지만 때가 늦었다. 갑자기 성냥불의 불씨가 프린트로 옮겨붙었고 순식간에 영사실은 불바다가 되었다.
최악의 사태를 만들어낸 것은 이 건물이 목조건물이었으며 아직 이 나무들은 벽에 발라놓은 타르를 충분히 흡수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이다. 순식간에 건물 전체로 불이 옮겨갔고 더 나쁜 것은 이 건물에 비상구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직 19세기였다는 사실을 환기해주기 바란다.
불길이 치솟기 시작하자 이 건물에 들어와 있던 그 많은 사람이 일시에 좁은 입구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했다. 한쪽 나무 벽을 부수어야만 했고 훗날 조사에 따르면 이 벽을 허물었기 때문에 최소 100여명 이상의 사람들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여기서 희생자가 된 사람들은 당시의 패션에 따라 긴 치마와 꼭 조이는 거들, 불편하기 짝이 없는 구두를 신은 여인들이었다. (당시의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을 떠올려주기 바란다.) 121명의 희생자 중에 여인이 110명이었으며 6명의 남자가 죽었고 5명의 구조요원이 진압 과정 중에 불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끔찍한 것은 여인들 대부분이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불길에 희생된 것이 아니라 서로 밀치는 과정에서 넘어져 밟혀 죽었다는 것이다.
8월 24일부터 시작된 이 화재의 재판은 우리의 예상과 다르게 진행되었다. 많은 언론은 이 화재를 ‘악마의 장난’이라고 불렀으며 영화를 그 악의 장난감이라고 공격했다. 그러므로 몇몇 보수적인 언론은 영화 상영을 중단해야 하며 사람들을 어둠 속에 몰아넣고 그런 구경거리를 보여주는 것은 교회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우리도 이미 그런 사례를 알고 있다. 비디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일부에서는 이를 “전쟁이나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이라고 광고를 해대곤 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는 것은 언제나 누군가를 두렵게 만든다. 일시적으로 파리에서는 영화 상영이 중단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영화를 더 이상 구경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다만 이 끔찍한 화재는 어둠에 잠긴 극장이라는 공간에 안전한 대피로가 없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생명을 걸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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