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의 산책 최현명, 2006

by.남태우(대구경북시네마테크 대표) 2018-10-02
비 오는 날의 산책

영화 <비 오는 날의 산책>은 산책이라고 하기엔 다소 무안한 상황을 그리고 있고 채 산책이라고 느끼기엔 너무 짧은 소품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다. 

영화는 어릴 적 누구나 느껴봤을 법한 상황에서 시작한다. 비는 내리고 우산은 살이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고 막상 나가자니 친구들이 놀릴 것 같고…….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주인공 보영이는 하교를 하게 된다. 그러나 삐져나온 얄미운 우산살은 결국 부러지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게 된다.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는데 같은 상황에서 어릴 적 나의 모습은 어떠했던가를 생각해보면 추억이라는 그림이 그려진다. 늘 만만디였던 나는 비가 오면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비는 그칠 것이고 그다음에 가면 된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늘 그렇게 하곤 했는데 사실은 우산을 들고 오는 다른 친구들의 어머니와는 달리 우리 어머니는 비 오는 날에 학교에 오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늘 말씀하시길 살다 보면 여러 어려움에 닥치기 마련인데 그때마다 엄마가 해결해 줄 수 없으니 비가 오면 비를 피해서 집으로 오거나 비가 그치면 오라고 하셨다. 섭섭할 만도 한데 필자는 묘하게도 비를 맞고 온 적이 거의 없다. 도저히 그치지 않을 비라면 맞고도 오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가 그치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친구들의 우산을 같이 쓰고 올 정도의 베짱이 없기도 했지만, 이 상황은 결국 내가 해결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었다. 

비오는 날의 산책

이런 동일한 상황에서 주인공 보영이는 어머니도 아니고 자기 스스로도 아닌 제삼자에 의해 이 상황을 정말 판타지 하게 벗어나게 된다. 바로 정체불명의 개구리가 그 제삼자였는데 이 개구리와 함께 춤을 추다 보니 하늘을 솟아오르게 되고 마치 하늘을 헤엄치듯 날면서 하교하게 된다. 우산살이 부러진 채 우왕좌왕하던 자신을 놀리던 남학생을 신나게 윽박지르며 말이다.

수묵화기법으로 그려진 <비 오는 날의 산책>은 누구나 겪었을 법한 익숙한 여름날의 교정을 여중생 보영이를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여중생 특유의 발랄한 감수성과 개구리와의 교우라는 판타지한 상황을 여성적 터치로 그려낸 이 작품이 삼십 대 남성 감독의 연출작이라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그만큼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고 있는 작품이라 중년남성인 필자도 공감이 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인간과 자연, 동물 모두가 저마다의 모양새를 뽐내며 서로 영향을 주고 공존하는 모습을 그린다는 면에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세계를 한국적 서정으로 옮긴 느낌도 든다. 동양적 정서는 물론이거니와 한국적 정서와 미학이 더 깊이 묻어 있기에 꽤 오래전 작품임에도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여름날의 수업, 빗방울, 친구, 어머니 그 모든 것을 한 번에 되살려 주는 이 작품은 여전히 비 온 뒤 청량한 하늘처럼 짧고 신선하게 내 마음의 위무가 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제작될 수 있는 여건이나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는 상황이 십수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충분치 않다는 것에서 아쉬움이 크다. 누구에게는 추억이 되고 누구에게는 꿈이 될 수 있는 이런 애니메이션을 보다 자주 접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여전히 힘든 여건에서 고군분투하는 한국 독립애니메이션계에 작으나마 힘을 보태고 싶다. 다행히도 온라인에서 이 작품을 볼 수가 있어 아래 링크를 첨부하니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감상해 보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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