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의 아픔을 영화로 풀어내다, 감독 설태호

by.김승경(영화사연구소) 2014-01-09조회 879

6・25전쟁은 정치와 군사, 외교 등의 공적인 영역에서부터 개인의 일상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다. 현재까지도 세계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아 있으며 같은 민족을 향해 여전히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곳이 우리가 살고 있는 한반도다. 이러한 현실로 인해 전쟁의 고통은 지속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는 수많은 참전 군인과 이산가족이 있다. 영화계에도 이러한 아픔을 가진 실향 영화인이 많이 있는데, 그중 한 명이 설태호 감독이다. 함경남도 단천 출생의 설태호 감독은 청진의과대학 재학 시절, 전쟁이 터지자 인민군으로 징집되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망치던 중 후퇴하는 국군과 함께 1950년 12월 24일 흥남부두의 마지막 피난선에 몸을 실은 이후 다시는 가족을 만날 수도, 고향 땅을 밟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리고 영화계에 데뷔해 오랫동안 반공영화의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하면서도 북에 있는 가족들에게 해가 될까봐 본명인 설태호라는 이름 대신 가명인 설봉이라는 이름으로 살게 된다.

‘엉터리’ 시나리오 작가, 이만희 감독을 만나다

전쟁 중에 월남한 설태호 감독은 미국연합고문사령단 소속의 KLO에 입대해 거제도에서 군 생활을 했고, 전쟁 후 이 부대가 해산되자 해병대 문관으로 복무했다. 이러한 군 생활 경험은 스펙터클한 전쟁영화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군인들이 가질 수 있는 인간적인 고뇌와 그들만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창조하는 데 자양분이 되었다. 해병대 문관 제대 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갔다가 우연히 송국 감독을 만나게 되고, 영화 시나리오를 써볼 것을 제안받았다. 평소 책도 많이 읽었고, 소설을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터라 쉽게 생각하고 한 편의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로 만들어진 영화가 <첫사랑>(송국, 1958)이었다. 설태호 감독은 자신의 첫 시나리오에 대해 ‘엉터리 같은 이야기’라고 회고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영화계에 내디딘 발은 당시에 연출력 있는 감독이던 정창화, 양주남 감독과의 만남으로 이어졌고, 이 감독들에게 영화의 콘티와 현장에 대해 자세하게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이만희 감독과 인연이 이어졌다. 전쟁 반공영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1963)의 조연출을 마치고, 이만희 감독과 함께 을 공동연출하면서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 영화를 마친 후 반공수기 한 편을 보고 영화화할 것을 결심한다. 그것이 구술자가 각본을 쓰고 감독한 <살아야할 땅은 어디냐>(1963)이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반공영화 감독 설봉으로 자리매김하면서 1960년대 후반까지 여러 편의 작품을 연출했다.

코믹액션 활극 ‘용팔이 시리즈’의 탄생

1970년 대양영화사 한갑진 사장이 찾아와 정의로운 깡패가 주인공인 영화를 연출할 것을 제안했다. 설태호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 유일수와 함께 이 아이디어를 코믹액션 활극으로 바꾸어놓았고, 주인공을 맡은 박노식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캐릭터를 덧씌움으로써 ‘용팔이 시리즈’가 탄생했다. <남대문 출신 용팔이>(1970)를 시작으로 <역전출신 용팔이>(1970), <운전수 용팔이>(1971) 등을 연출했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고향을 떠나 타지에 살고 있는 서민들의 설움을 해소해줌으로써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설태호 감독은 인기를 얻은 작품은 계속 시리즈로 만들고, 아류작들이 양산되는 영화 제작 관행으로 영화의 질이 점점 떨어지는 것에 회의를 느꼈고, 다시 반공영화를 제작하기로 마음먹는다. 동아방송 라디오의 인기 연속극이던 <실화극장> 시리즈 중 <특별수사본부 기생 김소산>(1973)을 시작으로, <원산공작>(1976), <캐논청진공작>(1977), <도솔산 최후의 날>(1977) 등은 흥행 성공과 함께 우수영화로 선정되고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의 영광을 안겨주었다. 또한 1970년대부터 국군영화제작소에서 장편 극영화를 연출했는데, <땅울림>(1980)과 <에미의 들>(1992)은 작품성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은 작품들이다.

설태호, 현재진행형 감독

1980년대 한국영화 침체기는 설태호 감독에게도 시련을 가져다주었고, 이후에는 극영화보다는 군 영화 제작에 주력하며 1990년대 중반까지 현장에서 연출했다. 하지만 설태호 감독은 흥남부두에서 마지막 피난선을 탔던 자신의 기억을 영화화하고자 신상옥 감독이 세상을 뜨기 전까지 그와 함께 노력을 기울였으며, 지금도 새로운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는 현재진행형의 감독이다. 그의 구술에는 한국영화계뿐만 아니라 군영화제작소의 영화 제작 환경과 전쟁영화의 군 제작 지원 등 상업영화계에만 몸담았던 감독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또한 6・25전쟁에 참전한 실향 영화인으로서 자신의 체험과 기억을 적극적으로 증언했다. 1.4후퇴 때 만난 한신 장군과의 일화를 담아낸 <도솔산 최후의 날>(1977), 포로수용소의 실상과 젊은 군인들의 고뇌를 담아낸 <거제도 포로수용소>(1992) 등에 묘사된 직접 경험과 <땅울림> <에미의 들> 등에 흐르는 그의 실향민으로서, 이산가족으로서 느끼는 아픔 그 모두를 녹여낸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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