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동네 극장의 추억 ④ 나의 첫 시네마테크, 만화방

by.김종관(영화감독) 2011-07-12조회 1,051

두어 평짜리 조그만 방에 모여든 우리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이였다. 아이들 대여섯 명이 모여 있었고 내가 중학교 1학년으로 가장 어렸다. 만화방 한구석에 마련된 작은 온돌방이었는데 만화책의 눅눅한 냄새가 방 안에도 가득했다. 나쁜 짓이라도 하는 듯 죄책감에 쭈뼛거리다가 맞은편 중학교 3학년생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와 눈이 마주치고는 더없이 답답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주인아주머니가 독서카드를 내오고는 우리는 모여 앉아 그 안에서 고를 영화를 상의했다.

<로보캅> 보셨어요? 어디선가 “네” <바탈리언>은요? “아뇨, 무슨 영화인데요?” 공포영화요 시체 나오는… “저 공포영화 못 봐요” 한 명 껴 있던 유일한 여자아이가 말했다. 비디오데크에 무지의 비디오테이프가 들어갔다.

그리고 내가 그날 200원을 내고 여섯 아이와 처음 본 영화는 이두용 감독 이미숙 주연의 <뽕>이었다. 모든 이와 숨죽여 영화를 보던 그때 나는 매우 부끄러웠지만 낯선 이들과 영화 보기의 즐거움을 경험한 첫 시네마였고 나와 닮은 사람들을 만나 영화에 대한 애정을 공유하는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였다. 그 후로 그곳에서 마이클 소아비 감독의 <아쿠아리스>와 조 단테의 <그렘린>과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개인교수> 시리즈를 보면서 즐거움을 얻었다. 그 작은 방에서 자주 마주치는 아이들이 생겼고, 이내 친해진 우리는 좀 더 큰 즐거움을 찾기도 했다. 내 기억에는 1,500원 정도에 동시상영관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

우리는 주말이면 모여들어 황학동 뒤편의 동시상영관이라든지, 동대문 창신시장 근처 원풍극장에 찾아들어 동시상영 영화 3편 정도를 즐겼다. 당시 보던 영화는 <천녀유혼>의 아류이든 <영웅본색>의 아류이든 엇비슷했고 시간에 사이클을 맞추기 위해 영화들이 싹둑싹둑 잘려 있었다. 그냥 어느 시간이든 들어가 그 영화의 끝부분부터 볼 수도 있고 그럼 상관없이 두어 편이 지나고 그 영화의 앞부분부터 다시 즐겼다. 다시 극장을 나와서는 눈부신 햇살에 왠지 창피해졌고 그렇게 노는 것이 나쁜 것이라 생각했던 우리는 서서히 소원해졌다.

몇 년이 지난 후 우리는 키가 자랐고 그래도 예전의 얼굴이 남아 있었고 길에서 만나도 알아볼 수는 있었지만 서로 알은 체하지는 않았다. 슬쩍 눈만 마주쳤었고 이내 눈길을 피했다. 지금 그들을 만나면 반갑게 인사할 수 있겠지만 이제는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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