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목의 대표작들 ⑦ <카인의 후예> (1968)

by.조선희(한국영상자료원장) 2009-09-24조회 294
카인의 후예

<오발탄>의 그늘에 가려 빛을 못 본 수작이 <카인의 후예>다. <카인의 후예>는 영화적 완성도는 <오발탄>에 못 미치지만 서사의 힘과 인물들의 깊이는 오히려 더 낫다는 느낌이다. 원작이 장편소설이라서일까.

광복 직후 북한 농촌을 배경으로 한 <카인의 후예>는 황순원의 자전적 소설이지만 같은 실향민인 유현목 감독의 개인사와도 겹쳐진다. 유현목 감독은 원작을 뒷부분만 조금 들어내고 거의 그대로 영화로 옮겼다. <카인의 후예>에서 카인은 분단된 남과 북에서 명백히 북쪽을 가리킨다.

<카인의 후예>의 북한 시골마을은 토지개혁의 이름 아래 작은 전쟁터가 된다. 지주에 대한 한풀이와 약탈은 거의 전쟁이나 다름없다. 대대로 지주 집안의 아들로 서울서 공부하고 낙향해 야학을 하는 주인공 박훈은 타도대상 1순위다. 남편에게 얻어맞다가 친정으로 돌아온 마름의 딸 오작녀가 그의 집에 같이 살면서 시중을 든다. 오작녀를 둘러싼 두 남자, 지주 아들 박훈과 전 남편인 최가. 영화 처음에는 누구나 박해받는 무고한 지식인 박훈 편이지만 곧 그 소심하고 안이한 처신에 넌더리를 내게 되며, 청년위원장 완장을 차고 마을로 돌아와선 술집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입만 열면 욕을 해대는 최가는 오갈 데 없는 악역 같지만 그 위악 뒤에 숨은 순정을 발견할 때 더 이상 미워할 수만은 없게 된다. 좌우와 선악의 구도를 교란하는 드라마의 힘, 얄팍한 이분법적 통념을 넘어서는 사실주의 작가의 통찰이 빛난다.

오랫동안 마음에 두어온 여자와 3년을 한집에 살면서 손 한번 안 잡아본, 착하거나 무심하거나 또는 냉정한 인물을 김진규가 연기한다. 재산도 지식도 다 무거운 듯 눈꺼풀이 반쯤 흘러내린 듯 무기력한 표정, 꼭 필요한 말조차 조금 늦게 꺼내는 우유부단함, 주위의 온통 드센 인간들을 상대하기 버거워 자꾸 한쪽으로 기우는 어깨, 허적허적 힘없는 걸음걸이. 이 순결하면서도 복잡한 남자를 김진규 아닌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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