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룡 감독의 <흑점. 속 제삼지대>(1969) 피 튀기는 대결은 속편에서 이뤄지는가?

by.오승욱(영화감독) 2011-07-13조회 1,951

어떤 영화를 보고 속편을 애타게 기다리거나 찾아본 적이 있으신지? 내 기억으로 20년 전 봉천동의 동시상영관에서 <아비정전>의 마지막 장면을 보고 양조위가 등장하는 <아비정전>의 속편이 나오기를 애타게 기다린 것 외에는 없다. 그런데 올해 배우 최무룡이 감독한 <제삼지대>를 보고 ‘앗! 이 영화의 속편이 분명히 있을 것이고, 너무나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 속편을 애타는 마음으로 찾아보았다. 역시 속편이 있었다.

<제삼지대>의 속편 <흑점. 속 제삼지대>는 몇 년 후 <김두한 시리즈>로 새로운 액션 스타로 떠오르는 이대근의 첫 데뷔작이다. 초창기 이대근의 액션 연기도 궁금했고, 무엇보다 전편의 라스트에 원한의 감정이 극한까지 치달은 박노식, 최무룡 형제의 대결이 속편에서 펼쳐질 것이어서 너무나도 보고 싶었다.

배우 최무룡이 감독으로 데뷔하고 몇 년 후 그는 야심에 찬 액션영화를 만든다. 제목은 <제삼지대>. 최무룡은 1965년 <피어린 구월산>을 만들고 혹평에 시달린 후, 절치부심. 배우와 감독으로서의 자신을 투영한 썩 괜찮은 작품 <나운규 일생>을 만들고 흥행 성적도 좋고 평단의 인정을 받자 멋진 액션영화 한 편을 자신의 제작사인 최무룡프로덕션에서 만드는데 그것이 바로 <제삼지대>다.

형제간의 갈등?

자신은 술을 먹기 위해 싸우고, 주먹을 들어야 잠자리가 생기고, 사람을 패야 밥이 나온다며 독수리 같은 두 눈을 번득이는 형 박노식과, 동경대를 다니며 김지미와 결혼을 약속하고, 형에게 어머니께 효도할 기회마저 빼앗아가는 동생이라 질투를 당하는 멋진 청년 최무룡. 형 박노식이 영혼을 팔아서라도 돈을 벌겠다며 청부 폭행을 하는 그 장소에 우연히 최무룡과 김지미가 데이트를 즐긴다. 못난 형 박노식이 폭행을 저지르고 달아나자, 동생 최무룡은 형의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로 들어간다.

박노식은 뻔뻔하게 어머니 황정순과 함께 동생 최무룡을 면회 오고, 그 자리에서도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 형을 노려보고 어머니 때문에 눈물을 흘리는 최무룡. 이 정도까지 보면, 이 영화는 형제간의 갈등, 그리고 두 사나이의 대결.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겠구나 예상되는데, 영화의 중간 이후부터 박노식은 안 나오고, 출소한 최무룡이 김지미가 북송선을 타고 북으로 가버렸다는 것에 절망해 학교도 때려치우고, 자신의 재능을 비웃기라도 하듯 주먹을 쓰는 무법자가 된다.

영화는 70여 분 이상 흘렀건만…

그는 형이 폭행을 했던 민단의 고문 밑으로 들어가 그의 보디가드. 즉 요짐보가 된다. 그런데 아뿔싸. 김지미는 최무룡이 보디가드로 고용된 민단의 고문과 결혼한 상태이고, 형 박노식은 감투를 쓰기 위해 북한으로 건너가 온갖 나쁜 짓을 다 배워 다시 일본으로 돌아와 조총련의 핵심 간부가 된다. 그리고 영화의 클라이맥스. 조총련의 두목은 최무룡의 싸움 실력에 반해 박노식과 최무룡 두 형제를 자신의 휘하에 두려 온갖 협박과 회유를 다하다 급기야 어머니 황정순을 납치해 최무룡을 협박한다.

스케줄 탓이었는지, 드문드문 잊을 만하면 얼굴을 보이던 박노식과 최무룡이 조총련의 사무실에서 마주하고 눈싸움을 벌인다. 이 정도라면 조총련의 핵심간부 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머니에게 북에서 배워 온 고문 기술까지 구사하는 악랄한 형과 어머니를 끔찍하게 사랑하는 동생 최무룡이 한판 벌일 것이라 생각되는데 영화가 70여 분 이상이나 흘렀고, 이제 마지막 한판 대결만을 앞둔 상태인데, 서로 죽일 듯 노려보던 형제 앞에 조총련 두목이 나타나 최무룡과 조총련 측 야쿠자 20명이 대결해 최무룡이 이기면 최무룡을 놓아주겠다고 한다.

뻔한 결말, 예상을 뒤엎는 결말

‘아니 형과 아우의 대결은? 조총련의 고문에 어머니가 죽었는데, 그 원한은 어떻게 된 거냐고?’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다만 형 박노식이 조총련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의심을 받고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어머니에게 가혹하게 대하는 장면과 최무룡을 면회 가서 한 말. “네 앞에 다시 나타났을 때 나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라는 말 때문에 혹시 최무룡과 조총련계 야쿠자 20명이 결투할 때 박노식이 나타나 최무룡을 도와 싸우고 두 형제가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박노식이 “사실 나는 조총련을 분쇄하기 위해 들어온 스파이였어.”라 말하고 화해를 할 것이라 예상하게 된다.

드디어 대결. 20명의 야쿠자와 가타나를 휘두르며 싸우는 최무룡. 추풍낙엽처럼 악당들을 쓰러뜨린 최무룡. 절대위기의 순간, 야쿠자 두목이 치사하게 총을 빼들어 최무룡을 쏜다. 다리에 맞았다. 재장전해 방아쇠를 당기려는데 누군가가 쏜 총이 야쿠자 두목의 심장에 박힌다.

과연 속은 것일까…

‘뭐야? 시시하게 박노식이 총을 쏜 거야? 주먹으로 해결하지 않고…’ 하는데 총을 쏜 자는 최무룡의 뒤를 미행하던 일본 경찰이다. “박노식은 어디 갔어?” 하는데 영화는 마지막 장면이다. 어머니 무덤 앞에 무릎을 꿇은 최무룡은 “일생을 바쳐 북괴와 조총련의 야욕을 분쇄할 것을 맹세한다. 피를 나눈 형일지라도 용서치 않겠다.”고 한다. 일어선 최무룡 앞에 일본 형사와 박노식이 서 있다. 최무룡은 형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냉혹한 얼굴로 그를 지나쳐 가버리고, 박노식은 부리부리한 눈으로 동생의 일거수일투족을 바라본다. 그리고 영화는 끝난다.

‘너무 엉성하게 만든 영화 아냐?’ 라는 생각이 들지만, 한편으로 이 영화의 만듦새가 그렇게 날림은 아니고, 비록 빈틈과 의문이 드는 시나리오이기는 하지만 당시 액션영화들에 비하면 감독 최무룡이 공들인 흔적이 너무 많아, 무시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박노식과 최무룡의 피 튀기는 대결은 속편에서 이뤄지는가? 하는 기대가 들면서 내가 또 속은 것인가. 아니면 속편에서 나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액션영화가 만들어진 것일까? 많은 생각이 들지만, 확인할 수가 없다. <제삼지대>의 속편 <흑점>은 몇 장의 스틸사진밖에 남아 있는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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