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영화]1/24초의 의미(김구림, 1969) 영토 없는 영화들을 위한 지도: 1950년대 이후 실험영화⑫

by.이한범(미술평론가) 2018-05-16조회 6,134
1/24초의 의미

1969년 7월 21일, 지금은 코리아나 호텔이 들어선 자리에 있었던 아카데미극장의 뮤직홀에서 김구림은 그가 감독과 편집을 맡아 16mm 필름으로 제작한 영화 한 편을 최초로 상영한다. 바로 <1/24초의 의미>이다. 그러나 김구림은 이날의 상영이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 영화계에서 이 작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는 이유로 전문가의 도움을 얻지 못하였고, 직접 기술을 배워서 편집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리허설 때도 그랬지만 결국 행사 도중 필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리하여 미리 준비해 둔 슬라이드를 환등기로 보여주는 것으로 상영은 대체되었다. 한편 김구림은 그 자리에서 동료 예술가였던 정강자와 함께 흰색 타이즈를 입고 영사되는 이미지를 받아내는 스크린 역할을 하며 <무제>라고 이름 붙여진 필름 퍼포먼스를 진행하기도 했다(때문에 이 날의 상영을 “총체 예술”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김구림은 그의 집이 영화관을 운영했었으며, 사실은 작가가 아니라 영화감독이 되고 싶어 했음을 회고한다. 하지만 영화관이 아닌 곳에서 퍼포먼스와 함께 작품을 선보였다는 사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24초의 의미>는 기존의 영화 시스템과는 그리 관련이 없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무제> 스틸
<무제>(김구림, 정강자, 1969)

김구림은 곧이어 “한국 최초의 메일아트”라고 불리는 <매스미디어의 유물>(1969), 대지미술로 회자되는 <현상에서 흔적으로> 시리즈(1970), <불가해의 예술>과 같은 사진 콜라주 시리즈(1970), 그리고 동료 작가 정찬승, 극단 에저또의 대표 방태수, 의상 디자이너 손일광 등 인접 예술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결성한 제 4집단에서의 퍼포먼스(1970)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지만 더 이상 영화는 제작하지 않는다. <1/24초의 의미>를 만들기 전 <문명, 여자, 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준비하고 있었으나 완성하지는 못했다. <1/24초의 의미> 또한 실패한 첫 상영 이후 오랜 시간 동안 세상에 빛을 보지 못했다. 이후 2000년대 초에 이르러 1960년대의 미술을 “실험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하면서, <1/24초의 의미>는 소위 “한국 최초의 실험 영화”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시 소개된다. 
 



<1/24초의 의미> 스틸컷
<1/24초의 의미> 스틸컷

<1/24초의 의미>는 10분이 채 안 되는 무성 영화이다. 1초가량의 짧은 시간만 지속되는 약 300여 개에 이르는 푸티지가 영화의 주를 이루며, 이 이미지의 연쇄는 꽤나 강렬한 시각적 경험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푸티지들의 면면이다. 먼저 확연히 눈에 띄는 것은 급격한 도시개발과 산업화가 이루어지던 1960년대 후반의 서울에서 관찰할 수 있는 풍경이다. 벽돌이나 파이프, 건축 자재, 더미로 쌓여 있는 공산품과 거리를 바삐 오가는 군상, 자동차들, 한창 지어지고 있거나 이미 완공된 고층 건물 등은 1960년대의 산업도시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줌 과 동시에 실제 세계에 대한 기록으로서 시각적 정보를 제공한다. 그러나 모든 푸티지가 이런 종류의 이미지들로 일관된 것은 아니다. 가방을 메고 가는 어린 학생의 뒷모습이라거나 벤치에 누워 있는 사람, 고무줄놀이를 하는 어린이들, 공원에서 산책하는 사람들 등 시민들의 일상적 삶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이러한 사실적 세계를 반영하는 듯한 이미지 외의 여분의 것들이다. 과노출되어 형상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 무언가 너무 빨리 지나가거나 초점이 맞지 않아 그저 추상적인 움직임만이 남은 이미지, 초록색의 화면을 빠르게 이동한 후 저 멀리 사라지는 원이 모습 등 지시 불가능할뿐더러 형용하기조차 힘들어 다소 무의미해 보이기까지 한, 분명한 주제로 한정하거나 의미로 환원시킬 수 없어 오직 바로 그 이미지로서만 머무르게 되는 그런 푸티지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이를 무시하더라도 우리로서는 충분히 이 영화에 대해 서사화 가능하고 의미화 가능하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짐짓 자명해 보이는 어떤 서사 혹은 입장이 영화 전체에 스며든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들로 인해 끊임없이 와해되고 거부된다. 
 


 <1/24초의 의미> 의미 불명의 이미지들
 <1/24초의 의미> 의미 불명의 이미지들
 
관찰자의 시선으로 채집한 파편적인 이미지에 더해, <1/24초의 의미>에는 이와 다른 범주로 여겨지는 ‘연출된 장면’들이 있다. 이는 영화 안에서 비교적 또렷한 두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작가가 의도한 주제를 이끌어 가면서 영화 전체를 다섯 파트로 나뉘게끔 구조적인 축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 구조란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영화의 도입부는 고가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측면 창밖의 풍경을 비교적 긴 시간 동안 보여준다. 그다음은 앞서 언급한 1초가량의 짧은 푸티지가 약 60여 개 정도 이어진다. 그리고 불현듯 건물을 배경에 둔 반듯한 정장 차림의 남자(정찬승)를 아래에서 위를 보며 바스트숏으로 찍은 푸티지,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 거울을 보고 하품하는 정장 차림의 남자, 피어오르는 연기를 담은 푸티지가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고가도로의 풍경이 나타나고, 엄밀하지는 않지만 같은 패턴이 반복된다. 이와 동일한 구조적으로 짜여진 푸티지의 집합은 전체 다섯 파트 중에서 네 개를 차지한다. 반면 상이한 구조를 가진 네 번째 파트는 오직 연출된 장면들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고가도로 아래에 서 있는 남자와 계란, 물컵, 과일, 쥐 등을 돌로 내리치거나 돌을 깨기 위해 정에 망치질하는 푸티지를 교차시키며 보여주는 것이다. 흑백이나 컬러로 이루어진 다른 파트들과 달리 이 파트는 다소 몽환적인 색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보아 일종의 다른 시공간을 표상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파트에서는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마지막 시퀀스에 변화가 찾아온다. 샤워기에서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남자는 더 이상 거울을 보고 하품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또렷하고 강한 눈빛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푸티지가 추가된다. 이후 다섯 번째 파트는 이전의 여느 파트와 마찬가지 구조로 이어지는데, 마지막 부분에서 하품하는 남자의 푸티지가 사라지고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연출된 장면들은 반복의 진행을 통해, 즉 구조 그 자체를 통해 영화의 드라마를 도출한다. 
 
<1/24초의 의미> 마지막 하품하는 남자
<1/24초의 의미> 마지막 하품하는 남자

미술사학자 김미경은 <1/24초의 의미>에 대해 “불연속적이고 비논리적인 전개과정으로 파괴와 잔인함, 지루함과 일상을 느리게 혹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로 중첩해 한국의 현대 산업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단면들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평하였고, 당시 주간지의 보도자료 내용에 비추어 보면 김구림 또한 이 영화의 주제를 현대사회의 권태 정도로 생각했던 듯하다. 이는 분명 연출된 등장인물인 정장 입은 남자를 중심에 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69년 7월 21일의 퍼포먼스와 결합한 독특한 상영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 김남수는 이러한 맥락에서 <1/24초의 의미>를 일종의 안무 작품이라고까지 주장한다. 신정훈은 이 특징을 종합하며 애초에 <1/24초의 의미>가 “사회적 지시성과 지각적 자극”이라는 두 기획 의도를 가지고 있었음을 논의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의미는 “1960년대 말 서울의 근대화에 대한 미묘한 논평”이라고 할 수 있으며, “그 어느 때보다도 “흐름”, “기능”, “전망”, “질서” 등의 단어가 의미심장한 것이 되었던 1960년대 말 서울의 공간적 상상력”에 “적극적인 차단, 중지, 휴지 등과 같은 장치들을 통해서”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1/24초의 의미>에 관한 기존의 논의들은 모두 타당하다고 여겨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에서 분명 여분으로 남겨지는 것이 있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특정한 의미로 환원시키기 어려운 이미지들 때문이다. 물론 ‘도시 사회의 단면’이라는 광범위한 범주로 수렴시킬 수도 있겠지만, 이는 영화의 주제를 부연하는 것 이외에 이 이미지가 실제로 영화적인 것으로 기능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설명해줄 수 없는 정의이다. 어떻게 보면 김구림의 <1/24초의 의미>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는 시각적으로 명백하고 언어적으로 대상화할 수 있는 사실로 여겨지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음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영화의 지속 안에서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오로지 자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데 열중하고 명시적인 것들을 매개하며 때로는 말문을 막히게 만드는, 판단을 불확실함으로 되돌려놓는 이 기능적인 더미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이것은 분명 사실적 정보를 넘어서는 영화적 영역의 문제일 것이다.        

1초간 지속하는 푸티지의 연속 도중에는 연출된 푸티지가 자기 자신을 위장하고 그 풍경에 속한 것인 양 숨어 있다. 정장을 입은 남자는 쇼윈도 앞에서 자기 자신을 이리저리 비춰보기도 하고, 쓰레기통 앞에 앉아 입에 머금은 액체를 뱉어내기도 한다. 더 교묘히 위장된 것은 마치 길거리에서 우연히 찍힌 듯 연출된 세련된 차림의 여성이다. 순환되는 구조 중 두 번째 파트의 마지막 즈음에는 힐을 신고 치마를 입은 세 명의 여성들이 걸어가는 뒷모습이 나온다. 그보다 다섯 번째 뒤의 푸티지는 세 명의 여성 중 줄무늬 원피스를 입은 여성이 다시 등장하여 정면으로 걸어오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 여성이 연출된 것임을 알아챌 수 있는 것은 그가 카메라를 향해, 비켜 지나가지 않고 거의 렌즈 코앞까지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영화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수집한 풍경 푸티지 사이에 연출된 장면을 능청스레 삽입하는데, 1초라는 빠른 속도로 지나치기 때문에 지각에 의한 판단은 유예되고 이미지에 대한 감각적 경험만이 부유하면서 다큐멘터리의 허구성을 유발한다. 모호한 이미지는 바로 이와 같은 사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어느 쪽에 속하거나 선언하기를 거부하고 있으며, 오히려 이 두 가지 측면을 깊은 교착 상태로 이끌고 나아간다. 때문에 이 영화의 서사란 영화 자기 자신이 가진 구조처럼 계속해서 되먹임 될 뿐 명징한 무언가로 환원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를 뿐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실제 세계의 사실을 수집한 아카이브이거나 그에 대한 비평적 개입을 표상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세계에 대한 허구를 강화하기 위한 영화적 장치라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왜 특정한 시공간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와 같은 영화적 장치가 요청되었나 하는 점을 질문해볼 수도 있겠다.     

1966년 김수근이 창간한 『공간』은 건축 전문 잡지였지만 어느 시점까지는 미술을 비롯한 시각예술과 여러 문화영역을 아우르는 종합 비평지에 가까웠다. 미술평론가 오광수가 편집자로 재직하던 때이기도 했던 1969년 12월 호에서, 이 잡지는 “1960년대 도시, 건축, 미술”이라는 제목으로 1960년대를 회고하는 야심 찬 특집을 마련한다. 10년(decade)을 단위로 시대를 일별하는 움직임이 특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첫 페이지부터 아무런 부연 설명 없이 10여 쪽에 걸쳐 이어지는 흑백 이미지의 콜라주는 무척이나 강렬하여 과연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당대는 무엇이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첫 페이지에는 월남전인 듯한 전쟁 사진 세 장과 나체의 여성이 해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광고처럼 보이는 사진이 병치 되어 있다. 이후 전 지구적 이슈를 상기시키는 사건과 그 대상과 출처를 알기 어려운 어떤 행위 혹은 장소의 이미지들이 상당한 리듬감을 만들어내도록 구성되어 이어진다. 그리고 달에 착륙하여 표면을 걸어 다니는 아폴로호의 선원, 그리고 지구의 바다에 다다른 귀환선에서 구명보트로 옮겨 가고 있는 장면을 담은 사진으로 “1960년대의 이벤트(포토 에세이)”라 이름 붙여진 이 섹션은 끝이 난다. 다른 모든 것은 차치하더라도, 이 이미지의 구성이 강하게 환기하는 감각적 경험은 1960년대라는 것이 아마도 말이 필요 없는, 아니 언어(의 의미)를 초과하는 시각적 스펙터클로 집적되고 점철된 시대였음을 말하고 있는듯하다. 

* 현재 <1/24초의 의미>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광주 아시아문화전당 등의 기관에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2001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의 전시 이후 원본이 유실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작가가 디지털 파일로만 가지고 있던 것을 2013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의 전시 《SeMa Green 김구림 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서 16mm로 복원하여 상영하였고 서울시립미술관은 이 형태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 필름은 단지 디지털 파일을 필름으로 레코딩한 것이므로 엄밀히 말해 복원된 판본이라고 볼 수는 없다. 

** 본 글에서 언급한 신정훈과 김남수의 글은 《SeMa Green 김구림展: 잘 알지도 못하면서》와 연계되어 출판된 도록에 실려 있다. 외에도 이 책에는 윤난지, 조앤 기, 이숙경, 유진상, 임근준 등이 각자의 관점으로 쓴 김구림에 대한 글이 풍성하게 실려 있다. 한국의 1960-1970년대 실험 미술에 관한 논의는 김미경의 저서 『한국의 실험 미술』(2003, 시공아트)을 보라. 동 저자의 『한국현대미술자료 약사(1960-1979)』(2003, ICAS)에는 해당 시기 미술에 대한 개괄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와 미술계에 대한 방대한 신문 기사 자료가 함께 실려 있다. <1/24초의 의미>를 포함해 김구림의 초기 작업에 집중한 최근의 연구로는 문지예가 쓴 「김구림의 초기(1969-1970) 작품에 대한 ‘매체(medium)’ 연구」(2015, 홍익대학교 석사논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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