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영화를 찾아서]꼭 찾아야 할 한국영화 5 고귀한 인간정신을 다룬 서정적인 전쟁영화, 김기영 감독의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1966)

by.유지형(영화감독) 2011-01-07조회 1,738

김기영 감독은 생애 32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가 스스로 자신의 영화를 평하기를 1955~60년대에는 리얼리즘 영화를 1970년대에는 섹슈얼리티의 영화를 그리고 1980년대에는 사회문제나 여성상위를 테마로 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한 평론가들은 김기영 감독의 영화를 제1기 리얼리즘 경향기와 제2기 심리영화 경향기, 그리고 제3기 샤머니즘과 신비주의 영화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러나 김기영 감독은 표현주의 수법으로 그로테스크한 화면과 사물 그리고 인물을 굴절된 시선으로 바라보는 과장법을 주로 사용했다. 그런 그의 경향적 작품 속에 특이한 영화 한 편이 있으니 그 영화는 바로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라는 전쟁물이다.

이 영화의 제목은 당시 여류시인인 모윤숙의 시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에서 빌려왔고 김기영 감독의 오리지널 시나리오로 촬영되었다. 이 영화는 박정희 군사정권 하에서 김기영 감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든 군사물 영화다. 당시 군사정권은 반공을 제1의 국시로 하고 있었기에 전쟁영화로 반공교육을 할 목적으로 당시 영화인들에게 전쟁영화 만들 것을 독려했다. 그런 와중에서 반공정신과 오락 사이를 오고가는 황당한 전쟁물이 양산되고 있었다. 그것은 일방적인 승리를 강요하는 국군의 승전보를 알리는 영화들이었다. 무조건 적은 나쁘다는, 그래서 전쟁에는 꼭 아군이 승리해야 한다는 결론이 제시된 이런 전쟁물 영화의 풍토 속에 김기영 감독님이 만든 전쟁영화는 전쟁 그 자체를 고발하는 반전영화로 그 메시지가 뚜렷하다. 적이든 아군이든 모두 인간이며 전쟁 앞에 잔인해질 수밖에 없고 또한 전쟁의 상혼에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그래서 꼭 전쟁이 인류에게 필요한 것인지를 제시하는 테마로 영화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다.

영화의 스토리는 늙은 퇴역장군 부부(김승호/황정순 역)가 전쟁이 끝나고 평화시대를 맞아 휴전선에 찾아와 옛 전쟁터를 바라보며 회상하는 데서 시작되고 그 영화의 중심에는 자신의 아들인 일등병(김석강 역)의 고귀한 희생이 뒤따르고 있다. 사단장인 아버지는 적의 비밀철교를 폭파하는 특공대에 자신의 일등병 아들을 참여시킨다. 그러나 내성적인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원망하며 전쟁광인 소대장(신영균 역)의 인솔 아래 작전을 수행하며 전쟁의 참혹함을 경험하게 된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아들은 전쟁을 실감하게 되고 자신이 죽지 않으려면 적을 죽여야 한다는 비극성을 실감하며 전쟁에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나간다.  또한 포로로 잡은 여 군관(선우용녀 역)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느끼고 그들도 다 같은 민족이며 인간이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이 영화에는 여배우로는 오직 선우용녀가 출연했는데 이 작품은 선우용녀의 첫 영화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 영화가 처음 기획되었을 때는 남자배우들로만 끌고 가는 영화를 만들겠다고 작정했지만 결국 영화의 재미를 위해 여배우를 출연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다른 전쟁영화와 달리 서정성에 중점을 둔 화면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고귀한 인간정신에 초점을 맞춘 전쟁영화이기에 당시 흑백영화로 제작되었지만 그 영상미가 수려했다. 영화는 주로 로케이션으로 촬영되었고 경기북부 한탄강과 임진강 지역을 활동무대로 하고 있다. 절벽과 계곡 사이로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 작전을 전개하는 병사들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겪는 적나라한 인간 본능의 상황과 모습들을 극적인 전개와 반전으로 영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다리 폭파의 목표점에 도착한 병사들은 동굴에 숨어 물고기를 잡아 생의 마지막 식사를 하고 하룻밤을 지새운다. 아들이 휴가 중에 어머니가 아버지의 막사 곁에 심으라고 전해준 코스모스 꽃씨를 전우들에게 선물로 나눠준다. “이 꽃씨를 여러분에게 나눠주는 이유는 혹시 이중에 살아서 돌아가시는 병사가 계시면 고향집 뜰에 심어달라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 모두가 전사한다면 우리들이 죽은 그 자리에는 아름다운 코스모스 꽃이 피어날 것입니다.” 이런 아들의 대사와 함께 모든 병사는 선물로 꽃씨를 받아 주머니에 넣는다. 다음날 모든 병사가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장렬하게 전사한다. 그리고 몇 년 후 다시 전쟁터를 찾아온 노부부는 아들이 죽은 그 벌판 위에 꽃이 함빡 핀 울긋불긋한 코스모스 군락을 발견한다. 그 화면 가득 펼쳐진 코스모스를 바라보며 어머니는 비통하게 외친다.

“저기 내 아들이 있어요.”

이 코스모스가 만개한 장면은 컬러필름으로 촬영되었다. 당시 한국영화는 흑백영화로만 만들어졌다. 이런 수법의 영화를 파트컬러라고 불렀다. 이 영화에서 결정적인 이 장면을 컬러 필름으로 촬영한 것은 김기영 감독다운, 거장의 면모를 보이는 연출수법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컬러 화면으로 영상미를 극대화한 라스트 장면은 당시 영화를 본 관객들에게서 경탄을 자아내게 한 명장면으로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특히 이 영화가 반공영화가 아닌 반전영화로 낙인이 찍혀 몇 번이나 검열이 보류되자 김기영 감독은 정보부 검열관의 집을 아침저녁으로 찾아가 어슬렁거렸고 그 기세에 겁을 먹은 검열관이 검열을 통과시켜 개봉할 수 있게 되었다는 우화는 한국영화의 슬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당시 이 영화는 다른 전쟁영화들과 달리 흥행에는 실패했다. 전쟁을 오락이 아닌 철학적으로 접근한 것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지 못한 결과였다. 그러나 이 영화는 김기영 감독의 독특한 전쟁 묘사와 인간 심리가 담겨 있는 걸작영화로 당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최근에 발굴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김기영 감독의 첫 영화 <죽엄의 상사>가 그렇게 세상에 나타나듯 이 영화도 그렇게 다시 볼 수 있다면 참으로 좋겠다.  처음이자 마지막 전쟁영화로 한국 전쟁영화에서 보기 어려운 이단적 연출로 자신의 개성과 열정을 담아낸, 이 유실된 이 영화는 그래서 무척이나 아쉽고 꼭 다시 보고 싶은 영화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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