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지독한 사랑>

by.김종관(영화감독) 2009-03-10조회 1,068
지독한 사랑 스틸

영화는 달콤한 꿈이었다. 우는(혹은 슬픔에 잠긴) 아이의 입술에 묻히는 초콜릿 같은 것이다. 입안에 단맛이 가실 때까지는 슬픔 따위는 잊을 수 있다. 그 러다 영화가 끝나면 아릿한 느낌이 있다. 그냥 단지 재미있는 영화가 끝나서가 아니라 영화가 끝난 그 자리에 메워지는 내 삶 때문이다. 어릴 때 토요명화 로 보던 <슈퍼맨>이 끝났을 때도, 초등학교 때 대한 극장에서 보았던 <피라미드의 공포>가 끝났을 때 도, 중학교 1학년 때 신영극장에서 보았던 <007 리 빙 데이라이트>가 끝났을 때도, 고등학교 때 국도극 장에서 혼자서 <트루 로맨스>를 보고 나왔을 때도 그랬다. 영화가 끝난 자리 무언가 서글픔들이 메워 진다. 그것은 불만족이라는 병이다. 내 삶에 불만족 하는 병.

안데르센은 슬픈 동화를 썼다. 안데르센 동화의 슬 픔은 삶에 대한 냉정한 슬픔이다. 그의 주인공들은 공주가 아닌 하녀였고 잔디와 함께 쓰레기더미에 버려지는 데이지 꽃이었다. 봄이면 녹아 없어질 눈 사람인 적도 있고 장작불에 타버리는 장난감 병정 일 때도 있었다.

동화 또한 아이들이 맛보는 초콜릿이다. 하지만 안 데르센의 초콜릿은 이상하다. 초콜릿의 맛은 맞는 데 어딘가 다르다. 허기짐 때문에 슬픈 아이에게는 허기짐이 느껴지는 맛이고, 외로움이 고통인 아이 에게는 외로움이 스며든 맛이다. 어디인가 아이를 위한 초콜릿은 아닌 쓰디쓴 데가 있다. 하지만 안데 르센의 동화는 다 읽고 난 뒤 불만족이라는 병에 빠 지지 않는다. 동화를 읽으면서 느낀 쓰라림들이 위 안이고 위로라는 것을 뒤에 알았다.

나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영화라는 것이 때로 슬픈 환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성냥팔이 소녀가 마지막 남은 성냥으로 밝 히는 환상 같은 것. 그러한 절실함으로 어느 때는 영 화를 만들게 되고 어느 때는 영화를 보게 된다.

이명세 감독의 영화 <지독한 사랑>은 끝나지 않길 바라는 달콤한 꿈 같은, 하지만 끝날 수밖에 없는 영 화와 같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영화 <지 독한 사랑>은 영화의 내용처럼 그 영화가 가지고 있 는 부질없는 환상성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 는 영화가 지닌 환영들의 이미지를 매우 사랑한다. 조밀하게 쌓아올린 영화만의 이미지들은 꿈을 꾸 는 도구로써 너무 아름답지만 영화도 사랑도 끝이 있어 서글프다고, 단지 꿈을 꾸는 것이라고 말해주 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속 두 사람의 보금자리, 창밖 으로는 가짜 바다가 넘실거리고 소꿉놀이 같은 살 림살이는 반짝거리지만 거기엔 달기도 하고 비릿 하기도 하고 구정물 같기도 한 사랑의 기억들이 있 다. 그 유효한 모든 것들은 한순간의 꿈처럼 끝이 나 버리지만, 꿈을 꾸고 그 꿈에서 깨어본 적이 있는 모 든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서글픈 동화가 된다. 영화 <지독한 사랑>은 사랑에 대한 기억이면서 영화에 대한 기억이고 꿈에 대한 모든 기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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