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영화]태양 없는 시절, 아름다웠던 그들 정우성과 이정재

by.박진형(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프로그래머) 2011-03-16조회 263

바다 저편 멀리 해가 지고 눈앞에는 역광으로 인해 어둡게 보이는 두 남자가 서 있다. 남자들은 태양을 보고 있지만, 왠지 태양은 그들 앞의 모든 것을 따뜻하게 비추기는커녕 세상을 모두 집어삼킬 태세로 그들의 어깨를 짓누른다. 김성수의 <태양은 없다> (1998)의 한 장면이다. 사실 이 영화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미지란 언덕 저편에서 거들먹거리며 걸어오는 정우성, 이정재 아름다운 두 남자의 껄렁한 모습이지만, 도주 끝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두 젊은이의 신체에 무겁게 드리워진 석양만큼 이 영화가 남기는 정감을 더 잘 보여주는 이미지는 없는 듯하다. <태양은 없다>는 정우성과 이정재라는 1990년대를 대표하는 두 청춘스타를 함께 기용한 영화라는 점만으로도 90년대 한국 청춘영화를 대표할 뿐 아니라 한국영화 역사를 통틀어 찾아보기 힘든 작품이다. 두 사람의 동반 캐스팅이 알려지면서 영화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이미 예상되었다. <비트>(1997)로 일약 안티 히어로의 권좌에 오른 정우성과 <젊은 남자>(1994), <불새>(1997) 등을 통해 시크한 도시남 이미지의 대명사가 된 이정재 두 청춘스타가 함께 스크린에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볼거리였다. 90년대만 해도 지금같이 꽃미남이라는 이름 아래 이모들의 연하남 사랑이 초극성을 부렸던 건 아니지만, 당시 두 스타의 미모(!)는 별다른 인증을 필요치 않는 종류의 것이었고 <태양은 없다>와 두 젊은 배우는 90년대 10대 후반과 20대를 보낸 관객들에게 일종의 교과서 같은 청춘담으로 각인되었다. 아름답고 시크하지만 어둡기 짝이 없는 청춘들. 두 사람 덕분에 마치 스크린 위의 청춘이란 <맨발의 청춘> 이후 30여 년간 자취를 감췄던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을 정도다.

‘청춘스타’들이 등장한 청춘영화 시대

물론 이는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오히려 정반대다. 사실 두 사람이 90년대 한국영화의 상징적인 청춘이 되었던 건 이전에 비해 청춘영화가 적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60년대 신성일로 대표되는 폭풍 같은 청춘과, 70년대 얄개와 ‘진짜진짜’ 시리즈로 기억되는 교복청춘, 그리고 80년대 ‘돌아이’를 경유하고 나면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반은 청춘영화의 봇물이 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수많은 청춘영화가 만들어졌다. <사랑이 꽃피는 나무>와 <우리들의 천국> 등의 TV 드라마는 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초까지 청춘스타의 전성시대를 열었고, 이미연・최수종・하희라・이상아・최진실・옥소리・변우민・강석현 등 당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청춘스타들을 기용한 영화들이 수도 없이 제작되었다. 당대의 청춘들을 사로잡았던 것은 역시 첫사랑이었다. 억압적인 입시제도와 교정의 분위기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사랑을 키워가는 10대와 20대 초반의 사랑 이야기가 약간의 차이만 가진 채 반복되었던 당시의 청춘영화들은 당시 인기 TV 시리즈의 연장에 가까웠다. 그 속에서 스타들은 70년대 이승현과 임예진이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온 듯, 혹은 여고생의 일기장 안에만 존재할 것 같은 그저 풋풋하고 순수하며 예쁜 청춘일 뿐이었다. 어찌 보면 10대와 20대는 숫자의 차이일 뿐이었다. 고민하고 반항했지만 그들은 훈육의 제도 안에서 순응하며 사회가 자신에게 부여한 회로를 따라 무리 없이 성장하는 착한 학생들이었다. 물론 다른 청춘들도 있었다. 90년대 초반 소위 ‘오렌지족’ ‘X세대’ 등 본격적인 소비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든 한국 사회의 시끄러운 세대론을 배경으로, 패션과 소비, 에로티시즘을 교묘하게 결합한 그렇고 그런 수많은 영화가 있었다. 청춘보다는 청춘의 벗은 몸에 집착했던 이들 영화는 대부분 제목조차 떠오르지 않지만 말이다.

‘옴므 파탈’의 이미지, 이정재

80년대와 90년대를 이어온 청춘들의 구태의연한 사슬을 끊었던 건 <젊은 남자> (1994)의 이정재였다. 당시 CF에서 길쭉한 몸매와 곱상한 외모로 시선을 사로잡았던 이정재는 한몫 크게 잡아 성공하려는 삼류모델 이한 역으로 첫 주연을 맡았다. 거칠게 말해 몸 한번 제대로 굴려 성공해보겠다고 대학까지 중퇴하고 부유한 유부녀를 유혹하다가 결국 살인까지 저지르고 죽음에 이르는 이한은 기존의 청춘과는 다른 캐릭터였다. 그는 퇴폐적이면서 어딘가 유아적인 이율배반적 매력을 가진 소위 ‘망가진 청춘’의 대표주자였다. 단련된 상반신과 모델 활동으로 다져진 완벽한 옷 매무새를 갖춘 이정재는 최고의 연기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최고의 이미지를 제공해주었다. 이어 출연한 <불새>에서도 이정재는 성공을 위해 상류층 사회에 가차없이 몸을 던지는 아름다운(!) 밑바닥으로 등장하면서 독특한 ‘옴므 파탈’의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사실 이정재의 영화들은 개봉 당해 손꼽히는 흥행작도 아니었고, 그의 연기 역시 호평 일색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의 청춘스타들과는 달리 이정재는 어떤 청춘스타 집단에도 완전히 소속되지 않은 채 자신만의 페르소나와 잊을 수 없는 신체 이미지로 소구한 스타였다. <젊은 남자>에서 그의 연기나 캐릭터를 기억하긴 쉽지 않아도, 당시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로이 오비슨의 명곡 ‘인 드림스 In Dreams’에 맞춰 흐느적 춤을 추던 그의 모습을 잊기란 어렵다. 하나의 이미지로서, 이정재는 90년대 스크린과 대중문화 안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존재다.

삐딱한 청춘의 상징, 정우성

이정재가 패션, 여가, 엔터테인먼트, 섹스 그리고 쉽게 번 돈이 사회 전반을 사로잡았던 90년대를 체화한 퇴폐적 청춘의 이미지였다면, 정우성은 바로 그 사회 뒤편에 버려진 채 애초 욕망 따위는 가져본 적조차 없는 듯한 삐딱한 청춘의 상징이었다. <구미호>를 통해 당대 최고의 미남으로 등극한 정우성은 김성수의 <비트>(1997)를 통해 당구와 지포 라이터로 대표되는 당시 남학생들의 우상이 되었다. 영화의 문을 여는 “나에게는~이 없었다. 열아홉 살이 되었지만…”이라는 정우성의 대사는 더 이상 나에겐 꽃피는 나무 따위는 믿지 않는 암울한 청춘의 주제가였다. <비트>의 민은 성장통을 겪으며 대학에 진학하는 모범생도, 이한과 같은 욕망의 화신도 아니다. 그는 시작부터 패배자이며 그의 인생이 결코 승리하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체념의 청춘이다. 한밤에 오토바이를 타코 양팔을 벌린 채 눈을 감고 달리는 정우성의 이미지는 희망도 미래도 없이 자신을 내맡기는 청춘의 이미지 바로 그것이었다. 경제가 나아져도 미래는 불투명했다. 하지만 답답한 청춘의 드라마가 당시 젊은 관객들을 사로잡았던 전부는 아니었다. 사실 더 중요했던 건 답답해도 놓을 수 없는 ‘후까시’였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처럼 쥐뿔도 없는 인생이어도 폼 잡는 건 목숨보다 중요했다. 정우성의 조각 같은 얼굴과 이기적인 몸매, 여기에 일당백도 거뜬한 주먹은 ‘쓰레기 같은 인생이어도 폼생폼사’를 부르짖으며 당대 젊은 대중의 집단적 동일시를 이끌어낸 이미지였다.

소비 자본주의 속에서 그려진 청춘들

어찌 보면 전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두 사람이지만, 결국 이정재와 정우성은 당대의 어떤 집단적 감수성을 체화하는 이미지로서 그 소구력을 가졌던 배우들이다. 이는 이들이 출연한 영화들, 그리고 이들 고유의 치명적 미모에서 비롯하기도 하지만, 당시의 사회문화적 환경 역시 상당한 영향을 미쳤음에 틀림없다. 90년대 소비 자본주의 사회 그 반짝거리는 삶의 외형은 당시 청춘들로 하여금 차근차근 과정을 밞아 결혼해 아들 딸 낳고 가정을 꾸리는 근대화 시대 젊은이들의 이상과는 전혀 다른 희망과 욕망을 갖게 만들었다. 비록 그것이 스크린이나 TV 같은 대중적 재현 안에서만 상상 가능한 탈출이자 공상일지언정, 모든 것을 다 버리고도 멋질 수 있는 폼 나는 20대란 너무도 강력하고 매혹적인 이상의 이미지였다. 여기에 스타TV 같은 해외 위성방송과 M-TV 등 케이블TV의 보급과 함께 ‘젊음’을 이미지화하는 수없이 다양한 방법과 대면하면서, 젊음은 이제 이상이나 가치보다는 어떤 ‘이미지’로 가공되고 소비되기 시작했다. 모델 출신이라거나 광고로 지명도를 얻었다거나 혹은 ‘압구정동 어디서 알바하다가 발탁되었다더라’ 등 두 배우의 외모를 둘러싼 전설(!)들은 이들의 스타덤이 상당 부분 신체를 매개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알려준다. 실제로 과거의 청춘스타와는 달리 이정재와 정우성은 모두 벗었건 입었건 그들의 우월한 신체 이미지로 회자되었던 남자배우들이다. 남성의 신체를 적극적으로 관람하고 이에 대한 수다를 떠는 것이 아직 익숙하지 않았던 90년대, 두 남자는 말하자면 지금 40대 이모들의 팬심을 자극하는 꽃미남 스타의 진정한 원조인 셈이다.

그 전설적인 미모에도, 이정재와 정우성은 지금 ‘꽃미남’이 환기시키는 어떤 이미지와는 분명 다른 느낌을 가진 청춘스타다. 사실 이정재와 정우성의 이미지는 과거 한국영화나 21세기 연예프로 속에서 익숙한 청춘스타보다는 당대의 어떤 공감대를 열정적인 표정으로 담아냈던 50년대 말론 브랜도나 제임스 딘 등 고전 할리우드 시대 전형적인 영 안티 히어로의 모습과 더 닮아 있으며 <태양은 없다>의 두 사람은 사뭇 <미드나잇 카우보이>의 존 보이트와 더스틴 호프만 콤비가 만들어내던 어떤 페이소스까지 갖고 있다. 그들은 90년대 한국 대중문화의 시각적 과잉을 통해 스타가 되었지만 그 어떤 스타보다도 영화적인 스타들이다. 눈을 부시게 하는 태양이 내 앞에 있어도 더 이상 태양을 볼 수 없게 된 어떤 시절, 슬프지만 아름다운, 암울하지만 섹시한, 패배했으나 폼 나는 청춘들. 그래서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도 그토록 아름다운 그들이 단순한 동경의 대상으로 기억되기보다는 나와 함께 도시락을 까먹고 당구를 치고 몰래 학교 담벼락에서 담배를 피우며 그렇게 앞이 안 보이는 청춘을 함께했던 누군가로 기억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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