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구 감독의 <장군의 수염>(1968년) 시대 정신과 영화적 표현이 돋보였다

by.신강호(대진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2010-06-09조회 2,526
장군의 수염

<장군의 수염>은 당대 문학평론가로 유명하던 이어령의 첫 동명 소설을 역시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인 김승옥이 각색했다. 이 영화는 신문사 사진기자인 한 남자가 죽자 두 형사가 주변 인물들을 통해 그 의문의 죽음을 추적하는 서사 구조로 전개된다.

산동네 하숙집에 살던 주인공 철훈(신성일)의 죽음은 일단 연탄가스 중독으로 보이지만 타살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형사(김승호)와 젊은 형사(김승옥)는 하숙집 주인(정애란)과 딸(여운계), 소설가(김동원), 한때 철훈과 동거했던 댄서 출신의 신혜(윤정희), 철훈의 어머니(한은진)와 누나(김신재), 동료 기자(백일섭) 등 주위 사람들을 탐문하면서 그들에게서 각각 철훈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장군의 수염>은 마치 오손 웰스의 <시민 케인>을 연상시키는 미스터리 구성을 통해 현대인의 고독과 소외라는 관념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영화 도입부에 주인공의 죽음이 먼저 제시되고, 주변 사람들의 철훈의 과거에 대한 증언들이 그 죽음의 원인을 관객들로 하여금 조금씩 추측하게 하는 것이다. 좌익인 형이 가정을 파괴하면서 몰락한 지주의 아들이란 멍에와 어릴 적 인두 자국 흉터를 안고 어둡게 자란 철훈은 획일화되어가는 현대사회와 삶의 부조리에 대해 적응하지 못하고 아집과 망상에 사로잡혀 살다가 결국 죽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장군의 수염>이란 제목은 철훈이 끝내 완성하지 못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하다. 영화 속에서는 철훈이 중견 소설가(김동원)를 만나 자신의 소설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난다. 이 만화는 정치권력의 타락한 신경증적 놀이를 보여준다. 조국을 해방시킨 위대한 장군을 추종하는 국민은 모두 장군처럼 수염을 기르지만 주인공만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외톨이가 된다. 철훈은 자신의 소설 주인공처럼 모두가 ‘장군의 수염’을 기르는 사회에서 그 수염을 기르기를 거부하는 아웃사이더이자 현실부적응자인 것이다. 이러한 줄거리는 1960년대 군사정권의 정통성 문제를 암암리에 비판하고 독재 문제를 경계 내지 경고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신동우 화백의 형인 신동헌의 작품으로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만화영화 <홍길동>(1967)과 <호피와 차돌바위>(1967) 등을 감독한 애니메이션의 아버지다.

철훈의 욕망과 일그러진 모습은 그의 일상과 의식을 통해 표출된다. 시대와 사회의 요구에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불안과 고독은 너무 곧고 민감한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가령 미국에서 돌아온 정박사(곽규석)와 인터뷰하는 장면은 철훈의 시니컬한 면모를 보여준다. 계속 영어를 섞어가며 한국을 비하하는 말을 하는 정박사에게 비위가 상한 철훈은 “존? 메리? 웰 아 유” 하며 아이들 이름을 부르는 정박사 부인에게 “전 그만 이렇게 귀여운 애들을 부르시는 걸 개를 부르는 줄 착각을 했어요!”라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철훈은 신혜의 발톱 깎는 소리에도 “사람들은 연필을 깎듯이 발톱을 깎고 있단 말이야! 난 그 소리가 아프게만 느껴져!”라고 말할 정도로 예민하다. 철훈의 낭만적 감성에 반했던 신혜도 결국은 그런 그에게 지쳐서 곁을 떠나게 된다.

철훈과 신혜의 고해놀이는 친구를 죽게 만든 전쟁터, 좌익이었던 형의 체포와 지주였던 아버지의 몰락 등 철훈의 아픈 가족사와 기억들을 보여준다. 신혜도 1·4 후퇴 때 순결을 잃는 치욕, 아버지 나목사(전창근)가 신앙 때문에 더 큰 고통과 상처를 입는 이야기 등 두 사람의 자아와 현실의 초상 이면에 암울한 시대를 살 수밖에 없었던 고통이 드러난다. 철훈은 6·25전쟁 이후 실존적 불안에 사로잡혀 있었고, 4·19 혁명으로 체제의 억압과 불의에 저항하는 개인을 대변한다. 결국 그는 실패한 혁명으로부터 상처와 환멸, 자괴감을 느끼는 자폐적 공간에 자신을 가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오랜만에 집으로 들어가는 김승호의 모습에 깔리는 내레이션은 이 영화의 주제를 내포한다. “왜 나는 이렇게 자신을 잃고 있을까? 민완형사! 도깨비 잡는 형사! 사람들은 날 그렇게 불렀다. 그런데……. 갑자기 뛰어든 이 하찮은 사건이 나를 무너뜨리고 있다. 나는 범인을 보았다. 그는 수갑을 채울 수도 없고 법정의 피고석에 앉힐 수도 없다. 고독이라는 놈!”

<장군의 수염>은 주제 의식의 탐구와 영화 형식적인 면에서 이만희 감독의 <만추>, 김수용 감독의 <안개> 등과 함께 한국 모더니즘 영화의 대표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군의 수염>은 당시 영화로는 드물게 서술 중심에서 벗어나 치밀한 미장센과 편집, 모노크롬과 애니메이션의 활용 등 영화적 표현과 혼란스러운 시대에 대한 비판적 묘사가 돋보였다. 그리고 어둡고 난해해서 흥행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10만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기도 했고, 제7회 대종상(1968)에서 각본상과 제작상, 1969년 제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감독상을 수상했다.

이성구 감독은 <젊은 표정>(1960)으로 데뷔 이후 <길>(1978)까지 49편의 영화를 연출했다. 그 가운데 <장군의 수염>을 비롯해서 <일월>(1967), <메밀꽃 필 무렵>(1968), <지하실의 7인>(1969) 등 주로 1960년 후반 작품들이 대표작이었고, 1978년 미국으로 이민 가면서 영화 활동을 중단했고 최근 작고했다. 이성구 감독의 아내는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에서 삶을 냉소하는 듯 한 표정과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며 하녀 역할을 연기했던 이은심이다. 요즘 리메이크되고 있는 <하녀>에서 전도연이 바로 이 역할을 맡아 연기한다고 하니 사뭇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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