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조> GV 현장 시네마테크 KOFA가 주목한 2012년 한국영화

by.이지영(한국영상자료원 카탈로깅팀) 2013-03-06조회 973
로맨스 조

올해도 ‘시네마테크 KOFA가 주목한 2012년 한국영화’ 기획전이 열띤 호응 속에 진행되었다. 감독과 관객이 함께한 GV들이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하고 흥미로웠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 가운데 신인감독의 주목할만한 데뷔작 <로맨스 조>의 GV 현장을 소개한다. 이야기 자체보다, 그 형식에 더욱 주목하는 이광국 감독의 <로맨스 조>는 한국영화 안에서는 보기 드문 작품이다. 에셔의 「그림 그리는 손」의 모티브를 가져온 이 영화에는 몇 개의 이야기가 그물망이 얽히듯 이 모양 저 모양으로 포개져 있다. 하지만 난해하지 않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친밀한 요소들을 지나 이야기의 실마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이 우리를 마주한다. 이광국 감독과 이용철 평론가 외에도 배우 신동미, 이채은, 이다윗이 함께한, 시종일관 화기애애했고 진지했던 그날의 이야기들을 전한다.

섬세한 디테일, 모호한 경계

“아, 구체적인 XX” 극중 다방 레지가 꼬마에게 던지는 이 한마디는 극중 대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GV에서도 영화의 섬세한 디테일에 관한 질문이 많았다. 한 관객이 자살시도 직전에 초희가 체육복을 깔고 앉는 장면에 대해 질문하자 배우 이채은(극중 초희역)은 "체육복 설정은 처음 시나리오에는 없었다. 감독님이 현장에서 ‘초희가 그냥 땅바닥에 앉았을 리는 없을 거 같아. 여기 체육복 같은 거 없어?’라고 해서 즉석에서 추가됐다. 보통 감독님 스타일이 테이크가 20번은 간다. 계속 모니터하면서 디테일이 추가된다. 나중에 보면 시나리오보다 더 풍성한 장면을 만들어주셔서 나도 좋았다.”고 상세히 답했다. 또, 현장에서 디테일을 결정할 때 시간 제약의 어려움은 없었는지 물어보자 이광국 감독은 “조감독하면서 여러 경험을 하다보니 시간에 쫓기진 않았다. 내가 한 회 차에 얼마나 찍을 수 있을지 한계를 알고 시작했다. 처음 계획할 때 16회차를 생각했고, 그 안에서 촬영을 다 끝냈다. 무엇보다 배우분들이 중요하다.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무리한 것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배우분들이 잘해주셔야 한다.”고 답했다.

<로맨스 조> 속의 이야기들에는 진짜와 가짜,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없다. 일부러 둘의 구분을 모호하게 만드는 장치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이를테면 “성인 로맨스 조는 오른손잡이고, 아이는 왼손잡이다. 처음에는 인식을 못했는데, 다윗이 왼손잡이인 것을 발견했다. 그때 오른손잡이와 왼손잡이 중에 선택을 해야 했다. 그 순간 어른과 아이가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설명처럼 미묘하게 달라지는 지점들이 서로 뒤섞여 영화는 더욱 흥미로워 진다. 극 중 꼬마에게 하는 “그래, 너도 하나의 우주인데 고민이 있겠지.”같은 대사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해 감독은 말한다. “이 대사는 영화에서 먼저 다방 레지가 한 번, 이후에 로맨스 조가 한 번 말한다. 허구와 현실의 인물들 중 모두가 다방 레지가 지어낸 인물들일 수도 있는데, 그렇다면 그녀가 쓰는 말이 자신이 지어낸 허구의 인물에게도 쓰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보다 호기심의 영화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이광국 감독은 <로맨스 조>의 연출 의도를 명확히 밝혔다. “이 영화는 주장이나 메시지보다는 호기심에서 만들어진 영화다. 이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면 어떨까? 라는 호기심. 그래서 영화를 만들 때도 미세한 차이를 두고 디테일을 만든다거나 살짝 비튼다거나 해서 동일한 인물로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어떤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보다 에셔의 「그림 그리는 손」에서 받은 인상을 주고 싶었다. 조감독 생활을 오래하다가, 내 얘기를 준비하면서 깊이 고민하는 시기가 있었다. 하고 싶은 얘기가 없었다. 그래서 먼저 내 상황에서 시작해보자고 생각했다. ‘이야기가 굉장히 필요한 남자, 이야기가 필요한 사람’ 그리고 당시 소문에 관심이 많았는데 소문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같은 것을 얘기하려고 했다.”

이광국 감독은 이야기의 논리보다는 그 이야기를 하는 상황이나 전체적인 인상을 더 중시한다. 사람을 만날 때나 배우 캐스팅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배우들을 굉장히 귀하게 생각한다. 역할에 상관없이. 사람으로서 그 배우의 질감이 내 영화 속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을 살리는 데 신경을 많이 썼다. 연기 잘하시는 분은 많지만,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느낌이 중요했다. 그래서 무엇보다 사람으로서 보려고 노력했다. 만나서 얘기도 많이 했다.” 스무 번 넘게 볼 때마다 다른 영화처럼 느껴져 볼 때마다 새롭다는 배우 이채은의 표현대로 <로맨스 조>의 매력은 두고두고 돌려보는 되새김질에 있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면서 이용철 평론가는 감독이 최근 완성한 단편영화가 ‘어마어마하게 좋다’는 소문을 전했다. 이광국 감독의 단편영화뿐 아니랴 그 차기작을 곧 KOFA에서 볼 수 있을 날을 기대한다. 이 GV의 전문은 홈페이지의 GV극장과 한국영상자료원 네이버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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